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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못 쉬어도 몸무게만 빠지면 좋다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웬만하면 몸을 눕히지 않습니다. 겨우내 감기를 한번 앓아도 하루 정도 잠을 푹 자면 다음 날 언제 아팠는지 모를 정도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코가 막혀 숨을 잘 쉴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을 가지 않았습니다. 가라고 했지만 괜찮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주 목요일 막둥이와 함께 남강 둔치와 진주종합경기장을 다녀온 후 몸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토요일에는 거의 실신(?)이 될 정도였습니다.

 

"병원 가라고 했잖아요."

"병원을 당신이 가라 한다고 가야 해요?"

"아니, 남편 말을 들으면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는 것 몰라요?"

"그래, 당신 말 들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을 것인데. 미안해요."

 

여성들이 다 그런지 몰라도, 많이 아파 자기 몸을 겨누지 못할 정도가 되었지만 몸무게 빠졌다며 좋아합니다. 얼마나 빠졌을까요? 무려 '2kg'입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여자의 마음이었습니다. 옆에서 자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자다가 일어나고 자다가 일어나고. 코가 막히면 얼마나 힘든지 잘 아실 것입니다.

 

"여보, 몸무게가 2kg이나 빠졌어요!"

"야! 몸 아픈 것보다 몸무게 빠진 것이 저 좋은가 보네요. 나는 아프면 모든 것이 다 싫은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보네요."

"힘들지만 몸무게가 빠졌잖아요."

"…."

 

몸무게는 빠져 좋지만 그래도 숨 쉬기가 힘든지 월요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 갔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강제로 보냈습니다. 옆에서 같이 숨 쉬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어제(수요일)부터 숨 쉬는 것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한국 엄마 실력이 또 다시 도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아빠는 대학 1학년 때 <신곡> 읽었는데, 아들은 중1 때

 

큰아이가 읽는 책을 보니 단테의 <신곡>입니다. 아빠는 대학 1학년 때 <신곡>, 그것도 '문고판'으로 읽었는데 아들은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벌써 읽어야 했습니다. 아빠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에 <신곡>을 이해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어려우면 읽고 또 읽으라고 했지만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나도 <신곡>은 요약본을 읽었는데 인헌이가 어떻게 읽어요?"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읽을 만하니까 읽으라고 했으니 타박 마세요."

"그럼 서헌이는?"
"서헌이는 <조선국왕의 일생> 읽고 있어요."

"나는 몇 년 전에 읽었는데?"

"그것은 그때 나왔으니까 그렇지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딸아이 "임금님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내는 하루 30분씩 함께 읽고, 책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면 한 장도 좋고 한 바닥도 좋으니 천천히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딸아이는 <춘향전>을 한 권 때고 <조선국왕의 일생>을 읽고 있는데, 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는 어렵게 느껴져 어떻게 읽을까 걱정을 했지만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책 속으로 푹 빠져들어갈 정도로 재미있다고 합니다.

 

아내가 <조선국왕의 일생>이라는 책을 권한 이유는 왕의 하루 일과와 왕세자 잉태에서 출산까지, 왕세자가 왕이 되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힘들게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를 그리고 왕의 반쪽, 왕비 간택 따위를 다루고 있어 조선시대 왕들이 살았던 삶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어려운 단어들이 나오지만 내용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학교에서 배운 역사를 되살려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연대와 순서는 틀리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냥 읽으라고 하는데 아내는 이런 깊은 뜻을 가지고 책 읽기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역시 아내가 낫습니다.

 

엄마는 놀고 놀고 놀았지만 아이들은 책을 읽고 읽어야

 

하지만 우리 막둥이. 새해 무엇이 제일 좋으니냐고 물으니 "주5일제 수업"이라고 했습니다. 일주일에 5일만 학교 가는 것만으로도 막둥이는 신나고 좋아합니다. 대뜸 하는 말이 엄마 어릴 적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릅니다.

 

"엄마는 어릴 때 어떻게 살았어요? 우리처럼 외할머니가 공부하라고 꾸중하셨어요?"
"아니 생각해보니까, 초등학교 때는 노는 걸로 시작해서 노는 걸로 끝났다."

"그럼 왜 우리보고 공부하라고 해요? 엄마는 놀았으면서."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뭐가 달라요?"
"맞다. 다른 것 없다. 엄마는 여름방학은 냇가에서 멱감고, 사기 그릇에 된장을 넣어 고기잡으면서 놀았다. 또 동무들과 돼지감자 파먹으면서 콩찟개(공기)놀이 하고 해 질 때까지 '때망구놀이', '고무줄놀이', '숨박꼭질'로 보냈어."

"야, 엄마는 재밌었네요.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너희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공부도 안 하잖아."

"엄마는 그럼 무슨 책 읽어요?"
"나 <기독교강요>!"

"…?"

 

자신은 놀고 놀고 놀았으면서 아이들은 공부하지 않는다고 타박입니다. 엄마는 원래 이런가요. 그런데 아내 아이들만 책 읽으라고 하지 않겠다며 책 한 권을 들었습니다. 종교개혁자 요한 깔뱅이 지은 <기독교강요>입니다. 처음에는 초판을 읽기에 이참 읽을 것 최종판을 읽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아내가 <기독교강요>를 읽고 기독교 교리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아내는 <기독교강요>, 아들은 <신곡>, 딸은 <춘향전> 떼고 <조선국왕의 일생>을 읽고 있는데 막둥이와 저는 그냥 놀고 있습니다.


태그:#아내, #신곡, #조선국왕의일생,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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