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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길의 끝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길만 보면 그저 가고 싶어지던 그런 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는데.
▲ 시와 오아시스를 향해 가는 중에 만난 길 저 길의 끝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길만 보면 그저 가고 싶어지던 그런 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는데.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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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험난한 시와 가는 길

질퍽질퍽해진 진흙 속으로 가방 바퀴가 푹푹 빠진다. 서둘러 버스에 오른 우리 가족의 옷자락과 캐리어 가방엔 흙탕물이 툭툭 묻어 있다. 그래도 우리는 안도한다. 이 버스를 놓쳤다면, 멀고먼 오아시스 마을 시와를 가는 길은 얼마나 험난할 것인가.

버스 출발 시간이 8시인지 8시 30분인지 명확한 가이드가 없어, 8시에 맞추어 나온 일은 천만다행이었다. 전날 후르가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와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탔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 시와로 간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버스터미널이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려고 해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 차 떠날 시간은 다가오는데, 있어야 할 터미널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사람들과 말은 안 통하고, 사막이 따로 없다. 너무 막막하고 답답했다. 남편과 나는 따로 갈라져, 무거운 가방을 이리 저리 끌고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말을 걸어 봐도 알아먹지를 못했다.

우연히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 중에 하나쯤은 말이 통하겠지 싶어 들이댔다. 영어와 손짓 몸짓, 가이드북의 사진까지 들이 댄 우리의 간절한 표현을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는 마침내 해독(!)해 냈다! 그리고는 서둘러 택시를 잡아 주고 기사에게 뭐라고뭐라고 부탁을 했다. 이런! 버스터미널이 이사를 간 것이다. 가이드북 개정판이 나온 지 반년 밖에 안 되었는데 그새 터미널이 옮겨진 건 불행이었지만, 버스가 8시 30분에 출발한 건 다행이었다.

시와를 향해 9시간이나 달려갈 버스 바닥의 양탄자에서는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의자의 시트나 커버도 꼬질꼬질하고 닦지 않은 차창 유리는 뿌옇다. 이제 그런 것쯤은 익숙하다. 더구나 리비아 사막의 끝자락에 있는 오지 마을, 시와는 더 투박하고 더 거칠고 더 지저분할 게 뻔하다.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여유만빵 싸댕질'

오로지 우리는 시와를 가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로 왔었다. 전날 오후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고 그냥 가볍게 뒷골목과 지중해변을 싸돌아 다녔다. 그런 '싸댕질(싸돌아 댕기기)'은 가끔 여행에 양념을 더해 준다. 특별한 목적지 없는 '여유만빵 싸댕질'은 가끔 생각지 못한 소소한 풍경들을 선사해 준다.

알렉산드리아의 저녁 뒷골목은 어두웠지만 이집션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스프를 파는 포장마차, 허름한 세탁소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은 아랍 글자의 간판들 사이로 트램이 이따금씩 지나쳐 가곤 했다.

그리이스 로마시대의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다른 도시와 달리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 지중해변을 따라 나 있는 코르니쉬 거리에는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했고, 거리에 어둠이 짙게 내리자 독특한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중해변을 따라 길게 나 있는 둑에는 여러 쌍의 연인들이 똑같은 형태로 마주하고 있었다. 히잡을 두른 여자는 둑 위에 걸터 앉아 있고, 남자는 선 채로 밀어를 나누듯 여자와 눈을 맞추고 있다. 2, 3m 간격으로 연인들은 똑같은 형태로 데이트를 즐겼다. 마치 단체 미팅이라도 나온 듯이.

밤이 되면 지중해변에서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다들 비슷한 포즈로 데이트를 즐긴다. 단체미팅이라도 나온 것처럼.
▲ 알렉산드리아의 연인들 밤이 되면 지중해변에서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다들 비슷한 포즈로 데이트를 즐긴다. 단체미팅이라도 나온 것처럼.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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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경도 재미있다지만, 젊은 남녀 연애하는 구경도 그에 못지않다. 우리 가족은 해변을 따라 산책하는 척 했지만 실은 그런 남녀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빙그레 웃었다. 나는 사진기를 손에 움켜쥐고는 이 재밌는 광경을 포착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얼른 한 장 찍기는 했지만 영 시원찮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다시 기회를 노리는데, 한 남자가 내 속셈을 눈치챘는지, 얼마든지 사진을 찍으라며 호기롭게 권한다.

이게 웬떡! 이냐 싶었는데 순간, 여자가 정색을 하며 남자에게 날카롭게 반응을 한다. 남자는 반항하듯 나를 향해 괜찮으니 어서 찍으라는 시늉을 해 보인다. 여자는 다시 남자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거세게 항의하듯 쏘아 붙이고, 남자는 되받아치며 다툰다. 그 순간, 여자는 찰싹! 남자의 뺨을 때렸다. 당황한 건 우리 가족이다. 남자는 오기를 부리듯 그래도 사진을 찍으라고 나를 향해 외친다. 나는 손사래를 쳤고 우리 가족은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아마도 그 여인이 한 말은 이런 말이었으리라.

'자기야, 정신 나갔어? 어딜 감히 사진을 찍으래. 우리 엄마 알면 나 다리몽댕이 분질러져. 다신 밤에 나오지도 못한단 말이야!'

뺨까지 때린 걸로 봐서 좀 더 수위가 높았는지도 모르겠다.

'야, 이 자식아 너 미쳤니? 내 남자친구가 보면 어쩌라고. 인터넷에 사진 올리면 난 끝장이라구! 이 멍청아!'

아무려나. 젊은 남녀 연애 구경도 재미있지만, 사랑 싸움은 더 재미있다.

우리는 지금 시와로 간다

사막을 달리는 버스 속에서, 서둘러 떠나온 알렉산드리아의 기억을 천천히 되새기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서둘러 떠나온 도시에 대한 아쉬움을 그렇게 위로하는 사이, 차창으로 보이는 사막의 모래는 점점 고와지고 있다. 가끔 보이던 사막의 공사 흔적도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 더러 낙타가 보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점점 드물어진다.

카이로에서 550km나 뚝 떨어져 있는 시와. 나일강을 따라 있는 이집트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사막의 끝자락에 동그마니 돌아앉은 시와. 왠지 그 이름만 들어도 신비하고 아득한 느낌이 든다. 가보기도 전부터 만나기도 전부터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곳 시와. 우리는 지금 그 시와를 향해 가고 있다.

끝없는 길을 버스는 하염없이 달리고, 겨울이지만 낮 동안 제법 강렬하던 사막의 태양은 봄빛처럼 수굿해져 이마와 뺨을 어루만진다. 구름은 가벼운 깃털처럼 하늘에 번져 있다. 하늘은 점점 넓어져 땅과 사이좋게 차창을 반으로 갈랐다. 시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와 가는 도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그들을 보았다. 무슬림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때가 되면  신을 경배한다. 기차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신전 구석에서도.
 시와 가는 도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그들을 보았다. 무슬림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때가 되면 신을 경배한다. 기차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신전 구석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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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여인의 옷자락.
▲ 사막의 화장실 그림자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여인의 옷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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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아스완-->아부심벨-->아스완-->룩소르-->후르가다-->알렉산드리아-->시와 오아시스-->카이로
▲ 우리 가족의 이집트 여행길 카이로-->아스완-->아부심벨-->아스완-->룩소르-->후르가다-->알렉산드리아-->시와 오아시스-->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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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 2주 동안 이집트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알렉산드리아, #지중해변의 연인들, #시와 오아시스, #리비아 사막,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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