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SNS에서는 꼼수면과 가카** 짬뽕이 큰 인기다.
SNS에서는 꼼수면과 가카** 짬뽕이 큰 인기다. ⓒ SNS캡처

지방법원장께서 SNS에 '가카OO 짬뽕' 사진 등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의 패러디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소속 부장판사에게 따뜻한 격려 및 충고의 말씀과 함께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는 표현이나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서면 경고'를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또 다른 법원에선 한 판사가 비슷한 이유로 법원장에게서 "'구두 경고'를 받았다, 그렇지 않다"는 등의 해프닝이 보도된 적도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판사가 평소 친분이 있는 정치인의 후원회에 참석했다가 법원장에게서 역시 '구두 경고'를 받았다는 기사도 찾을 수 있다.

'경고'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운동 경기나 조직 생활에서 규칙이나 규범을 어겼을 때 주는 벌칙의 하나"로 풀이되어 있다. 물론 "조심하거나 삼가도록 미리 주의를 줌"이라는 뜻도 있으나, 기관의 장이 그 소속원에게 '서면 경고'를 했다면 이때의 '경고'는 앞의 뜻에 가까운 것으로 읽힌다. 실제 언론이나 그 소식을 접한 시민들도 판사가 질책을 받고 일종의 불이익을 받은 것이라 느꼈을 터이다. 더구나 분명 '경고장'까지 받았다는데...

사람들은 그저 법원장이니까, 기관장이 소속원에게 그렇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길 것이다. 하긴 처음엔 나도 그랬다. 그런데 문득, 법관의 경우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장의 '서면경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법관은 특정직공무원의 하나로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로 구분된다. 지방법원장이나 평판사나 법률상 지위와 신분은 같은 것이다. 법관은 소송법상 단독으로 또는 3인 이상으로 구성되는 합의부로서 법원을 구성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고 어느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아니하는 독립성을 가진다. 이러한 직무상의 독립은 사법권 독립의 본질적 요소이며 법관의 신분상의 독립, 즉 법관인사의 독립, 법관의 자격제·임기제·연임제·정년제·신분보장제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따라서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 강력한 신분보장을 받는다.

한편으론, 법원조직법 제29조에 지방법원장의 권한을 정한 규정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 내용은 "지방법원장은 그 법원과 소속 지원 및 순회심판소의 사법행정사무를 관장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법행정사무'란, 사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행정작용을 말한다. 즉, 법원 직원의 임면 및 감독과 법원의 회계·경리 등의 활동이 여기에 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법행정권은 본질적으로 행정부의 직무 집행과 다르지 않으나, 사법권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대법원 및 각 법원에 속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의 대상인 '법원직원'이란 법원조직법 제53조에 규정된 "법관 이외의 법원공무원"으로, 대법원장에게 임명권이 있다.

법관은 그 신분과 직무의 특성상 누구로부터의 지시나 감독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나 하나가 독립된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명하복이 전제되는 일반적 조직체계 및 그 구성원의 지위와는 다른 면이 있다. 만일 이 부분이 부인된다면 이는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문제와 직결되므로 이는 헌법상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며, 매우 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다.

자, 그렇다면 이번에 법원장이 판사를 상대로 내린 일종의 벌칙으로 볼 수도 있는 '서면 경고'는 어떤 법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하다. 헌법상의 법관에 대한 신분보장의 원칙에 따라 그 징계의 요건도 '법관징계법'에 매우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징계처분의 종류도 정직·감봉·견책의 세 종류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징계를 하려면 대법원에 설치된 법관징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징계사유가 없으며 무혐의, 징계처분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불문(不問)으로 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법관 사적 표현에 경고라니... 법원장은 왜 그랬을까

 법원장에게 서면경고를 받은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
법원장에게 서면경고를 받은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 ⓒ 권우성

그러니 이번에 행한 '서면 경고'는 법에 정한 징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만일 법관윤리강령을 어긴 점을 들어 행한 조치라면 당연히 법관징계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결정하였어야 함에도, 그런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낮은 징계인 견책을 "징계 사유에 관하여 서면으로 훈계한다"고 정한 점에 비추어, 그 내용이 비슷한 '서면 경고'는 어떠한 법에 근거해서 가능했을까? 법원장의 위치에 있는 분이 근거도 없는 조치를 했을리 없다고 믿기에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규정이 없다. 굳이 찾는다면 앞서 살핀 법원조직법 29조에 정한 법원장의 지휘 감독권을 들지 모르나, 이 또한 사법행정사무에 국한해서 행사할 수있는 권한일 뿐이다. 대체 판사가 사적 공간인 SNS에 개인의 소견이나 감상을 올리는 행위가 어떻게 사법행정사무와 관련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만일 법원장 스스로 위 조항을 염두에 두고 조치한 것이라면, 내가 보기에 이는 명백한 권한남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신영철 대법관 사태에서 보듯, 법원장의 사법행정에 관한 지휘감독권을 확대해석하여 법관의 신상에 제약을 가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의 일환이라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쯤 되니, 나의 천학비재를 다시 절감한다. 대체 이놈의 '서면 경고'는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앗차! 이번에 창원지법은 "법원장 등 판사 9명이 참석한 운영위원회를 열어 이 부장판사의 표현행위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는 기사를 찾았다.

당시 운영위 회의에서는 "법관이 의견을 표명함에 있어 품위를 유지하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에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운영위원회가 서면경고를 결정할 수 있을까? 운영위원회는 대법원규칙인 '판사회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제12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근데 그 역할은 "판사회의의 운영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판사회의도 '사법행정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할 뿐이다. 도무지 '사법행정'이란 말이 빠지는 경우가 없다. 물론 여기서 판사에 대한 서면 경고를 결정하거나 건의할 수 있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 답을 찾아야 한다. 판사의 사적 의견 표명은 '사법행정'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란 말인가? 진짜 법원장은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그냥 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그 사정이라는게 연일 SNS를 훑어가며 먹이를 찾아 헤매던 보수언론의 하이에나 같은 공격에 위축되거나 견디지 못한 결과일까?

아니면 보다 높은 곳에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며 아무튼 어떤 조치라도 하라는 지시나 의중을 전달받았기 때문일까? 법관윤리강령 제1조는 "법관은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 나간다"고 정했는데, 대체 이 '외부'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용서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외부의 영향에 굴복한 법관이 있다면 그 이에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그냥 '구두 경고'로 끝낼까?

덧붙이는 글 | 최강욱 변호사는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을 역임했고, 최근에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피해자인 김종익씨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렬 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