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겠지요? 어른이 된다는 건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한 데 모으고 견인하는 몫까지도 지니는 일이겠지요. 어른이 된다는 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가려야 되는 거겠지요. 그럴때 젊은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겠지요.
또한 젊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른들의 관점과 말투를 이해하는 폭이 깊어지는 걸 뜻하겠지요. 나이 많은 어른들과 젊은이들이 지닌 관점과 말투를 극복하는 길은 서로 간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비롯되겠지요.
설을 쇠러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와 여러 형제들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올해로 79세가 된 울 어머니는 부쩍 늙으셨습니다. 얼굴도 주름살이 더 늘어났고 그토록 건강하던 이빨들도 하나 둘 빠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수술했던 고관절 부위도 자꾸자꾸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가 가는 세월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 죄다 퍼주실 겁니다
저녁밥을 먹던 명절 전날 밤 형제들은 자녀교육에 관한 걸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야 할 조카들이랑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할 중학교 3학년 조카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우리 집 둘째 아이도 있는지라, 다들 자녀교육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만큼 자신들이 살아오고 교육시킨 관점들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자녀교육이 힘든 건 어느 지역이든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일과 식혜를 먹는 동안 <K팝스타>가 흘러나오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그 가운데 여성 4인조그룹인 '수펄스'의 라이브 실력은 가장 파워풀했습니다. 예전의 '빅마마'를 연상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두고 어른 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나이 많은 형님들과 형수님들은 그 프로가 아이들을 한탕주의로 물들게 할 수 있다고 비평했고, 젊은 축에 속한 나는 그나마 개천에서 용 나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호평했습니다.
명절을 보내고 각지로 흩어지는 자식들을 보내는 울 어머니는 못내 허전한 듯 했습니다. 휑하던 집구석이 모처럼 만에 여러 자식들로 바글바글 대다가 떠나가고 있었으니 더욱 스산하게 느꼈겠지요. 그렇게 떠나가는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용돈을 한 장 한 장 안겨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나물과 떡과 된장까지도 바리바리 싸주셨습니다. 울 어머니가 그렇듯이,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도 자기 자식들에게는 아낌없이 죄다 퍼주실 것입니다.
"다른 집 며느라기들은 명절 음식들 남으면 갖다 버린다는 디?""저는 안 버려요, 어머니.""모르제. 안 보는 디서는 버릴지도.""저는 아까워서라도 못 버려요, 어머니."어머니의 빈 말... 아내는 먹먹했지만
서울로 올라오는 차 속에서 아내는 시어머니가 쏟아 부은 말을 종종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막내며느리를 가장 아끼는 것 같지만 어떨 때는 또 퉁명스럽게 말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빈 말로 던진 그 말이 아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는지, 그 답답함은 다음날까지 이어졌고,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떡국을 남겨야 하는 내 처지로서는, 그런 아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대 간의 관점과 말투는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걸 소화하는 게 관건입니다. 나이 많은 분들은 평소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가볍게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랫사람이 밉기 때문에 쓴 소리를 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저 염려하는 눈치로 툭툭 던지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하는 말 가운데는 하찮은 말이 하나도 없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겠지요.
어른이 된다는 건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젊은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야 하고, 습관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말들도 가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것들을 조율하고 조절할 때에만 진정한 어른으로 칭송을 받겠지요. 물론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오신 분들에게는 쉽지 않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니 나이 어린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의 속마음을 깊이 헤아리면서 살아야 하겠지요. 거기에 보람이 있다는 것은 겪어 본 사람들만 알 수 있을 테니, 내 아내는 울 어머니가 불쑥 던진 빈 말을 곧잘 소화해 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