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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목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푸른빛 찬란한 비늘을 가진 용이 집안에 셋씩이나 있기 때문이다. 1940년 생 아버지와 1964년생 아우와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용 세 마리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십년 전까지만 해도 집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감도는 그런 집안이었다. 용 세 마리가 푸른 기운을 내뿜으며 4대가 모여 사는 그런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풍양 조씨 회양공파 26세손 종가집의 장손인 나는 수원백씨의 처자 꼬임에 넘어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 만다. 꿈 많은 23살의 처자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대가 함께 모여 사는 종갓집으로 시집을 온 것이다. 면목동 포도나무 4층집에 1층은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사시고 3, 4층은 아우들 내외가 살았으며 2층은 우리식구가 살았다.

4대가 함께 모여 살았던 면목동 포도나무집. .
▲ 4대가 함께 모여 살았던 면목동 포도나무집.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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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띠 아내.  장난기가 발동해서 점집 앞에서 찍어보았다.
▲ 용띠 아내. 장난기가 발동해서 점집 앞에서 찍어보았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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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용 세 마리 중에 제일 기가 센 용이 바로 나의 아내였는데 아내의 하루 일과를 보면 대충 이렇다. 새벽 4시 남편의 출근부터 하루일과가 시작이 되는데 하루에 밥상만을 무려 대여섯 번을 차려낸다. 제수씨 둘이 있다 하나 자기 남편들 건사하면 그만이고 모든 것은 아내의 차지였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큰손자며느리에 대한 사랑은 전폭적이었다. 거기에 네 살 터울의 작은아버지 내외분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믿음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삼형제들도 하나씩 분가를 했다.

나는 아내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께 못마땅한 일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기가 종갓집 큰며느리라 하나 나하고 볼 때 한 치 건너 두 치요, 부모님 흉보는 것도 우습게 보일뿐더러 동생들이 보고 배울 것이며, 자식들 눈이 있으니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언젠가 바로 밑의 동생이 몸살이 났었나 보다. 우리네 가끔 몸살도 앓아가며 그리 사는 것이지만 이 아우는 워낙이 건강한 체질이고 한참 힘들었던 시기여서 아내의 마음에 많이 안 좋았나 보다. 갑자기 돈 50만원만 달라고 한다. 쓸 곳이 있어 달라겠거니 돈을 건네주고 잊고 있었는데 며칠 후 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와 아들 삼형제. 오른쪽이 용띠 아우. .
▲ 어머니와 아들 삼형제. 오른쪽이 용띠 아우.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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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형님! 제가 형님을 보약을 해드려야지 이럴 수는 없습니다."

뭔 말인가 했더니 아내가 나에게 달란 돈으로 개소주와 보약 한재를 지어서 아우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냥 열심히 빼놓지 말고 먹으라는 말 이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일 년이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소를 4번 이상을 다녀온다. 재미있는 게 내 뜻으로 다녀오는 게 아니라 며느리 중에서 유일하게 시조부모님 살아 계셨을 적에 시집을 왔고 또 증손녀까지 안겨준 사람인 아내의 성화로 다녀오는 것이다. 또한 부모님께서도 내가 하는 짓에 고개를 외치시는 일을 아내 덕분에 모두 해 보고 살았음이다. 어쩌다 보니 새해 첫날부터 용띠인 아내자랑을 하게 됐는데 이게 바로 우리네의 며느리요 아내요 자식을 둔 어머니인 것이다. 여기에 바로 한 집안의 화목은 며느리의 손에 온전히 달려있다 하는 것이다.

어머니 잔칫날. .
▲ 어머니 잔칫날.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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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아침 아내가 쉬는 날이라 사진관에를 놀러 나왔다. 그러더니 열차여행으로 어디를 갈까? 인터넷을 열심히 뒤적거린다. 나도 안 데려가고 친구들끼리 놀러가면서 일 방해 말고 가라고 했더니 한마디 툭 던지며 나가는 말에 빵 터졌다.

"까불지 마, 올해가 무슨 해인지 알고? 까불면 용 세 마리가
당신하나 흥하고 망하게 하는 거 아무것도 아냐, 알았어? 잘해."
"..."
"우리 대장 용, 따듯한 옷이나 한 벌 사드리게 카드나 내놔."
"예."


#용 세마리#용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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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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