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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라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니 겨울 찬바람이 부는 날 바깥 나들이는 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요. 방학은 맞은 둘째 아이와 막둥이는 언제쯤 아빠하고 나들이를 갈 수 있을지 기대를 해보지만 헛꿈만 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지난주 화요일 아빠의 자발성이 아닌 한 분의 전화 통화가 답답한 아이들 마음을 뻥뚫어 주었습니다.

무거운 엉덩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 오후에 시간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이유 때문인데요?"
"산에 가자고?"
"산!…"
"같이 가려면 12시 30분까지 '00돼지국밥집'으로 오세요."

솔직히 집에 있고 마음이 90%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도 "당신은 몸을 조금 움직여야 한다"는 타박과 언제쯤 아빠하고 나들이 한번 갈까 하면서 바라보는 아이들 눈빛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딸 아이와 막둥이도 같이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빠 우리도 같이 가고 싶어요."
"산에 가는데 추워."
"그래도 같이 가고 싶어요. 따뜻하게 입으면 되잖아요. 답답해 죽겠어요. 엄마가 털신발 신으면 된다고 했으니 데려가주세요."
"그래 가자."


점심을 먹기는 했지만 돼지국밥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2년 전쯤에 들렸을 때는 5000원쯤 했는데 2년만에 2천 원이나 올라 7000원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돼지국밥집 중 하나일 것입니다. 순댓국밥도 참 맛있습니다.

날샌돌이 막둥이

등산갈 산은 아이들을 생각해 '봉명산'(鳳鳴山)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경남 사천시 곤양면에 있는 산으로 험하지 않아 가족들과 나들이 기분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은 봉황이 우는 산이니 대단합니다. 그런데 첫발을 내딛는데 웬걸 굉장히 가파릅니다. 하지만 우리 집 막둥이 내달립니다.

저 멀리 목사님과 내달리며 오르는 막둥이
 저 멀리 목사님과 내달리며 오르는 막둥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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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와룡산, 2010년 11월 월아산에 오른 후 1년 만에 산을 타는데도 막둥이는 잘도 올라갑니다. 같이 오르는 목사님이 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나라에서 거의 오르지 않는 산이 없을 정도입니다. 일주일 한 번은 산을 오르니 대단한 분이지요.

한 번씩 등산을 같이하는데 목사님은 쉬엄쉬엄 오르지만 저는 따라가기 바쁩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같이 오르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워낙 몸이 무거운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막둥이는 날샌돌이가 되어 목사님과 함께 올랐습니다. 물론 목사님이 막둥이에게 보조를 맞춘 것이지만.

중턱쯤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습니다. 아내가 말하기를 "진찌 인물이다"였습니다.
 중턱쯤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습니다. 아내가 말하기를 "진찌 인물이다"였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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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턱쯤에서 잠깐 쉬었습니다. 얼마 올랐다고 쉬는지 몰라도 그래도 산은 산입니다. 산사나이 목사님을 따라 오른 막둥이. 아빠를 기다렸습니다. 아빠를 뒤로하고 먼저 올랐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막둥이를 위해 사진 한컷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아내가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역시 인물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빠 얼굴에 어떻게 저런 얼굴이 났는지. 대단해요. 내 아들이라고 그런게 아니라. 진짜 미남이에요.
"나를 닮아 그런가?"
"당신 닮은 것은 사실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아빠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동의하지 않아요. 당신 닮았어요."


아내 얼굴이 밝아집니다. 자기를 예쁘다고 하는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나요. 잠깐 휴식을 뒤로 하고 몇 발짝 내딛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정상입니다. 지금까지 오른 산이 설악산, 가야산, 천관산,백양산,대둔산 등이 생각납니다. 우리 동네 월아산과 와룡산도 있습니다. 해발 400미터. 정말 산책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할머니집이 보일까 안 보일까

정상에서 한컷했습니다. 높지 않은 산이라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정상에서 한컷했습니다. 높지 않은 산이라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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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쁜 아이와 막둥이 사진 한번 찍어야지."
"그래요 정상에 올랐으니 사진 찍어야지요."
"우리 막둥이는 정말 잘 생겼어, 당연히 우리 예쁜 아이도."

