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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의 부부싸움

신혼 초, 우리 부부는 꽤 자주 그리고 격렬히 싸우는 편이었다. 물론 싸움을 하지 않는 신혼부부가 어디 있겠냐 만은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우리 부부의 싸움은 나름 가열찬 편이었다. 나이 서른을 넘어 만난 고집 센 두 남녀가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살을 맞대고 사니, 굳어져 있던 각자의 가치관 차이만큼 부딪히는 수밖에.

특히 매일 늦을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전화를 붙잡고 사는 나의 회사 업무는 부부싸움에 있어 큰 촉매제 역할을 했다. 혼자 아무 말 없이 집에서 하루 종일 글을 써야 하는 아내는 남편의 귀가를 기다려 대화를 하고자 했는데, 하루 종일 수백 통의 전화에 시달렸던 나는 집에서 조용히 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게다가 예상치 못한 허니문 베이비 임신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안 그래도 신접살림을 나의 직장 가까운 데 잡은 터라 아내는 친구들 만나기도 쉽지 않았는데, 임신을 한 탓에 거동이 힘들어지니 아내의 유일한 말벗은 남편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동네 친구를 사귀려니 이 역시 쉽지 않은 터.   

사람들은 아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와 말을 하게 되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었다. 사람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를 상대로 아내가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매일 벌어지는 아이와의 전쟁으로 아내는 더욱 지쳐갔고, 이는 남편과의 대화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맞물려 오히려 아내를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짜증은 바가지가 되어 남편인 내게 고스란히 돌아왔음은 물론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아내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까? 정녕 남편인 내가 칼퇴근 해서 아내와 살갑게 대화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우리 사회에서 30대 남성 가장이 칼퇴근 하는 게 어디 가능한 이야기인가?

달라진 아내의 얼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퇴근 후 나를 반기는 아내의 얼굴이 평상시보다 한결 부드러워 보였고, 은연 중에 내게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하는 태도 역시 누그러져 있었다. 뭐지? 아이의 언어능력이 갑자기 늘었나?

비밀은 쉽게 밝혀졌다. 그것은 바로 아내가 새로 사귄 동네친구들 때문이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한 이후 아내의 주된 일과 중의 하나는 아이를 아파트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풀어 놓은 뒤 마냥 지켜보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네 친구들을 사귄 것이다. 남편들이 출근하고 나면 밖에 나가자고 떼쓰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동네 놀이터 벤치를 지킬 수밖에 없는 주부들의 모임.

놀이터로 가자 바지 안 입어도 좋다. 무조건 놀이터로
놀이터로 가자바지 안 입어도 좋다. 무조건 놀이터로 ⓒ 정가람

집에 안가 놀이터에서 그만 집에 가자고 했더니...
집에 안가놀이터에서 그만 집에 가자고 했더니... ⓒ 정가람

아내는 퇴근한 나를 붙잡고 조잘조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 까꿍이가 놀이터에 나가 친구 누구누구를 만났는데 그 아이가 어떠하다느니, 그 엄마는 어떠하다느니,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아이의 아빠는 어떠하다느니 등등. 아내는 미묘한 여자들의 신경전을 내게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했고, 그렇게 해서 느끼게 되는 동질의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군락별로 알력이 있고, 이 갈등을 바탕으로 우리 모임이 공고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특별한 대꾸 없이 동의의 추임새 몇 마디와 함께 묵묵히 듣고 있었지만 아내는 평소와 달리 그런 나의 태도에 섭섭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그 친구들과 어울려 남편 흉을 비롯해 온갖 수다를 떨면서 그동안 대화부족으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드디어 아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다니... 게다가 그 상대가 동네 비슷한 주부들이란 사실은 더욱더 큰 위안이었다. 어쨌든 같은 아파트에서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그만큼 교류가 쉽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주부들끼리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나의 온갖 치부(!)가 드러나는 듯해, 가끔 마주치는 그들의 얼굴을 보기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만 했다. 어쨌든 그만큼 아내의 삶이 활기차졌으며, 아이도 눈만 뜨면 친구를 찾음으로써 그만큼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는 횟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녀석도 그렇게 사회성을 갖게 되겠지.

까꿍이 엄마, 개똥이 엄마 등으로 불려지던 호칭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각자의 이름으로 바뀌어갔다. 이는 그 모임이 단순히 아이들을 매개로 한 만남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 가족 대 가족의 만남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내와 그 친구들은 남편들도 함께 하는 가족모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육아방식의 차이, 그리고 균열

처음으로 사귄 이웃에게 최선을 다하는 아내. 그러나 계속될 것 같았던 아내와 그 친구들의 열정은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그 기온만큼이나 차갑게 식어갔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놀이터보다는 어느 한 명의 집에서 노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름 내내 하루가 멀다하고 만났던 그들을 한순간에 데면데면하게 만든 문제.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다툼과 그로 인한 엄마들의 스트레스였다.

아이들이 놀이터와 같이 열린공간에서 노는 것과 실내에서 노는 것은 매우 달랐는데, 그 중 하나는 아이들이 마냥 달리는 놀이터와 달리 실내에서는 장난감에 집중한다는 사실이었다. 한창 '내 것'이라는 소유욕이 생기는 그 나이의 또래들이 한정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보니 다툼이 있을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의 다툼을 바라보는 엄마들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육아방식의 차이였는데 어느 엄마는 그런 자신의 자식을 엄격하게 혼내는 반면, 또 어떤 엄마는 그런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문제인 이상, 어른들이 많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관점의 차이는 엄마들에게 커다란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왔다. 아이를 어려서부터 훈육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입장에선 어떤 제어도 받지 않는 상대방의 아이에 비해 자신의 아이만 혼나야 하는 상황이 억울했던 것이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겐 나의 자식과 싸우던 상대방 아이가 그 엄마에게 혼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문제가 여름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실내에서 놀기 시작한 이후로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고 이는 그 모임을 근본적으로 흔들게 되었다. 아내는 새로운 스트레스에 어쩔 줄 몰라했고, 다시금 자신의 육아방식을 곱씹어야만 했다. 아이를 어려서부터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자신의 육아관을 성찰하게 된 것이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를 혼내지 말고 마냥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육아방식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는 법.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던 아내와 동네친구들의 모임은 결국 따뜻한 봄이 오면 놀이터에서 다시 보자는 암묵적인 결론에까지 도달했다. 아내는 겨우내 까궁이에게 굳이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는 대신 둘째 산들이가 어서 커서 누나의 놀이상대가 되기를 바랐다. 상이한 육아방식을 가진 엄마들과 어울려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래서 아이가 하나면 외롭다고 하는 것일까?

올해 여름, 까꿍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아이들이 자란만큼 어린이집에 갔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또래와 열심히 놀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삼 깨달은 건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과, 아이에 대한 육아방식이 부모와 부모의 만남에 있어서 꽤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5살 이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겐.

까꿍아.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열심히 뛰어 놀자꾸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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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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