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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파도 때문에 관광객이 찾지 않는 후아 힌(Hua Hin)의 쓸쓸한 해변.
 심한 파도 때문에 관광객이 찾지 않는 후아 힌(Hua Hin)의 쓸쓸한 해변.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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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면서 바다 구경을 하려고 해안가 도시 라농(Ranong)을 찾았으나 바다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숲 속에 있는 온천이 섭섭한 마음을 달래줬다. 온천욕을 끝내고 이곳에서 가까운 해안 도시, 챰폰(Chumphon)이라는 곳을 목적지로 정한다. 바다에 몸을 담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선다.    

또다시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 속으로 들어선다. 도로는 잘 뻗어 있다. 길에 개 한 마리가 자동차에 치여 죽어 있었다. 태국에는 임자 없는 개들이 도로변에 꽤 많다. 앞만 보고 과속으로 달리는 도로변에 주인 없는 개들이 서성거리고 있으니 사고가 날 수밖에. 호주 여행 때에는 자동차에 치인 캥거루를 수없이 봤는데, 태국에서는 자동차에 치인 개를 보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라 그런지 측은한 생각이 든다. 

챰폰 시내에 들어선다. 제법 큰 도시다. 전날 모텔을 찾느라 고생한 것을 되새기며 아내는 차창 밖으로 잘만한 곳을 열심히 찾고 있다. 숙소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자세한 지도가 없어 정확한 우리 위치는 모르지만, 대충 짐작으로 나침판을 보며 바닷가를 향해 운전한다.

도시를 빠져나가 조금 가니 유명한 노보텔(Novotel)호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유명한 관광지에 주로 있는 호텔이다. 5성급 호텔인 노보텔에서 묵을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호텔 근처에 값싼 숙소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노보텔을 찾아 나선다.

우리 생각이 맞았다. 호텔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좋은 자리에 있다. 숙소 찾는 것을 잠시 뒤로하고 호텔 앞 바닷가에 차를 세운다. 파도가 높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그러나 파도 때문인가? 바다는 흙탕물 빛이다. 관광객도 보이지 않는다. 황량한 바닷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마음이 시원하다. 

빛 바랜 탁자와 흙탕물 같은 파도... 조금 실망인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지만 거센 바람은 바다를 흙탕물로 바꾸어 놓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지만 거센 바람은 바다를 흙탕물로 바꾸어 놓는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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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끼고 난 도로를 따라 운전하면서 숙소를 찾아본다. 중간 중간 리조트가 있으나 영업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손님 맞을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숙소가 필요한 우리는 바닷가에 있는 리조트 하나를 골라 무작정 들어선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아줌마가 우리를 맞는다. 영업을 하긴 하는가 보다. 하룻밤을 이곳에 묵기로 하고 짐을 푼다. 예전에는 꽤 번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넓은 부엌과 식당이 눈길을 끈다. 식당은 온통 조개와 불가사리 등으로 장식돼 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식사 주문을 받지 않고 있다. 탁자는 빛이 바래 있었다.

저녁도 먹을 겸, 동네 구경도 할 겸 숙소를 나선다. 해안을 끼고 계속 운전하니 군함이 보인다. 진짜 군함을 육지에 올려놓은 것이다. 군함 옆에는 향을 피우며 제를 지낼 수 있는 건물과 군인 동상도 있다. 그리고 군함 주변에는 춘절(春節)에 중국인이 터뜨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화약을 터뜨리고 난 종이가 쓰레기처럼 바람에 밀려 싸여 있다. 대형 스피커에서는 음악을 내보내고 있다. 무슨 행사를 했음이 틀림없는데 말이 안 통하니 알 수가 없다.