"아빠 저기 바다가 보여요."
"응 할머니 집 있는 바다야. 저기 할머니 집이 보인다!"
"할머니 집이 어디있어요?"
"어디예요?"

"응 할머니집 아빠가 그냥 해본 소리야"
"아빠 왜 거짓말을 해요?"
"할머니 집은 보이지 않지만 저기 보이는 바다가 할머니 집이 있는 앞바다인 것은 맞아. 할머니 집에서 조금 내려가면 나오는 바다야"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사천만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맨처음 사용한 역사깊은 바다이지요.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사천만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맨처음 사용한 역사깊은 바다이지요.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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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사천만입니다. 사천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맨처음 출전시켜 승리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역사가 깃든 바다이지요. 이순신 장군의 정기를 이어받고 태어났지만 왠지 제가 살아가는 모습은 이순신 장군과는 다릅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정상을 뒤로하고 오를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저 멀리 산능선이 보였습니다. 그 중에 높은 봉우리가 보였는데 알고보니 지리산 천왕봉이었습니다. 제가 안 것은 아니고, 산을 좋아하는 목사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분은 모르는 풀, 꽃, 나무가 없습니다. 대단하지요. 문화재도 식견이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보면 설명해주는데 얼마나 박식한지. 목사님이 아니었다면 저 멀리 있는 산이 지리산인줄도 몰랐습니다.

파란동그라미에 보이는 산꼭대기가 지리산 천왕봉입니다. 저는 몰랐는데 산을 정말 좋아하는 목사님이 가르쳐줘 알았습니다.
 파란동그라미에 보이는 산꼭대기가 지리산 천왕봉입니다. 저는 몰랐는데 산을 정말 좋아하는 목사님이 가르쳐줘 알았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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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컷 찍으면 4~5컷은 눈감아

중간쯤 내려오는 데  빙하기때 풍화작용으로 붕괴되어 '너덜'이라 불리는 테일러스(Talus)를 만났습니다. 신기한 모습에 또 한컷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 사진을 찍으면 눈을 감아버립니다. 10컷 찍으면 4~5컷은 감습니다. 아내가 눈을 자주 감는데 이것도 유전인가요? 나중에 알고보니 목사님이 찍은 사진 중에도 눈을 감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바위들은 빙하기때 풍화작용으로 붕괴되어 '너덜'이라 불리는 테일러스(Talus)를 두고 또 한컷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바위들은 빙하기때 풍화작용으로 붕괴되어 '너덜'이라 불리는 테일러스(Talus)를 두고 또 한컷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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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오다가 바위들은 빙하기때 풍화작용으로 붕괴되어 '너덜'이라 불리는 테일러스(Talus)를 두고 또 한컷입니다. 그런데 왜 눈을 감는지. 아이들 엄마도 10번찍으면 4~5번은 눈을 감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바위들은 빙하기때 풍화작용으로 붕괴되어 '너덜'이라 불리는 테일러스(Talus)를 두고 또 한컷입니다. 그런데 왜 눈을 감는지. 아이들 엄마도 10번찍으면 4~5번은 눈을 감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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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게 무엇이에요?"
"응 너덜이라고 불러. 아빠가 알기로는 빙하기때 풍화작용으로 이렇게 됐다.

"아빠는 모르는게 없어요."
"아빠가 모르는게 없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배워. 막둥이 너처럼 공부가 제일 싫은 학생들은 모를 수 있어."

"그런데 서헌아 너 또 눈감았다. 사진만 찍으면 눈감는다."
"이상해요. 눈 감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사진 보면 눈을 감아요."
"엄마가 사진만 찍으면 눈감잖아. 엄마를 닮아 그렇지."


집에 돌아와 눈감은 사진을 보여주니 "내 딸 아니라고 할까봐 이런 것도 본 받나"라고 말합니다. 얼떨결에 따라 나선 봉명산 등산. 아이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엉덩이 무거운 사람을 불러내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다리에 힘까지 길러준 목사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아내가 새해들어 말합니다. 올해 당신은 운동 좀 하라고. 만보기를 샀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1시간은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하늘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봉명산,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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