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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해고된 인천공항 비정규직 세관 노동자들이 지난 12일 세관장실 앞에 모여 농성을 하면서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
 지난해 연말 해고된 인천공항 비정규직 세관 노동자들이 지난 12일 세관장실 앞에 모여 농성을 하면서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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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저녁,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연말 '문자해고'로 논란이 됐던 인천공항 비정규직 세관 노동자들이 다음 달 1일부터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로 두 번이나 인천공항 세관을 찾아 취재했던 경험 때문에 이들의 고용승계 타결 소식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기자가 처음 인천공항 세관을 찾아간 것은 지난 12일 오전이었다. 인천공항 세관에서 전자태그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17일째 되던 날이었다. 달랑 문자 메시지 하나로 해고를 통보받은 이들은 모두 34명. 이들 대부분은 매일 공항에서 농성을 벌였다. 기자는 이날도 공항 세관사무소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쓴 편지를 돌려 읽고 있었다.

"우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성에 참여한 노조원 임아무개(61)씨는 이곳에서 6년 일했다. 임씨가 입사한 2007년 임금은 시간당 3480원이었고, 해고된 2012년 임금은 시간당 4580원이다. 6년간 31.6% 올랐으니 해마다 5%씩 오른 셈이다. 하지만 물가는 더 많이 올랐다. 그는 "그마저도 작년에 재계약하면서 2만 원이 깎였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물가안정이니 고용안정이니 하지요. 서민경제 살리겠다잖아요. 작년 11월만 해도 비정규직 고용안정대책을 내놓지 않았습니까. 고용승계할 때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자고요. 그런데 우리는 한 달 만에 해고통보를 받았어요."

해고된 하청노동자들은 50대 초반에서 60대 중후반의 연령대였다. 회사에서 퇴직한 후 맞이하는 인생의 황혼기,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아보려고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노조도 작년 여름에서야 가입했다.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살기 위해" "인간대접 받기 위해서"였다. 쫓겨난 후 농성을 시작하는데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임씨는 "처음에는 머리에 띠 두르는 것도 아주 어색했다"며 "마이크를 잡으면 많이 떨렸다"고 말했다.

"주위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인천공항 노조 지부장을 비롯해서 각 사업장마다 있는 노조 지부가 도와줬지요. 작년에 파업했던 삼화고속 아시죠? 그분들도 찾아와서 도와줬어요.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이렇게 기자와 대화하는 것도 떨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7보1배' 현장에 날아든 따뜻한 캔커피 봉지

인천공항 세관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17일 오전 8시 인천공항 3층 입국장에서 7보1배를 하고 있다.
 인천공항 세관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17일 오전 8시 인천공항 3층 입국장에서 7보1배를 하고 있다.
ⓒ 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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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기자는 지난 17일에도 인천공항을 찾았다. 설이 코앞으로 다가오지만, 34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인천공항 세관은 말이 없었다. 세관 쪽의 침묵에 비례해 노동자들은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전단 살포와 세관장실 점거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이날부터 공항 3층 입국장에서 '7보1배'를 시작했다.

북소리가 울리고 박자에 맞춰 절을 했다. '7보1배' 행렬 맨 앞에서 인천공항 비정규직 영정 사진을 든 노동자는 상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3층 여객터미널 안 수많은 관광객들의 눈길이 쏠렸다. 곧이어 양복 입은 직원들이 나타나 "승객들의 항의가 들어온다"고 제지하자 노동자들은 "북이 있어야 박자를 맞춘다"고 항의했다. 이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여기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우리가 지금 북 치고 장구 치고 노는 걸로 보여?"

"허가받은 데서 하시라고요."
"당신들 국민 혈세로 월급 받는 거야."

결국, 제지당한 노동자들은 주저앉아 구호를 외치면서 해고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힐끗 쳐다보고 지나쳤다. 그런 와중에 따뜻한 캔커피가 가득한 비닐봉지가 한 노동자 손에 쥐어졌다. 인천 산다는 박재홍(33)씨가 "힘내라"고 건넨 '선물'이었다. 박씨는 공항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우연히 세관 노동자들의 농성을 봤다. 평소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신문을 통해 세관 노동자들의 해고 소식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웃겨요.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처지 아니라고 그냥 지나치는데 사실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거든요."

공항 관계자들도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잘 알겠다"면서도 승객들의 동선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일어나 다시 점거 농성 중인 세관장실 앞으로 향했다.

길바닥에서 설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다행스러워

인천공항 세관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 12일 세관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인천공항 세관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 12일 세관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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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는 지난해 12월 31일, 올 4일과 10일 등 총 세 번의 교섭을 벌였다. 용역업체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근본적 문제해결은 정부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노사 관계자와 함께 세관 측이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세관 측에서 제시한 중재안은 노조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해고 노동자들을 모두 복직시키되 새로 고용한 11명과 급여를 나눠 가지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급여 삭감안'인 셈이다.

그 후 4일과 10일 두 번 더 만났지만 새로운 중재안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10일 인천공항 세관장을 만났을 때 "노력하겠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13일 인천공항세관장 명의의 편지가 노조사무실에 팩스로 전달됐다. 역시나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가운데 올해 새로운 하청업체('포스트원')가 선정되는 과정과 관련해 의혹이 일었다. 하청업체 입찰 당시 포스트원이 5등이었지만 최종 선정됐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 하청업체였던 트루씨엠케이, KTGLS가 사실상 같은 업체라는 의심을 받았다. 입찰 당시 이들 업체들의 전·현직 임원, 사무실 주소지, 전화번호 등이 같거나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노조 측에서는 "가족들끼리 회사 여러 개를 차려서 임금 따먹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관 측에서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만 했다. 게다가 입찰가격도 의혹을 받았다. 해고된 34명의 노동자를 포함해 이곳에서 일하던 50명의 노동자들은 한 달에 약 120만 원 가량의 급여를 받았다. 연 6억 원 인건비로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포스트원은 12억 원에 낙찰됐다. 노조 측은 "도대체 나머지 6억 원 가량은 어디로 갔나?"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지침'을 발표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용역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승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압박으로 작용했던 것일까? 그로부터 이틀 뒤인 18일 네 번째 교섭이 열렸고 고용승계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해고된 조합원 전원이 다음달 1일부터 업무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 받았던 임금을 보장받은 것은 물론 앞으로 용역업체가 바뀐다해도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설 전에 타결돼 참 다행스러웠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해고노동자들은 설을 길바닥에서 보내야 했을 것이다. 이들이 가족들과 따뜻한 설을 보낸 뒤 다시 일터로 돌아와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강혜란 기자는 15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인천공항 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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