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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0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지난해 9월 20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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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겠단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면 우선 법정 근로시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정 근로기준법 제49조에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제53조에는 '당사자의 합의로 1주간 12시간 연장근로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요약하자면 법정 근로시간은 1주일에 40시간이며(하루 8시간씩 5일 근무가 일반적이라 '주5일제'라고 흔히 말한다), 합의에 의해 12시간을 더 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 보면 일주일에 40시간은 고사하고,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 자료를 통해 보더라도 한국 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전체 평균 1766시간보다 약 500시간이나 더 많은 2243시간(2009년 자료)에 달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기업들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법정 근로시간인 52시간 동안 일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법정 공휴일에 특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제 근로시간은 52시간을 넘어 68시간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40시간 근무제가 2004년 7월 1일부터 시작됐지만(5인 이상 사업장은 2011년부터), 실제로 노동자들은 그 두 배에 육박하는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차라리 연장수당 지급하는 게 이익

1주일에 40시간을 일하고 합의에 따라 1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그건 당연히 휴일 근무도 포함되는 게 맞다. 하지만 기업주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를 더 고용하는 것보다 연장수당을 지급하는 게 비용이 덜든다. 노동자들은 워낙 낮은 기본급 때문에 연장 근로를 해서라도 수입을 올리기 위해 암묵적으로 이에 동의하고 일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부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초과 근무를 하게끔 유도한 다음 법정 시간을 이유로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도 한다.

예를 하나 들자. 아래 내용은 내가 한국의 어느 대기업에 다니면서 이와 같은 일을 직접 겪고, 인사팀장에게 보낸 메일 중 일부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우선 12시간 초과 근무에 대한 연장근무수당 지급 중단의 건입니다. 12시간 2교대 근무로도 장비 운영이 벅차 그 이상의 시간을 라인에서 보내는 엔지니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야간 출근을 해서 그 다음날 점심을 먹고 퇴근하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을 보면서 측은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이나, 격려의 말 한마디 대신 기존에 지급되던 수당마저 줄어드는 상황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하루 4시간 이상의 연장근무가 불법인 것은 하루 4시간 이상 일을 시키지 말라는 의미이지, 하루 4시간 이상 일을 해도 보상을 해 주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잔업을 4시간 이상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보상은 불법이라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한 일입니다. 더욱이 이번 일은 이미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위와 같은 내용의 메일을 인사팀장과 관리자 모두에게 보내고 개선을 요구한 결과 약간의 인원 보충과 일을 시킨 후 법을 들먹이며 수당을 주지 않는 부조리는 개선됐지만, 문제 제기를 한 나는 얼마 뒤 여러가지 이유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노동자, 수입 준다고 화낼 게 아니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기업들은 허점을 찾아서 이를 악용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마련이다.

노동조합 결성율이 10% 남짓한 상황에서 개별 노조의 노력만으로 전체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법과 제도가 제대로 적용되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에 무슨 이유에선지 근로시간 단축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귀 막아 왔던 정부가 뒤늦게 태도를 바꾼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실제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가 실현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법 개정도 필요 없이 잘못된 관행만 바로 잡으면 되는 일(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관행이 사라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실질임금이 줄어 들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염려해 장시간 노동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르다. 노동자들은 임금 총액을 보전받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각종 수당을 기본급으로 합쳐서 터무니 없이 낮은 기본급의 비율을 높이고,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법정 최저임금 역시 현실적인 수준으로 대폭 끌어 올리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이루려는 궁극적인 목표,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이 실현될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실업률 감소로 이어져

근로시간 단축은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실업률 감소를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직업 선택의 기회를 넓히는 계기가 된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장시간 노동이 가져오는 산업재해와 노동자 개인의 건강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일주일에 72시간 넘게 혹사당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고교 실습생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이 사건은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똑똑히 보여줬다.

더불어 대기업에서 미성년자에게조차 이처럼 학대에 가까운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은 개별 기업에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맡겨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근로시간 단축을 포함해 노동환경 전반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필요한 시점이다. 솔직히 너무 늦은 감이 있다.

'1%만을 위한 1% 정권'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뜬금없이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 이 정책이 과연 노동자들의 삶을 질 개선으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아무렇게나 던져 보는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태그:#근로시간, #연장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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