저녁을 해결하려고 근처를 서성거리니 해안가 식당의 한 종업원이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엄청난 파도와 바람 부는 해변에 자리 잡은 식당이지만 식탁 옆으로 바람막이를 해 놓아 바닷바람을 막아준다. 생선 한 마리와 오징어를 시키고 해변에 발을 적신다. 해변에는 죽은 산호가 많이 밀려와 있다. 아마도 예전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있었고 관광객이 많이 찾았던 해안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저녁을 마친 후 외국인이라 당하는 어느 정도 바가지요금을 내고 숙소에 돌아와 어둠침침한 바닷가를 걸어본다. 바닷가를 중심으로 좋은 집들이 보이지만 근처에는 쓰레기 더미가 널려 있다. 이제는 사람이 찾지 않는 바다의 모습이다. 

후아 힌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멋진 닭'

이 절에서는 닭도 코끼리와 함께 존경(?)의 대상이다.
 이 절에서는 닭도 코끼리와 함께 존경(?)의 대상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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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좋았음 직한 리조트이지만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차가운 물로 대충 샤워를 하고 어제 봤던 노보텔에 있는 골프장에 들어선다. 9홀짜리 짧은 골프장이지만 18홀을 도는데 우리 돈 2만 원 정도이다. 내가 사는 푸켓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 싼 가격에 힘을 얻어 엄청나게 불어대는 바람에도 골프를 친다. 어렵게 골프를 끝낸 후 깨끗하게 정돈된 샤워장에서 몸을 씻고, 식당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흙탕물을 연상시키는 바다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심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다시 길을 떠난다. 다음 목적지는 외국인이 많이 찾는 후아 힌(Hua Hin)이란 도시. 역시 해변에 있는 큰 도시다. 방콕에서 240km 떨어진 후아 힌은 태국인이 존경하는 왕이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다른 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나도 과속으로 국도를 내달린다.

한참 운전하다 쉴 곳을 찾는데 도로변에 동상으로 만든 커다란 닭이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터에 새로 지은 절 하나와 자그마한 사당 둘이 덩그러니 있다. 붉은 색깔이 선명한 벼슬과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닭이 태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코끼리와 함께 나란히 서서 사당을 지키고 있다. 다른 절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동양에서 닭을 귀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닭이 수문장(?)까지 하며 존경받는 곳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 공터에서는 조각물과 비슷하게 생긴 닭들이 한가로이 거닐며 모이를 찾고 있다.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에 가다

바닷가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 조개를 이용한 공예품이 많다
 바닷가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 조개를 이용한 공예품이 많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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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힌(Hua Hin)에 도착했다. 살펴보니 여느 도시와 별 다를 게 없는 도시다. 시내에는 외국인이 많이 다니고, 외국인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마사지하는 여성들은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태국인은 한 사람도 없는, 외국 배낭족으로 북적이는 골목에 숙소를 정한 후 저녁을 먹으러 거리를 배회한다. 대로변에 큰 백화점이 있다. 백화점 안에도 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것 같다. 후아 힌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후아 힌은 골프장이 많기로 유명하고, 이곳에는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 '로얄 후아 힌 골프 코스'(Royal Hua Hin Golf Course)가 있다. 이 골프장은 192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 도시에서 특별히 할일이 없었던 나는 골프장을 찾기로 결심하고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알아봤다. 태국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골프장은 다른 골프장과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좋은 골프장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가격도 싸고, 나름대로 오래된 골프장이라는 의미가 있기에 그 골프장을 찾아 나선다. 골프장에는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이라는 문구가 영어로 적혀 있다.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에서 골프를 마치고 바닷가를 찾는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고 파도가 높아서 인지 사람도 없고 쓸쓸하다. 해변 입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 주인 보기가 민망할 정도. 발만 담그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 갈 곳을 지도에서 찾아본다. 아주 가까운 곳에 국립공원이 있단다. 캥크라챤 국립공원 (Kaeng Krachan NationalPark)이 바로 그곳. 이제 산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태국에서 가장 크다는 캥크라챤 국립공원의 모습은 어떨까? 새로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사람은 여행에 중독되나 보다.


태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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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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