12월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1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송년회를 안 하고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겠죠. 남편도 여기저기서 열린 송년회로 정신이 없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 옆에서 자기 송년회 스케줄을 읊고 있습니다. 스케줄을 정리하기 위해서겠죠.
아이가 둘이다 보니, 저녁 시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퇴근 스케줄을 맞춰야 합니다. 하나면 어떻게든 엄마한테 밀어 넣겠지만 둘이면 말이 다릅니다. 미안한 것도, 어느 정도 허용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죠.
아무튼 허용 안 되는 상황에서도 기필코 가야 할 송년회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주간 오마이뉴스>를 함께 했던 직원들과의 아주 특별한 송년회입니다. 12월 말로 <주간 오마이뉴스>가 폐간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주간 오마이뉴스> 마지막 송년회인 셈입니다.
10년입니다. <주간 오마이뉴스>가 지금껏 발행된 호수는 499호, 년 수로 꽉 찬 10년이죠. 매주 발행해 오던 <주간 오마이뉴스>는 인터넷 <오마이뉴스>에 올랐던 뉴스들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뽑아서 새롭게 구성하고 편집해 종이신문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주간 오마이뉴스>는 10년간 꾸준히 만들어 낸 것만으로 인정받지만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는 상황에서 종이신문을 고집할 수만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20일, 손발이 척척 잘 맞았던 유혜준 편집장과 이상미 맥 디자이너, 제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김 반장'처럼 나타나 도와주었던 출판팀 김동환 기자와 함께 단출하게 송년회를 했습니다. 2시간 동안 초특급 수다로 저녁을 먹고도 아쉬워, 커피숍에서 1시간 정도 마무리 수다 뒤풀이를 했죠.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주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일한 7년... '직장맘'으로 살아온 세월
<주간 오마이뉴스> 실무자들만의 송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송년회에, 뒤풀이까지 남김 없이 수다를 떨었건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지막이라서 그런가요? 그간 <주간 오마이뉴스>를 편집해왔던 나를 위해 생각했습니다. '나만의 송년회'로 이 글을 열어본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제가 마련한 송년회는 그동안 <주간 오마이뉴스>를 맡아서 편집해 온, 제 이야기입니다. 온라인 <오마이뉴스> 내 종이신문 <주간 오마이뉴스>에서 편집기자로 일한 기간은 7년 정도 됩니다. 그 7년은 온전히 '직장맘'으로 살아온 세월입니다. 그만큼 저는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고민해왔었습니다. 가정일을 잘할 것인가, 직장일을 잘할 것인가.
둘 다 잘하는 슈퍼우먼이 되고 싶지만 그게 쉽나요? 가정일 조금 소홀히 하면서, 직장일 틈틈이 가정일 챙겨야 하겠죠. 하지만 첫 애가 초등학교 들어가는 시점이 오면, 가정일 소홀히 했던 것이 확 티 나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나의 퇴근 시간까지 있어주던, 종일 놀이방을 탈출할 때거든요. 초등학교는 오전 시간까지만 있다가 오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려서 혼자 두기 어렵고, 따로 맡기자니 초등학생이 된 아이를 받아 줄 곳은 없습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아이가 학교 다녀올 때 반갑게 맞이해 주어야 하나. 이 시점이 가장 큰 고비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맘들이 이 시기를 고비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간신히 이 고비를 넘겨, 첫 애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벌써 2011년도 다 갔군요. 내년엔 초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 아이는 바쁜 엄마를 이해해 스스로 숙제하는 척하기도 합니다. 기특하죠.
하지만 고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첫 애 입학에 앞서 둘째 아이 출산 때도 있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제가 이렇게 욕심쟁이인 줄 몰랐습니다. 첫 애를 낳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때는 황금돼지띠 해. 그때 출산하면 부자 된다고 하더라고요. 용케도 그 행운을 저도 잡았습니다. 둘째를 임신한 것입니다.
큰 애가 한턱 쏜 송년회, 가정뿐 아니라 직장생활도 열심히 하라는 뜻
직장맘인 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안양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무던히도 지하철 출퇴근을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는 주간지 인쇄하는 날, 명동에서 용산까지, 용산에서 광화문까지 외근도 다녔지요. 제 블로그를 통해 인쇄 과정
(<주간 오마이뉴스>가 나오기까지)을 선보이기도 했었죠.
첫 애 낳은 경험이 있어서, 둘째는 임신출산에 대한 걱정보다 일을 더 의욕적으로 했습니다. 결국 둘째 아이는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팔삭둥이로 낳아야 했습니다. 직장맘의 고비, 둘째 아이를 출산한 시점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때가 찾아왔습니다. 두 달 동안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내는 아이를 지켜보며, 하루에도 몇십 번씩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었죠.
결국,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무사 복귀했습니다. 제가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 측에서 저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준 덕입니다. 또한, 직장 동료들의 응원도 함께였죠. 이런저런 고비를 겪은 후 저는 한 직장을 10년 동안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군요. 요즘은 인스턴트 시대 어쩌고 하면서 쉽게 빠르게 변한다고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직장맘으로서 여러 가지 잔 고비들을 잘 넘기고 올해도 변함없이 직장맘입니다.
마지막 <주간 오마이뉴스>를 털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시간. 저의 허탈한 마음을 들킨 건가요? 큰 아이가 자신의 용돈 5000원을 털어 과자를 사 왔습니다. 우리들만의 송년회를 하고자 큰 애가 크게 한턱 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 한 개,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껌, 큰 애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송년회, 뭐 별거 있겠습니까. 이렇게 한 해를 잘 보냈는지 고민해보고 내년엔 더 잘 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 게 송년회겠지요. 이런 저와 함께했던 <주간 오마이뉴스>는 올해로 폐간합니다. 저는 새로운 열정과 믿음으로 새로운 뉴스를 새 포대에 담아 더 새롭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큰 애가 한턱 쏜 송년회, 내년에도 가정뿐만 아니라 직장생활도 열심히 하라는 뜻일 겁니다. 물론 가정도 잘 지켜야겠지요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주간 오마이뉴스>를 사랑해 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올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엔 부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