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다보면 나도 모르게 "야, 진짜 기가 막히구나!" 하는 사진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인데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요. 그래서 같은 조건에서 찍은 인물사진 수십 장을 펼쳐놓고 차이점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펼쳐놓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순간 무릎을 탁치고 말았는데.
"야, 이 사진 기가 막히네!"라며 감탄을 했던 사진은 찍히는 인물이 예쁘고 안 예쁘고, 또는 돈을 많이 받고 적게 받고를 떠나 피사체(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바탕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론은 사진 촬영으로 인한 이윤 추구보다는 가치(value)와 사명(mission), 그리고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미워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을 번갈아 찍어보세요. 그리고 그 두 인물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결론은 피사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인물사진이 좋습니다
나는 멋진 풍경사진보다, 화려한 꽃 사진보다, 인물사진을 좋아합니다. 강촌 구곡폭포 앞에서 사람이 없는 풍경을 찍기 위해 사람이 비켜나기만 기다리는 사진사들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도 하나의 풍경 속에 포함시키면 될 것을 굳이 악을 써대며 비켜달라고 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자연 풍경이 어디 그리 흔합니까? 나의 몸이라고 어디 내 마음대로 됩니까? 아프기 싫다고 안 아플 수 없으며 늙기 싫다고 안 늙을 수 없듯이 몸은 내 몸이되 어차피 자연에 의해서 관리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멋진 자연의 풍경에서 왜 사람을 지워버리려 애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칠십 할아버지의 깊은 주름 속에 숨겨진 풍경을 보세요. 시장에서 갈치를 사 가라며 악을 써대는 40대 아주머니의 주름 속에 숨겨진 고단한 인생의 풍경을 보세요. 갓난아기 품에 안고 젖 물린 아기엄마의 모습과 칠십 노인네의 주름 속에는 인간의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의 모든 풍경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물의 얼굴에는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벗이 있으니 그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화가가 인간을 그리고자 할 때 어찌 그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 없이 진부한 감각적 인상을 뛰어넘는 그림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월의 더께를 입은 인물사진은 화가처럼 내가 꾸미려하지 않아도 피사체 스스로가 뭔가 이야기를 자꾸 만들어 냅니다. 그것도 순간 순간마다.
오십 고개를 넘긴 사람 앞에서 셔터를 누르는 순간, 필름의 막에는 그 사람의 50년 주름진 세월의 풍경이 담기는 것이지요. 인물사진에는 풍경 사진에 없는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의 인생이라는 무대가 있습니다. 내가 인물사진을 좋아하는 이유이지요. 어느 분의 말씀대로 누런 이를 내 보이며 고단한 얼굴로 씨익 웃는 모습 일지라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오늘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