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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인 홍익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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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급한 전화라며 양해를 구하더니 각종 영문계약서와 공문서 등으로 이뤄진 수백 쪽의 서류더미를 뒤적였다. 이미 서류의 위치를 꿰찬 듯 상대가 원하는 자료를 이내 찾아냈다. 기자와 문답 과정에선 사무실 한편에 설치된 컴퓨터, 프린터 등을 통해 자료들을 뽑아와 기자 앞에 내놓았다.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것도 있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사무실에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와 4시간 가량 마주앉았다. 이른바 '론스타 사건'에 대한 인터뷰였다. 이날 전 교수는 입이 아니라 자료로 말했다. 전 교수는 두꺼운 서류더미를 살피며 "한때 원하는 자료를 한 번에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지난해 다들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팔고 떠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2003년 9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과정이 위법했고, 심지어는 금융당국의 승인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 의혹까지 불거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자료를 정리해 국민과 언론에 앞장서 알린 이가 바로 전 교수다.

그는 앞서 론스타 문제의 본질 중 하나인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 여부를 처음 공론화 시키기도 했다. 감사원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해 불법이 인정된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던 2007년 3월의 일이다. 당시 발표는 전 교수가 론스타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론스타가 2003년 9월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부실금융회사 인수 예외조항을 적용받은 것을 두고, 감사원은 외환은행 부실이 과장됐기 때문에 인수에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또한 은행법을 뒤지는 도중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16조의 2' 조항을 보니, 산업자본은 금융기관을 인수할 수 없고, 예외조항도 없었던 것이다. 인수 자체가 무효였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없었다... 인수 자체가 무효"

 전성인 홍익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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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전혀 몰랐다고 보나?
"아마 알았을 것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받기 2달 전 외환은행이 법무법인 세종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보면 산업자본 문제를 피해 갈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명 논리를 만들었는데, 지금 금융당국이 하는 말과 같다."

- 금융당국은 산업자본 조항이 외국인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2004년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하나은행 주식 9.99%를 인수할 때, 산업자본 조항을 적용 받았다. 의결권은 4%만 인정됐다. 지금 와서 론스타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면, '벌건 대낮에 하는 거짓말'이지 않겠나." 

현재 금융당국은 당시 산업자본이었다 해도 지금 와서 무효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론스타는 '투자자 바꿔치기'로 외환은행 인수 승인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며 "무효화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무효다, 금융당국의 주장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전 교수는 시계추를 곧장 2003년 가을로 돌렸다.

9월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받은 론스타는 당시 10월 30일 주식대금을 내고, 같은달 31일 등기까지 마치면서 인수를 완료한다. 그런데 주식대금을 내기 하루 전인 10월 29일 론스타 쪽은 금감원에 자신들의 일부 투자자가 바뀌었다며 신고한다. 은행법에 따르면, 금융기관을 인수할 때는 인수자뿐만 아니라 투자자 등 특수관계인까지 금융기관 인수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인수 승인 처분 절차는 없었다.

승인권을 가진 당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가 금감원의 보고로 투자자 바꿔치기 사실을 안 것은 11월 21일이다. 이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전 교수는 "사실상 국내 '바지사장' 격인 론스타 펀드의 바꿔치기 된 투자자는 금융기관 인수 자격 심사조차 받지 않았다"며 "론스타와 투자자가 금융당국의 승인 없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금융당국은 일부 투자자만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항변한다.
"그런 논리라면 삼성전자도 유령회사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뒤 투자자 바꿔치기로 은행을 인수할 수 있다. 또한 금융당국이 당시 자료 확인이 어려워 심사를 제대로 못했다고도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나도 노골적인 봐주기가 있다."

"금융당국이 론스타 위해 조작한 것도 있다"

다시 2003년이다. 당시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받기 위해 23개 관계회사의 내역을 담은 신청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자신들은 산업자본 규정(관계회사 내 산업자본이 2조 원 이상이거나 총자본의 25% 이상)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회사 자본금 내역 등이 들어있는 대차대조표를 제출했다. 23곳 가운데 3곳이었다. 이마저도 엉터리였다. 2곳은 심사 당시 기준 년도에 맞지 않는 대차대조표를 냈고, 나머지 1개는 이마저도 가짜였다.

"이들 중 한 곳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기업등기소 자료에 나온 금액과 완전히 다르다. 둘 중의 하나는 가짜였던 것이다. 대부업체조차 근거자료 없이 대출자의 주장만 믿고 대출해주는 일은 안 한다. 금융당국은 처음부터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형식적으로 자료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론스타가 2003년 9월 3일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받기 위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투자구조도(위)에는 '론스타 매니지먼트'와 '허드코 파트너스'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5일 금융감독위원회의 임시간담회 안건으로 올라온 자료(아래)에는 '론스타 매니지먼트'가 점선으로 그려졌고, 허드코 파트너스는 아예 빠져있다.
 론스타가 2003년 9월 3일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받기 위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투자구조도(위)에는 '론스타 매니지먼트'와 '허드코 파트너스'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5일 금융감독위원회의 임시간담회 안건으로 올라온 자료(아래)에는 '론스타 매니지먼트'가 점선으로 그려졌고, 허드코 파트너스는 아예 빠져있다.
ⓒ 관련 자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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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금감원이 조작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도 있다"고 말했다. 바로 론스타쪽이 제출한 투자구조도다. 론스타가 9월 3일 금감원에 제출한 승인신청서에는 외환은행 인수 결정을 내린 '론스타 매니지먼트'와 그 하위 관계회사들이 그려진 투자구조도가 첨부됐다. 하지만 금감위가 4일 넘겨받아 이튿날인 5일 내부 임시 간담회 안건으로 올린 자료에는 투자구조도 모양이 바뀌어 있었다.

론스타 매니지먼트가 투자 구조도 한쪽에 점선으로만 표시됐고, 론스타의 자산운용사 허드슨 어드바이저의 자회사인 허드코 파트너스도 사라졌다. 전 교수는 "기존 투자구조도라면 두 회사와 관련된 관계회사가 모두 드러난다"며 "금감위는 관계회사들을 은폐하기 위해 하루만에 투자구조도를 다시 그린 것 같다, 론스타를 위해 조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 금융당국은 왜 은폐와 조작을 저지르면서 인수를 승인했을까?
"처음에는 금융당국 실무자들도 반대했다. 당시 감독정책1국장이었던 김석동 현 금융위원장조차 반대했다. 하지만, 윗선에서 조직의 논리로 공무원들을 찍어 눌렀을 것이다. 그 세력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외환은행을 매각시키면서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탐욕이 크지 않았을까.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처한 상황과도 맞아떨어졌다."

-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당시 재경부는 한국은행의 팔을 비틀어 외환은행에 출자하도록 했다. 이후 상황악화로 공적자금을 넣어야 되는 상황이 됐는데, 그럴 경우 한국은행의 출자금은 대부분 날리게 된다. 공적자금을 넣지도 안 넣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론스타가 등장한 것이다."

결국 2003년 9월 26일 금감위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한다. 이후 금융당국은 '원죄' 때문에 제대로된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한국 사회는 9년 동안 론스타 문제를 풀지 못한 채 큰 혼란을 겪게 된다.

* 인터뷰 2편에서 계속됩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외환은행지부 조합원들이 2011년 5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자동 김&장 법률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외환은행 졸속 매각과 먹튀자본 론스타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외환은행지부 조합원들이 2011년 5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자동 김&장 법률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외환은행 졸속 매각과 먹튀자본 론스타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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