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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우리 학교가 '서울형 혁신학교'라는 이름을 달고 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지난해 이맘때 혁신학교 지원서를 내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것이 생각납니다. 우리 학교가 서울형 혁신학교를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동료교사들과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서 '하자!'가 아니라, 그동안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을 '하지 말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학교에서 '아닌'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닌' 것을 해대느라 진짜 해야 할 일을 못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아닌' 일 대부분은 교사들이 하자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관리자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들입니다. 주로 관리자의 업적과 실적을 위한 일로 관리자가 지시하면 교사들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필요 없으면서도 합니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교육과정은 파행운영하게 되고 수업에 소홀하게 됩니다. 교사들은 대부분 뒤에서 흉을 보거나 욕을 할 뿐 관리자의 권력에 꼼짝을 못합니다. 이 분위기가 그동안 제가 경험한 학교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 교사들이 첫 번째로 내세운 학교운영 원칙이 '민주적인 학교 운영'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학교 구성원 모두가 모여 의논해 결정하고, 의논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관리자나 그 누구라도 일방적인 명령이 없습니다.

'학교 민주주의' 침해하는 부장 임명 과정

지난해 12월 28일과 29일 1박2일동안 전체 교사 워크숍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2011년 학교교육과정을 평가하고 2012년 교육과정을 함께 의논해서 계획했습니다. 부장도 이 자리에서 공개 선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과 29일 1박2일동안 전체 교사 워크숍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2011년 학교교육과정을 평가하고 2012년 교육과정을 함께 의논해서 계획했습니다. 부장도 이 자리에서 공개 선출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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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학교가 민주적이지 않은 까닭은 여러 가지이나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부장이 되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부장의 숫자와 종류는 학교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학교에 있는 부장이 되는 방법은, 교육적 관점이 좋고 수업을 잘 하고 아이들과 잘 지내는 교사가 될 것이 아니라, 교장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됩니다.

교장은 특히 교무부장과 연구(교육과정)부장을 교장의 지시에 거역하지 않고 지시대로 잘 움직여 줄 교사를 시킵니다. 이때 교무부장과 연구(교육과정)부장이 되려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승진을 위해 근무평정 점수를 잘 받아야 할 교사들입니다. 그러니 점수가 필요한 부장들은, 그것도 교장이 부장까지 시켜줬으니 감지덕지해서 교장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는 근무평정 점수를 잘 받아야 승진을 하는 교사들이 교장들에게 줄을 대고 있습니다. 최근 학교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전입요청 인사보강제도는 근평점수를 잘 받아 승진해야 하는 교사들의 물밑작업으로 변질된 지 오랩니다. 학교가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필요한 인사를 전입요청하는 제도가 일부 교사들의 근무평정 관리에 악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의 일반학교 교사의 경우 5년에 한 번씩 전입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 전입을 가야 할 상황에 놓인 일부 부장들이 다른 학교 부장자리로 전입 가기 위해, 혹은 전입을 미루고 지금 있는 학교에서 부장으로 좀 더 근평점수를 쌓기 위해 유예신청을 할 때 거액의 돈이 오간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근평점수를 잘 받기 위해 교무부장과 연구(교육과정)부장을 차지하려는 신경전은 꽤 치열합니다. 부장들 사이의 암투로, 부장과 교장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학교운영이 파행을 겪는 일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한 해만 근평점수를 잘 받으면 교감연수대상자로 선발되기 때문에 부장을 맡아 교장의 손과 발이 돼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 다하면서 힘껏 교장을 '모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해 교장이 근평점수를 안 주는 바람에 교감연수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아 심장병으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분은 병원을 전전하다가 승진을 포기하고 명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학교가 '철밥통'이라 꽤 편안하고 안정적이라 생각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고, 삼국지에서나 볼 수 있는 격전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근평점수를 꼭 따야 승진 길에 들어설 수 있는 부장들은 부장을 시켜준 교장의 은덕(?)에 어떻게 해서든 보답해야 합니다. 그러니 교장이 하는 일에 '아니'라고 절대 말하지 못하고, 교장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면서 교사들을 교장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교장이 지시만 하면 부장들은 알아서 길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교장이 저지르는 비리도 눈감아주고 앞장서서 해결해주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래 승진 여부가 달린 근평점수를 손에 쥐고 있는 교장과 승진 점수가 필요한 부장관계는 심하게 말하면 주인과 노예관계에 버금가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했다간 그 길로 승진 길은 끝장나고 맙니다. 다른 교장한테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할 텐데, 이런 일로 한 번 찍히면 영원히 찍히는 끔직한 곳이 또 학교입니다.

교장의 지시를 받은 부장들은 교장에게 잘 보이려고 교사들을 무시하고, 닦달하면서 온갖 행사를 다 벌입니다. 교사들의 다른 의견과 불만은 애초 들을 생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듣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학교 일을 한다고 교실 책상 위에는 공문이 수북하고 교과서보다 결재판을 더 많이 들고 다닙니다. 선생님이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습을 수시로 하고, 교사가 없어도 아이들끼리 조용히 지낼 수 있는 학습지를 많이 풉니다. (이럴 때 학습지 앞에 붙는 말이 '자기주도적 학습지'입니다.) 색칠하기도 숱하게 하고, 만화영화도 많이 보고, 알아서 매뉴얼대로 접는 색종이 접기도 많이 합니다. 반장한테 떠드는 사람 이름도 적게 합니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승진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누구나 하는 일이니까요.

