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압 송전철탑 건설에 반대하며 이치우(74)씨가 분신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통합당 경남도당(위원장 백두현)은 27일 오전 경상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열사의 희생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치우씨는 지난 16일 오후 8시경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분신 사망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공사는 7년 전부터 송전철탑 조성공사를 벌여 왔는데, 주민들은 대책위를 꾸려 반대 투쟁을 벌여 왔다. 이날 한전 측은 이씨 소유 논에 장비를 들여 놓고 공사를 벌였다(관련기사 :
밀양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반대 70대 분신 사망).
이씨는 이날 마을회관 쪽에서 휘발유를 몸에 끼얹은 뒤, 마을 입구 다리 쪽으로 와서 분신했다. 밀양경찰서는 다음 날 '밀양 송전철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 변사사건 발생'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냈다.
경찰은 "집회에 참가한 마을 주민이 불을 피우던 중, 몸에 불이 붙어 사망한 사건 발생"이라며 "변사자가 사건 당일 집회현장 주변 변사장소에서 나무 잔가지를 모아 붙을 붙이려고 하다 잘 붙지 않아 다시 불을 붙이던 중 변사자 몸에 불이 옮겨 붙어 사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찰은 "주변에 있던 정보관(3명)이 화재를 목격하고, 마을회관에서 소화기 1점을 가져와 진화했고, 정보관 1명이 우측 손바닥에 화상을 입었다"면서 "사체를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서 직원' 119에 신고하며 "분신 환자 있다"고 말해민주통합당 경남도당은 분신 사고 직후 현장에 있었던 '밀양경찰서 직원'이라는 사람이 119구조대에 전화로 신고한 뒤 나눈 대화 내용을 입수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16일 오후 8시 9분 45초부터 약 42초 동안 통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황실 : 예, 119입니다.신고자 : 여기 보라동에 빨리 빨리요.상황실 : 어디 보라동입니까?신고자 : 산밭에 보라동에 산밭에 산밭에. 산외면 보라동에 분신 환자가 있어요.상황실 : 침착하시고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요.신고자 : 산외면 보라마을에 분신하신 분이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상황실 : 불이 붙었습니까?신고자 : 네. 밀양경찰서 직원인데 빨리요.상황실 : 알겠습니다.녹음 파일 자료를 보면, 분신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이 119구조대에 신고한 것으로 보인다. '고 이치우 열사 장례위원회' 우일식 집행위원장은 "당시 집회 현장에는 경찰관이 네 명 정도 있었다. 119구조대에는 누가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고, 현장에 있던 경찰관 가운데 한 명이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신 사고 당일 경찰이 119구조대에 신고하면서 '분신'이라고 했지만, 다음날 밀양경찰서가 낸 자료에는 '분신'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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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송전철탑 반대 주민 분신 사망 뒤 신고자 녹음 파일 밀양 송전철탑 반대 주민인 이치우(74)씨가 지난 16일 오후 8시경 분신 사망 뒤 주민이 112구조대에 신고하며 나눈 대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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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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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경찰이 정확한 조사 없이 단순과실사로 발표"민주통합당 도당은 이날 회견문을 통해 "밀양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 날 정확한 현장조사와 사인을 규명하지 않은 채 단순 과실사로 발표했다"면서 "경찰은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주민과 유족의 비통함을 뒤로 하고 송전선로 건설 반대와 고인의 죽음을 별개로 처리해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민주통합당 도당은 "경찰은 분신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서 "119신고 내용을 보면, 스스로 경찰서 직원이라고 한 신고자는 분신하신 분이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라마을 주민과 유가족들은 분신사망 사고가 일어난 뒤 시신을 옮기지 못하도록 했다. 밀양소방서 119대원이 현장에 출동해 시신을 후송하려고 했지만 주민들이 거부했던 것. 민주통합당 도당이 낸 '이송 거절·거부 확인서'에 보면, '자살 시도'라고 해 놓았다.
이와 관련해 민주통합당 도당은 "소방서도 '자살 시도'라고 표기했다"면서 "이런 사실을 비추어 볼 때, 경찰은 이번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 의구심을 충분히 들게 한다. 경찰의 발표는 한전 측 책임회피에 한 몫 거들고 있어 더 분통터진다"고 강조했다.
또 민주통합당 도당은 "한전 측은 지난 19일 국회 지식경제위 조경태 의원의 질문에 대해 경찰의 발표 내용을 빌려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분신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며 "고인의 죽음에는 지식경제부와 한전의 책임이 크다. 경찰이 이들의 책임 회피에 거드는 모양새를 취한다면 정부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백두현 위원장은 "고인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97세 노모는 아직도 아들이 죽은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고인이 오죽 답답했으면 분신을 했겠느냐. 경찰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태권 밀양지역위원장은 "지난 19일 국회 상임위 때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어제 저녁에 홍 장관과 휴대전화 통화를 했는데, 자료를 준비해서 내려오겠다고 했다. 어떤 자료를 갖고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정선 밀양시의원은 "마을 분신 현장에 있던 빈소를 밀양시청 앞으로 옮겼는데, 시청 앞 길 옆 화단에 설치해 놓고 있다"며 "거기는 빈소라고 할 수도 없다. 밀양시의 태도도 문제다"라고 말했다.
경찰 "수사 안 끝났다. 분신인지 아닌지 아직 단정 못해"경찰은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밀양경찰서 관계자는 "아직 수사가 끝난 게 아니고 계속하고 있다"며 "분신인지 아닌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을 수사하고, 국과수 결과가 나온 뒤에 종합 발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인이 몸에 유류를 끼얹고 있었다는데, 유류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등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한다. 유가족에 대해서는 장례 기간이라 조사를 아직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화재에 의한 사망'이라는 진단서를 냈다. 경찰은 유가족 수사와 국과수 부검 결과 등을 종합해 조만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