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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가면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신전만 있는 게 아니다. 후르가다나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도 체험해 볼 수 있다.
▲ 홍해 바닷속 이집트에 가면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신전만 있는 게 아니다. 후르가다나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도 체험해 볼 수 있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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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이 푸른 커튼처럼 일렁이는 곳. 떼를 지어 방향을 트는 붉은 물고기들과 섞여 한 몸이 되는 기분, 형형색색의 산호초 사이를 부드럽게 유영하는 기분은 얼마나 황홀할까, 상상했었다. 물고기와 눈을 맞추고, 절대고요의 깊은 바닷속에서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며 자유를 만끽해야지, 별렀었다.

그러나, 다리를 쩍 벌리고 바닷속으로 풍덩! 빠지는 순간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산소마우스를 입에 문 순간부터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한다는 주의사항은, 코로 숨 쉬어 온 오랜 본능에 밀리고 말았다. 수면으로 떠오르는 사이, 켁! 물을 먹고 말았다. 코가 맵고 숨이 막힌다. 보통 때 같으면, 콧 속에서 찌익 물이 흘러나오고 침 한번 퉤 뱉어내면 그만이지만, 물안경에 산소마우스까지 물었으니 그것도 간단치가 않다. 게다가 난, 합치면 20kg이 넘는 것들을 덕지덕지 내 몸에 붙여 놓은 상태가 아닌가.

꽉 끼는 다이빙슈트(일명 고무옷)를 가까스로 입고, 납덩이가 너댓 개 달린 웨이트를 허리에 차고, 공기탱크가 달린 부력조절 조끼를 걸치고, 바닷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배 위에서 일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난 물고기가 아니라는 걸.

인간 주제에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겠다는 건 건방진 생각. 물고기를 흉내 낸 온갖 것들을 주렁주렁 몸에 달고 나서야 비로소 바닷속 여행은 허락되는 것. 산소마우스를 찬 이상 더 이상 코로 숨쉬는 것은 고통이다. 무거운 공기탱크를 짊어진 이상 지상에서 받는 중력은 고통스럽다. 빨리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게 상책.

저 배를 타고 홍해의 한가운데로 나아가 다이빙을 하게 된다.
 저 배를 타고 홍해의 한가운데로 나아가 다이빙을 하게 된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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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슈트를 껴입고, 웨이트를 차고 공기탱크를 짊어진 조끼까지 입으면 20kg이 넘는 걸 몸에 걸치게 된다. 물속에서는 저것들 때문에 자유롭지만 배 위로 올라올 때에는 지구를 짊어진 것처럼 무거워 죽을 지경이다.
▲ 스쿠버다이빙 장비들 다이빙슈트를 껴입고, 웨이트를 차고 공기탱크를 짊어진 조끼까지 입으면 20kg이 넘는 걸 몸에 걸치게 된다. 물속에서는 저것들 때문에 자유롭지만 배 위로 올라올 때에는 지구를 짊어진 것처럼 무거워 죽을 지경이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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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을 계획할 때, 다이빙을 한다고 해서 나는 손사래를 쳤었다. 남편과 딸만 하라고 했다. 다이빙이라고 해서, 까마득한 절벽에서 수직으로 풍덩 내리꽂히는 건 줄로만 알았는데 바닷속을 구경하는 스쿠버다이빙이란 걸 알고는 설레기 시작했다. 지구의 2/3가 바다인데, 그 넓은 바다의 속을 한번 들어가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신기할까.

물속에서 점잔빼면 코피 터진다

물 밑으로 점점 내려가니 귀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까 숙지해 둔 걸 침착하게 시도해 보았다. 숨을 들이마신 채 흡, 멈춘다. 코를 꽉 틀어 잡고 코 푸는 시늉을 하면, 귀에서 뽁뽁 소리가 나면서 신기하게도 괜찮아진다. 강사 쌤(선생님) 한 명이 딸과 나를 책임지고 바닷속 길을 이끌어준다.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이번에는 코 잡고 뽁뽁이 효과가 없다. 귀가 심하게 아파왔다. 얼른 손바닥을 펴 가슴께에서 지느러미 팔랑거리듯 위아래로 움직이며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강사 쌤은 다시 우리가 위로 올라가는 걸 도와준다.

그렇게 적응을 해가며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첫 번째 다이빙은 그렇게 물속 적응에 애쓰느라 바닷속 풍경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로지 숨쉬고 살아야한다는 생각만 절실했다. 세상에 제일 쉬운 게 숨만 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숨 쉬는 일도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배 위로 올라오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바닷물이 마치 내 몸에 쩍하니 엿가락처럼 달라붙은 느낌, 떼어내느라 아주 혼났다. 물속에선 도움이 되던 것들이 지상에서는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커다란 핀을(오리발) 벗고 무거운 공기탱크도 벗어 던졌다. 남편은 코피가 터졌다. 수신호 방법을 잊어버렸단다.

어휴, 답답하긴. 수신호를 잊었으면, 그냥 손짓 발짓으로 올라가자고 발버둥치면 될 것을 그 고통을 참고, 내려 가잔다고 따라 내려가 피를 보고 만 것이다. 바닷속에서 점잔 떨고 껌벅껌벅 물고기 흉내내다가는 쌍코피 터지기 딱 좋다.

