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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들이 4년 전부터 하나둘 설 연휴 영업을 개시했어요. 올해는 거의 모든 점포가 영업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자율적이라고는 하지만 눈치가 보여서 안 나올 수도 없어요."

 

지난 22일 경기도 안산의 한 대형마트. 하역장에서 만난 직원 이아무개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날과 명절 당일에도 일하게 돼 고향인 전북 정읍에 가지 못했다. 50대 가장인 그의 가족들도 불만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씨는 인터뷰도 불편한 눈치다.

 

이날 같은 매장 화장품 코너에 근무하는 20대 직원 이아무개씨 역시 "솔직히 대형마트 근무자들 대부분이 명절에 쉬는 것을 바란다"며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명절인데..."라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대형마트 근무자도 설날 쉬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대형마트 종사자의 가족이 "명절 당일만큼은 함께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청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일까지 진행된 청원은 2319명이 서명했다.

 

서명에 참여한 누리꾼들은 "쉬는 게 당연하다"며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서비스유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동참의 뜻을 밝혔다. "그럼 급할 때 장을 어디서 보냐"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쉬어야 한다'는 쪽이 지배적이었다.

 

이와 관련 명절에도 영업을 원하는 일부 고객들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유통업체 사이의 과도한 경쟁이 노동자들의 휴일을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산한 매장... 대형마트는 "고객편의 위해서"

 

23일 설날 당일 아침, 실제로 명절에 문을 연 매장의 모습을 보기 위해 서울 노원구의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오전 11시에 문을 연 매장은 한산했다. 손님이 거의 없으니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곳 직원들도 명절 영업과 관련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 직원은 "차가 막힐 것 같아 늦을까 봐 걱정돼 죽겠는 거예요"라며 "떡국 한 그릇 잽싸게 비우고는 후딱 차에 타서 밟았지 뭐"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여 있는 다른 직원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2층 속옷 매장의 권아무개씨도 아침 일찍 매장으로 출근했다. 권씨는 "제사를 안 지내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아무래도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이 주부들이다 보니 불만이 있다"고 말한다. 권씨는 "명절이라고 특별한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물론 매장을 이용하는 고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대형마트 측은 설 연휴 영업과 관련해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올해 처음으로 명절당일 영업을 실시한 이 대형마트의 관계자는 22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경쟁사들의 명절영업 방침과 고객들의 요구에 의해 명절당일 영업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유통노동자들 평균보다 14시간 많이 일해"

 

이와 관련해 이미경 민주통합당 의원은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연중무휴 영업이나 24시간 연장영업이 업체 간 과당 경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이 "고객들의 요구"에 의해 영업시간을 늘리기보다는 '다른 업체도 하니까'식의 과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발표한 '백화점 등 대형유통매장 이용과 영업활동에 대한 대도시 시민들의 의견취합을 위한 여론조사'에서 '명절에 매장을 휴점해도 좋다'는 의견이 81.9%라고 밝혔다. 지난 7일부터 3일간 서울 등 12개 대도시 1000여 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의 결과다.  10명 중 8명이 명절당일 휴무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를 보면 그동안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명절 영업을 했다는 대형마트 측의 이유는 다소 근거가 떨어진다.

 

이 의원은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서비스유통노동자들의 1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57.2시간으로 전 산업 평균 43.7시간 보다 14시간 많다"며 "심지어 병원노동자들의 46.7시간하고 비교해도 10시간 이상 많이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설날이라든지 추석 때에도 문을 연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이곳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모든 업종 중에서 가장 길게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며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와 백화점 근로자들의 상황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강혜란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대형마트, #명절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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