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길 원한다. 지성과 논리로 설득당하기보다 삶으로 체험하길 갈망한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이야기하지만 내재적인 하나님을 좇는 이유도 그것이다. 사회적인 불의와 싸우는 정의의 사람들에게 목말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부성애적인 하나님과 함께 모성애적인 하나님을 더 원하는 바도 그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 혼란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사체험과 같은 개인체험뿐만 아니라 방언이나 신비로운 체험들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무엇이든 획일적인 집단이 되면 이단과 사이비로 전락하게 되고, 그것이 가정과 사회를 어지럽히는 단초가 된다.
케네스 리치의 〈하나님 체험〉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영적 유산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른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비롯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사막의 영성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그리고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성경과 신학, 철학과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 균형을 잡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해 간다.
"구도자를 깊이 변화시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그 변혁의 힘을 가진 지식을 추구하는 하나의 시도다. 참된 신학이란 참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 또 만남을 통해 인간이 변화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을 다루는 변혁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같은 길을 걷는 동료 순례자들에게 드리는 자그마한 선물이다."(머리말)거룩함과 성스러움은 같은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사용되는 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드러나야 한다. 그 속성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속에 곧잘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그 거룩성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삶에 연출됐다고 한다. 초대 사막교부들의 영성이 깊은 것은 모두가 그 같은 맥락을 잇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막의 영성은 이후 유대 마카비 혁명을 거치면서 저항의 영성으로 변혁되었다고 진단한다. 그 속에서 공동체와 가난의 영성을 다듬어갔고, 침묵과 고독은 영성의 가장 깊은 심연을 드러낸다고 한다. 도미니쿠스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탁발승 운동도 모두 같은 흐름 속에서 태동된 것이라고 한다.
재밌는 것은 오순절파의 방언과 마리아 숭배사상에 관한 내용이다. 세계적으로 대형교회를 이끌고 있는 오순절파 교회는 방언을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는 초기 증거로 본다. 하지만 리치는 신약성서 어디에도 방언이 개인적으로 임한 적도 없고 또 방언을 구하는 모습은 더더욱 찾을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리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절묘한 절충을 시도한다.
"물론 방언이 유일한 형태는 아니지만, 많은 서양인에게는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종교체험을 대표한다. 바로 이것이 환희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훌륭한 말이 가리키고 있는 바다. 또한 이것이 위대한 관상가들이 말과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강조하던 그 무엇이다."(418쪽)한편 마리아론은 독실한 가톨릭교도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기독교 신앙의 일부일 것이다. 반면에 '극단적인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론에 관한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아론이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왜곡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리치는 하나님의 여성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사례가 줄면서 마리아 숭배가 늘어났다고 진단한다.
"마리아 신학의 골격은 2세기에 확실히 잡혔다. 마리아 신앙이 발전한 이유의 하나는 고로스 기독론이 예수를 멀리 떨어진 천상의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어왔다. 그래서 보다 친밀한 마리아라는 인물이 인간성이 결여된 것 같은 그리스도를 보완해 주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성육신 교리가 그런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고 보면 무척 곤란하다."(650쪽)언젠가 어느 교회에서 행하는 담임목사의 축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 분은 맨 마지막에 '어머니처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성령님의 은총'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후 나도 '어머니 같은 성령님의 은총'을 차용해서 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그 속에 어머니와 같은 속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성이 마리아가 아닌 성령님을 통해서 충분히 드러나고 있는 까닭이다.
목회와 신학, 초월과 내재에 관해 유대문헌에서부터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저술과 학문을 반영하고 있는 이 책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모든 신학과 학설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줏대 없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균형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칭찬도 듣지 않을까 싶다.
다만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너무 방대한 역사 속에서 찾고 있기에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읽기에는 지루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영국의 성공회 사제이자 가톨릭 전통이 강한 앵글로 가톨릭의 형향을 많이 받은 사회신학자이기에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읽는다면 하나님의 체험에 관한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