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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대국밥집의 여러 금언중에게서 내게 해당될 만한 것이라며 정해준 말, '여자 말을 잘 듣자.'
순대국밥집의 여러 금언중에게서 내게 해당될 만한 것이라며 정해준 말, '여자 말을 잘 듣자.' ⓒ 이안수

나이가 들수록 먹고 싶은 게 없습니다. 맛있는 것도 없고…….

나는 예전부터 '음식은 육신의 신진대사를 위한 재료 공급'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음식에 특별한 기호를 가질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었지만 그것을 즐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또한 못마땅했습니다. 그 습관은 지금도 여전해서 식사는 최대한 간소하고 간편한 것을 최고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게스트께서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오는데 외투에 묻어온 고기냄새가 코끝을 살짝 스쳤다. 헤이리밖의 털보네바베큐집에서 삽겹살과 목살 바베큐를 드셨다고 했습니다.

나는 서울의 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자동차가 없이는 털보네바베큐집에 갈 일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처가 달려와 주었습니다. 사실 처가 보고 싶었는지 바비큐가 먹고 싶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어제는 살짝 몸살기운이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해지면 자꾸 사람이 옆에 있길 원하나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그 시간은 방금 영업이 끝난 시간이었습니다. 바비큐는 포기해도 저녁은 포기할 수 없어서 불 켜진 인근 순댓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한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영업이 끝난 뒤 지인들이 한담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덕한 주인아주머니는 '아직까지 저녁을 안 하셨다면 얼마나 배가 고프겠나!'며 모두 정리된 주방으로 가서 순댓국 한 그릇을 준비해오셨습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시더니 소주 한 병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몸살기운을 이유로 손을 저었습니다. 여주인이 손님을 대하는 어느 태도에도 야멸친 장사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인들끼리 나누는 얘기로 보아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쪽 창에 붙인 작품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프로방스의 모퉁이화실 작가분이 싸게 만들어 주었어."

그 작품이라는 것은 나무토막에 일본의 한 줄 시, '하이쿠'같은 글들을 써서 붙인 것이었습니다.

 벽에 빼곡하게 붙은 금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벽에 빼곡하게 붙은 금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이안수

주인 옆의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선생님께 해당되는 말도 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반문했습니다.
"제게 해당되는 말이요?"

"여자 말을 잘 듣자!,요"

그분은 제가 부인 말을 잘 듣지 않는 완고한 남편으로 해석했음이 분명했습니다. 저의 처가 그 말에 동의도 부정도 아닌 웃음을 웃었습니다. 저도 그 만고의 진리가 싫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세상의 좋은 말들은 모두 그 벽에 붙어있었습니다.

"손님들이 사진도 찍어가고 그래요."
주인 아주머님의 말씀대로 어떤 사람들도 모두 현재 자신의 상황에 딱 맞는 말들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이곳 성동리가 고향이세요?
"남편은 이곳에서 태어났지요. 직장 때문에 대전에서 살다가 부모님을 모셔야할 때가 되어서 다시 남편의 고향으로 왔어요."
-그럼 사시는 집도 가까우세겠군요?
"이집의 2층이에요. 남편은 프로방스옆 구판장에서 일하고요."
-구판장은 성동리마을에서 운영하는 것이지요?
"2년마다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운영해요."
-언제 가게 문을 열었어요?
"지난달 말에요."
이 물음은 함께 있던 지인이 답했습니다. 알고 보니 함께 계신 분은 모두 성동리 주민들이었습니다. 이곳이 영업이 끝난 시간에 다시 동네사람들의 사랑방이 되고 있었습니다.

주인께서 다시 대답을 이었습니다.
"이 자리는 복덕방으로 세를 주고 있었는데 당최 돈을 주지 않아서 제가 식당을 시작했어요."
-가게는 해보셨어요?
"평생 처음이에요. 그래서 뭘 몰라요."
-앞으로 시간이 가서 숙련이 되시더라도 뭘 모르는 지금처럼 하세요. 뭘 모른다는 지금 정성이 가득하고 정이 넘치는 모습이 더 좋아 보이거든요."
"그래야지요."

주인아주머니는 이 사랑방에 새로운 사람이 합류하면 꼭 "저녁은 드셨우?"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온 사람은 "그럼 벌써 먹었지."라고 답했습니다. 그 대답과 상관없이 "그저 드릴 테니 한 그릇 잡수셔."라는 말과 함께 순댓국을 한 그릇 말아 내오셨습니다. 저녁을 먹었다는 그 분도 아무 저항 없이 그 순댓국 뚝배기를 받았습니다.