배는 두번째 다이빙 포인트에 섰다. 홍해 바닷속에서 산호초가 몽글몽글 아름답지만 살이 긁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배는 두번째 다이빙 포인트에 섰다. 홍해 바닷속에서 산호초가 몽글몽글 아름답지만 살이 긁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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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에서 준비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배는 또 다른 다이빙 포인트를 향해 움직였다. 하늘보다 바다빛이 더 푸른 지점에서 배는 멈췄다. 일렁이는 바다 밑에서 산호초가 하얗게 비치고 있었다. 두 번째 다이빙을 위해 다시 고무옷을 껴입고 차고 매고, 물안경에 퉤, 침을 넉넉히 뱉은 다음 물로 씻어낸다. 뿌옇게 김이 서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의식하지 않으면 자꾸만 코로 숨을 쉬게 될 것 같아 이번에는 아예 코를 쥐고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바닷속은 상상했던 것처럼 선명한 총천연색은 아니다. 한번씩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노란 줄무늬의 물고기떼들이 신기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 만큼 바닷속이 화려하지는 않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모래먼지가 부옇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막 같다. 사막만 사막이 아니라 바닷속도 사막 같다. 그 사막에 문득 문득 나타나는 예쁜 물고기들은 참으로 반갑다.

그런데 니모(아네모네 피쉬)는 도대체 왜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건지. 길다란 트럼펫피쉬도 보이고 색깔이 알록달록한 피카소피쉬도 보이는데, 주황색 줄무늬를 한 니모만 보이지를 않는다. 강사 쌤(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문어다. 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문어는 언뜻 봐서는 잘 안보일 정도로 보호색을 띤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다의 밑바닥까지 내려오자, 강사 쌤은 우리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무릎을 꿇고 앉으려고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자꾸만 몸이 위로 뜬다. 딸과 나에게 하트도 만들라는 시늉을 하면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준다.

아직 서투른 초보 다이빙 체험자는 강사 쌤의 도움으로 얕은 바다의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산소마우스를 입에 문 이상 입으로만 숨쉬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것.
▲ 스쿠버다이빙 아직 서투른 초보 다이빙 체험자는 강사 쌤의 도움으로 얕은 바다의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산소마우스를 입에 문 이상 입으로만 숨쉬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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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서의 시간은 물보다 더 빨리 흘러갔다. 13m 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30∼40분이 지나가 버렸다. 제법 내려간 듯 싶은데 13m라니 믿기지 않는다. 우리는 다음날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비행기를 탈 예정이기에, 스쿠버다이빙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었다.

다이빙 후 24 시간 이내에 비행기를 타면 위험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 듣고는 잔뜩 겁먹었었다. 다이빙을 하면서 체내에 녹아 있는 질소가 배출되기 전에 비행을 하게 되면 높은 고도로 인해 기압이 낮아지고, 질소가 기체로 나와 혈관이나, 폐, 심장 등으로 들어가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신청한 것은, 수심 30m까지 내려가는 자격증 코스가 아니고 단순한 '체험다이빙'이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홍해는 푸르다

다이빙을 마친 딸은 공기탱크만 벗어 던지고 홀가분한 몸으로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즐겼다. 고무옷과 핀과 물안경만 걸친 채, 머리를 물 속에 처박고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며 즐거워한다. 무섭게 넘실대는 바다 한가운데를 두려움 없이 누비고 다니는 게 신기해 보인다. 하기사 바닥까지 치고 왔는데 두려울 게 뭐 있겠는가. 물 아래 저 끝까지 내려가 봤는데, 수면 위에서 노는 거야 식은 죽 먹기겠지.

물 속으로 들어오라는 딸의 손짓을 못본 척한 나는, 배 위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며 오후의 햇살을 만끽한다. 배 주변에는 까만 줄무늬의 병장물고기들이 점점이 몰려 있다. 녀석들의 별명은 '똥꼬기', 배 주변에서 떨어지는 오물들에 맛들여 야성이 거의 죽었다고 한다.

배 2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홍해의 물빛은 정말 아름답다. 햇빛을 받은 물결이 몽글몽글 반짝거린다, 아직 절단되지 않은 부드러운 원석처럼. 물속의 산호초들이 그림자처럼 하얗게 일렁거린다. 그러고 보니 홍해 물빛이 붉은 게 아니라 푸르디 푸르다.

홍해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해안선 부근에 자라는 붉은 색의 꽃 때문이라는 설, 물이 빠지면 나타나는 붉은 산호초와 해조류 때문이라는 설, 오래 전에 홍해 연안에 갈대가 많았는데 영어 Reed가 변해 Red로 되었다는 설, 플랑크톤이 많아서 생기는 적조현상 때문이라는 설... 또 있다. 바다 이름의 색은 방향을 의미한다는 설, 블랙은 북쪽, 옐로우는 서쪽, 레드는 남쪽, 이런 식으로.

어쨌든 홍해는 붉지 않고 푸르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있는 이 길고 좁은 바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라고 한다. 1월 한겨울인데도 전혀 춥지 않고, 물이 투명하고 해양 생물도 다양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하니, 이집트 여행을 계획한다면 1인당 77불짜리(2011년 기준) 다이빙 체험도 놓치지 마시라.

후르가다에서는 하루종일 다이빙을 즐기는 바람에, 우리가 묵은 호텔이 끼고 있는 해안은 뒷전이었다. 우리 방을 나와서 쉰 발자국만 직진하면 바로 바다인데도, 오다가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발만 몇 번 담그었을 뿐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 내 생애 처음으로 물 속 세상을 구경했으므로 아쉬움은 없었다

홍해 바다에서  다이빙이나 스노클링을 즐기면서  한나절을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홍해 바다에서 다이빙이나 스노클링을 즐기면서 한나절을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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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 2주 동안 이집트를 여행하였습니다.



태그:#스쿠버다이빙, #홍해, #후르가다,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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