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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박정근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구속영장사본
 지난 11일 박정근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구속영장사본
ⓒ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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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국가가 그 길을 막는다면 국가는 젊은이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입니다."

지난 1965년 이명박 대통령이 시위 전과로 인해 취직을 못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한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이 편지를 보낸 뒤에 현대건설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20대의 한 사진가가 유치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등을 풍자해 통렬한 공개편지를 띄웠다. 그 주인공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원남부경찰서에 구속되어 있는 박정근씨(25).

박씨의 글은 17일 오전 그를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 '박격포'(박정근을 격하게 포옹하는)에 '대통령 이명박 각하께 보내는 공개서한'이라는 이름으로 올려져 있다. 박씨는 지난 11일 북한의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운영하고 있는 트위터를 리트윗해 국가보안법 7조 위반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사경을 헤매다가...긍정&도전 정신!

박씨는 A4용지 3쪽 분량의 공개편지에서 "이명박 대통령 각하, 초등학교 시절 군인 아저씨한테 위문편지를 보내본 적은 있지만 대통령님께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문을 연 뒤 이명박 대통령이 평소 강조해 온 '긍정-도전 정신' 등을 패러디해 다음과 같이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올해 25세의 서울 시민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찬양, 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현재까지 구속되어 총 6차례의 경찰조사를 받은 활동가이며 사진가인 박정근이라 합니다.

제 신상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1988년 봄에 서울에서 태어나 이런저런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다가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대학은 입학해야 하니 안 하던 공부도 열심히 하고 모의고사 등급도 신나게 오르던 중, 2006년 가을 다리에 큰 병이 생겨 몸져눕는 바람에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서 있을 수도 없었지만 병상에 누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는 긍정&도전 정신"을 생각하며 병원을 살짝 나와 양호실에서 수능을 보고 그럭저럭 서울에 있는 모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딱히 재미가 없어서 때려치우고 굶지 않기 위해 뭘 했냐면,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집에서 해온 가업이거든요. 방에 굴러다니는 게 카메라였다 보니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 찍는 게 놀이였거든요. 대통령님과 달리 어릴 때부터 구석에서 커온 저는 당신께서 들여다보지 못한 것들, 안 본 것들, 구석에 있는 것들을 많이 찍고 다녔을 겁니다. 그래서 제 하드디스크엔 당신이 보기엔 불온해 보이고 심기가 불편해지는 사진도 몇 장 있을 겁니다."

그는 이어 "저는 덤벙대는 성격이라 기록 같은 건 잘 못하는데 가게에 찾아온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에 제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기록이 잘 나와 있더라고요"라면서 "검찰인지, 경찰인지, 보안수사대인지 여하튼 제 이런 행적들을 어떻게 찾으셨는지 정말 신기하지만 이건 영장의 주 내용이 아니고, 주 내용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국가보안법 위반, 찬양 및 고무, 그리고 이적표현물 소지였다"고 밝혔다.

"농담을 변명하는 건 농담에 대한 예의 아니다"

그는 이어 "세세하게는 트위터에 북한 조평통인지 뭔지 이름도 헷갈리는 @uriminzok 계정의 글을 리트윗하고 '트위터라는 4명만 구독해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SNS매체'를 이용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하고 선전선동을 유도했다는 내용이 주 내용이었습니다만 일일이 다 설명드리긴 좀 제가 게으른 성격인지라 각하께서 직접 지난 기사들을 검색해 주셨으면 한다"고 일갈한 뒤 "체제찬양으로 보이는 글들은 대부분 농담이었으나 저는 이 편지에서 농담을 일일이 설명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농담을 변명하는 건 농담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면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니까요"라고 밝혔다.

박씨는 자신이 공개편지를 띄운 이유에 대해서도 "저에게 지금 중요한 건 제게 씌워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자체가 아니다"라면서 "저는 이 편지로 대통령님께 제가 국가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청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밝힌 뒤 현재의 상황을 비꼰 12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로는, 조사장소가 수원에 있는 경기보안수사대인데, 여기까지 제가 편도 1시간 반을 이동해 여섯 시간 조사를 받고 와야 하기 때문에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매출이 뚝 떨어진 것.
둘째로는, 집과 가게를 압수수색한 이후로 집과 가게에서 제대로 된 업무를 보기 힘들다는 것.
셋째로는, 제 방을 압수수색한 이후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제가 제 방에서 잠을 거의 못 잔다는 것.
넷째로는, 이 불면증으로 인해 신경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
다섯째로는, 이 일로 인해 모든 제 신상정보가 털려버렸다는 것.
여섯째로는, 제 방에서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신세를 지게 돼서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

그는 또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경찰들에게 무한한 미안함을 느꼈다"면서 "제가 트위터에 몇 개의 글을 올렸냐면 무려 7만여 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걸 다 보느라 애쓴 보안수사대 경찰님들, 정말 일 많이 하셨구요"라고 비꼬았다.

"누가 말했는지 참 좋은 글귀..."

그는 마지막으로 "사진관 운영 몇 년으로 제 인생을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저는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사랑도 많고 각하께서 일자리를 잘 창출해주시면 회사에 입사할 능력과 의지도 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를 패러디해서 다음과 같이 공개편지를 마무리했다.

"이 사건으로 지금 많은 이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으며, 이미 이 사건으로 인해 저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렸습니다. 저같은 청년을 국가가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범법자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아래 글귀는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참 좋은 글귀다 싶어 집에 붙여놓은 것입니다. 아마 수십년도 더 지난 글귀일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국가가 그 길을 막는다면 국가는 젊은이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귀가 진리라고 생각하며, 이게 진리가 아니라면 그냥 국가가 저에게 진 빚 그냥 잊어버리고 이 나라의 국적을 포기할 생각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지금 현재 가해지는 일들을 바라보면 저 글귀를 보며 꿈꾸던 조국의 현실이 얼마나 먼지 통탄을 금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살 날이 아직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저 글귀 속의 젊은이와 똑같은 젊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젊은이가 청운의 꿈을 펼치던 조국이 대한민국이듯이 저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을 앙망합니다.

2012년 1월 16일 수원남부경찰서유치장에서

사진가 박정근 드림"

덧붙이는 글 | 김지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박정근, #국가보안법, #박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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