대부분의 학교는 교장과 교장의 신임을 받아 임명된 부장 중심으로만 움직입니다. 매년 연말에 시행하는
학교 교육과정 평가회도 학교운영비로 부장들하고만 경치 좋은 관광지에 가서 하고, 교사들은 학교운영의 객체(들러리)이거나 교장과 부장들 점수 따는 데 도와주는 재주 부리는 곰일 뿐입니다.

교사회에서 공개 선출한 우리 학교 부장... '과연 잘 될까?'

지난해 12월 28일과 29일 1박2일동안 전체 교사 워크숍을 했습니다. 새벽 1시 30분까지 학교운영전반에 대한 의견교환과 토론이 이어졌고, 일부는 밤을 새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과 29일 1박2일동안 전체 교사 워크숍을 했습니다. 새벽 1시 30분까지 학교운영전반에 대한 의견교환과 토론이 이어졌고, 일부는 밤을 새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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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학교에서 부장임명 과정에 얽혀있는 좋지 않은 일을 많이 경험한 우리 학교 교사들은, 첫 해부터 부장을 교장이 자기 맘에 드는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아닌, 교사회에서 공개로 선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개 선출을 결정하고 나서 그동안 한 번도 부장을 공개로 선출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관리자와 교사들은 처음엔 '과연 잘 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첫 해 교사회에서 부장을 공개 선출하고 난 뒤 나타난 긍정적인 효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컸습니다.

먼저 지난 29년 동안 한 번도 부장을 해보지 않은, 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은 제가 부장이 되어보겠다고 출마를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부장감이 아니었습니다. 교장이 하는 말을 고분고분 잘 듣기는커녕 자주 '아니'라고 시비를 걸어온 저는 지금과 같이 교장이 임명하는 방식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부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부장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장을 공개 선출방식으로 바꾸면서 부장에 출마했습니다. 제가 출마하면서 내세운 공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업무처리를 잘 못해도 부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둘째, 교육청에서 보내오는 어처구니없는 할 일들을 싹 막아주겠다.
셋째, 중간자로서 교장과 교사들 입장과 의견 차이를 잘 조정하는 역할을 해보겠다.

공개적으로 전체 교사들의 신임 속에 부장이 된 저는 누가 시켜서 하라고 한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해보겠다고 했기 때문에 힘든 일도 힘들지 않게 최선을 다 해 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청에서 보내오는, 오히려 학교교육과정 운영을 해치는 공문들은 교육청에 따져서 안 하거나 우리 학교에 맞게 수정해서 하기도 했고, 지난 일 년 동안 관리자와 교사들 사이에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 가치관의 차이를 조정해 보려고 부단히 애썼습니다. 특히 학교운영에 다수인 교사들의 목소리를 모아 내 교사들이 주인공이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애썼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부장 역할을 잘 해보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가장 힘들었던 일은 할 일이 넘쳐서 밤 늦게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입장과 의견이 다른 교사와 교사 사이, 관리자와 교사들 사이를 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의견을 조정하고 조율하면서 함께 가게 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동안 제가 제 주장은 많이 해왔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조정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본 적도 없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장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이 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안마다 없는 지혜를 짜내서 힘들게 조정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조정하고 조율하는 일은 정답이 없어서 할 때마다 새로운 어려움에 부딪히고 그래서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나 저를 부장으로 뽑아준 교사들은 부족한 저한테 자꾸 애썼다 하고, 고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일이 많아 보이면 요청하지 않아도 서로 도와주려고 합니다.

부장을 교장이 본인 마음에 드는 교사로 정해서 임명할 때는 부장이 힘들게 일해도 근무평정 받고 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부장을 교사들이 공개로 선출하고 보니 이상하게도 부장이 힘들게 일하면 애쓴다 하고 서로 도와주려고 하는 분위기가 저절로 생기더군요. 이것을 저는 학교 민주주의가 가져온 힘이라고 봅니다.

올해에도 우리 학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부장을 전체 교사가 모인 교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정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전체 교사들의 의견으로 제가 2012년에도 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초보부장'으로 잘못하고 실수한 일이 많은데, 다 용서하고 올해 더 잘 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학교 업무처리도 처리지만, 무엇보다 전체 교사들의 뜻을 잘 모으는 역할과 교사와 교사 사이, 교사와 관리자 사이의 조정 역할을 즐겁고 행복하게 잘 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조정하고 조율하는 동안 가장 많이 배우고 깨닫고, 그러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저라는 사실을 지난해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서울형 혁신학교 운영을 1년 동안 해본 경험으로, 현재 학교와 교육이 잘못 가고 있는 원인이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에 민주주의가 바로 서면 모든 교육이 바로 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학교안에 있는 비민주적인 상황을 살펴보면서 학교 안의 민주주의를 세우는 방법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학교민주주의, #전체교사회, #부장선출방법, #부장임명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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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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