-병천순대의 병천이 무슨 말인가요?
이 질문을 하자마자 동네 분 모두가 일어서며 서로 답하려 애섰습니다. 결국 주인이 준 순댓국을 방금 비운 분이 내게 바싹 다가오며 답했습니다.
"지역명이에요. 천안의 병천. 아우내장터라고. 그 재래시장의 순대가 유명하거든요. 돼지 소창에 선지와 야채와 양념을 넣어 만들어서……."

식당 문을 나와 차를 타다보니 가게의 2층에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OPEN!! 기념행사 1인 소주1병 무료 제공합니다. 병천황토방순대"

 '1인 소주 1병 무료제공'이라는 순댓집의 오픈 기념 이벤트에 시골의 서정이 묻어난다.
'1인 소주 1병 무료제공'이라는 순댓집의 오픈 기념 이벤트에 시골의 서정이 묻어난다. ⓒ 이안수

내가 순대국을 좋아하는 이유를 오늘 알았습니다. 기억이 아득한 때에 할아버지를 따라 지례의 5일장에 따라갔었던 기억때문이라는 것을. 장이 서는 날이면 장돌림들과 장꾼들로 모든 읍내에 그득했는데 그때 장을 보신 할아버지께서 길가에 걸린 큰 가마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국을 떠서 밥에 말아 파는 국밥을 사주시곤 했습니다.

그 옛날 장날에 맛보았던 그 국밥의 추억을 오늘날 이 순댓국에서 찾으려는 본능이었던 모양입니다. 가마솥뚜껑을 열면 흰 김이 거리를 뒤덮고 손놀림이 보통 빠른 것이 아닌 아주머니가 말아낸 그 국밥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던 장꾼들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지금도 뇌리에 어제인 듯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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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한명의 아버지는 백 명의 스승보다 낫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난 올 여름에도 모기에게 물렸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살맛나게 하는지...
-싸우지 말고 우기지 말고 나대지 말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며 보여도 쓰여지지 않는 것은 다만 짐일 뿐이다.
-우리집 가훈 | 여자 말을 잘 듣자.
-여자는 누구나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를 꿈꾸지만 실제로 맞이하는 것은 자기가 타고 갈 말을 끌고 오는 마부인 경우가 허다하다.
-창조적 실수를 두려워 마라.
-홍시여 잊지 말게. 자네도 젊었을 땐 매우 떫었다는 것을...
-햇빛처럼 따뜻하게, 물처럼 부드럽게, 꽃처럼 아름답게...
-가장 즐거운 일의 하나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로 가는 일이다.
-삶이란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는 신비로움이다.
-남자의 욕망은 출세, 여자, 돈. 여자의 욕망은 출세해서 돈 많은 남자.
-내가 성공했다면 그것은 모두 천사 같은 어머니 덕이다.
-스스로 빛나는 별은 없다.
-이것 또한 곧 지나 가리라.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
-곁에 있어도 없는 듯, 있어도 없는 듯...
-사랑해요.
-소는 꼴값을 해야 하고 사람은 밥값을 해야 한다.
-낮술 "이러면 안 되는데..."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노력을 하면 꿈을 이룬다.
-내가 당신을 바라보는 까닭은 당신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낸 믿음 한 조각...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위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꽃지면 잎나거늘 서러울 것 없어요. 초록이 꽃빛보다 더 짙고 오래갑니다.
-닭은 아무리 교활해도 결국 냄비 속에 들어간다.
-둘이 함께 노래는 할 수 있어도 함께 지껄일 수는 없다.
-우리집 가훈 | 너나 잘하세요.
-가장 많은 무형의 언어는 미소.
-가장 빛나는 유형의 언어는 눈빛.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결국 나만 손해를 보았다.
-사람은 욕망으로 허물어지고 기대로 무너지며 의심으로 퇴색된다.
-나도 쓸모가 있을 걸!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산 있기에 강 흐르나니...
-공부하다 죽어보자!
-감사합니다.
-도둑이 들창에 달을 두고 갔구나.
-인사만 잘해도 잘살 수 있다.
-사랑엔 휴일이 있지만 질투엔 공휴일이 없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병천황토방순대#프로방스#모퉁이화실#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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