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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노조원을 대표하는 조직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다. 그 산하단체인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은 500개 사업장 5만명의 노조원들을 대표한다. 그 전국화학노련의 최고 수장이 일동제약 노조위원장이기도 한 김동명 위원장(45)이다. 그는 지난해 4월, 한국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2차에 걸친 투표를 거쳐 참석 대의원의 60%의 지지를 받아 전국화학노련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1967년 안성시 보개면 출생. 1989년 일동제약 입사. 1994년부터 일동제약 노조위원장(6선). 1997년부터 전국화학노조연맹 경기남부지방본부 본부장. 2011년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위원장 당선.
▲ 김동명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위원장 1967년 안성시 보개면 출생. 1989년 일동제약 입사. 1994년부터 일동제약 노조위원장(6선). 1997년부터 전국화학노조연맹 경기남부지방본부 본부장. 2011년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위원장 당선.
ⓒ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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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제약의 노조원은 320여명이다. 이렇게 작은 노조의 위원장이 전국단위 연맹의 수장이 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 배경에는 한국노총 내부의, 또 현장 노동자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작용했다고 분석된다. 현장에 대한 기대와 갈망에 비하면 그동안 한국노총 지도부 주도의 변화는 너무 느렸고 결과적으로 그 변화에의 열망이 인물교체, 세대교체를 견인했으며, 그것이 현실화한 자리에 김동명 위원장의 당선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선거 당시 김동명 위원장은 나이가 어리고, 경륜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뚝심과 강력한 투쟁력'을 내세웠고, 결국 다소 위험부담이 있어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그를 당선시켰다. 의외의 결과였다. 결국 김동명 위원장은 위험부담과 변화, 그 사이에 놓여있는 자다.

지난해 10월 김 위원장이 이끄는 화학노련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지지를 천명했다. 한국노총 산하 노련 중 유일한지지 천명이었다. 김 위원장은 그것으로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자임을 증명했다.   

위험부담과 변화, 그 사이 어느 지점

23살에 일동제약에 입사해 최초의 노조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학력에 따른 차별, 사무직과 생산직의 차별이 보인다고 했다. 단순한 급여 차원이 차별만이 아니라 불합리한 대우가 눈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노조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사권이 남용되고 작업방식이나 작업강도의 조절에 있어서도 자율성은 없고 억압적이기만 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노조의 필요성을 느꼈죠."

결국 그는 입사 2년차부터 대의원, 교섭위원 등을 하며 노조활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한창 젊은 때라 먹고사는 게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그때는 먹고사는 게 기준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판단했어요." 그의 말 속에서 옳고 그름이 최고의 기준이었다는 시절은 순수하고 아름다웠을 듯했다. 

노조가 왜 있어야 하는 건지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고용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일하는 사람의 권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는데, 기업 내에서 불합리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개인적인 대항은 어렵지요. 더불어 개인의 경쟁력만 가지고 회사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그런 상황에선 약자의 연대를 통해, 저항하고 뜻을 관철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전국화학노련이 주최한 제약노동자 생존권 사수를 위한 결의대회.
▲ 지난해 11월 4일 국회의사당 앞 전국화학노련이 주최한 제약노동자 생존권 사수를 위한 결의대회.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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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동명 위원장은 노조의 존재 이유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그대로 실현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일동제약 노조위원장으로 있는 17년 간 그는 단 한 명의 해고자도, 비정규직도 합의한 바가 없다. 게다가 회사가 1차 부도를 맞은 상황에서도 명퇴를 신청한 조합원까지 사표를 철회시키도록 설득하도 했다. 이러한 기록 아래서도 일동제약은 여전히 건재한 기업이다. 신자유주의, 구제금융의 광풍에도 해고나 비정규직 고용 없이 기업과 노동자가 모두 멀쩡했다. 좀 놀랍지 않은가?

"노조의 기본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 기본을 못 한다면 노조의 정통성을 지킬 수 없고 그런 노조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말이 철심을 박은 듯 묵직하고 거침이 없다. 더불어 그가 인상적인 말을 덧붙인다. "약자들의 연대는 그 자체가 사회정의입니다." 

그는 일동제약에서 지금까지 6선을 기록했다. 노조원들이 그를 여섯 번이나 위원장으로 뽑은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김 위원장이 이끄는 노조라면 '고용이 보장될 거라는 믿음'과 그가 이끄는 지도부는 '결코 야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노조원들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의 위기 상황을 건너오면서 "단결된 힘이면 이길 수 있다"는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을 노조원들에게 제공했다. 거기에 6선의 비결이 있다.

김동명 위원장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화학노련을 '가장 올바른 방향성을 가진, 똘똘 뭉친, 건강한, 최고의 조직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포부가 그냥 포부가 아니라 정말 당장이라도 밀어붙일 듯 한 기세였다. 그는 거의 매일 일선 현장을 방문한다. 화학노련은 5인 미만의 작은 규모의 업체부터 업체가 전국에 산재해 있는데 그 사정은 그에게 애로사항이 되지 않는다.

임기가 시작된 지난해 4월부터 지금까지 달린 거리만 3만㎞에 달한다. 현장에서 1박이나 2박을 하며 노조원들을 만나는 것이 위원장의 의무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간다. 얼굴 도장을 찍어야 일선 노조와 조합원들의 노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가서 단위사업장의 문제에 연맹이 든든히 뒤를 받치고, 이후에 그 작은 승리의 힘을 모아 노조법 전면개정 같은 큰 이슈를 미는 조직된 힘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다. "어떤 현안에도 강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조직적이고 단결된 힘을 만들어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저돌적인 추진력이 그의 강점이다. 그의 이런 면을 두고 '탱크'라는 별명이 생겼겠지 싶다.  

한국노총의 민주통합당 참여, 현실적 대안

한국노총은 지난 12월 민주통합당의 주체로 참여, 앞으로의 총선과 대선에 적극 개입할 것을 선언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노조의 정치참여에 대해 "기업별 노조만 가지고는 우리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 했다.

"정치력을 가져서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기업별 파업으로 임금 몇 프로 인상하더라도, 세율이나 물가가 조금만 상승해도 도루묵이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그동안의 노조가 이익투쟁만을 해왔다면 이제는 부조리한 사회제도를 바꾸는데 일조하는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이 되어야 합니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노조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거죠." 

더불어 민주통합당 참여에 대해서는 "지도부 차원의 결단"이라고 표현했다.
"노조법 개정 등이 한국노총의 조직력만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결국 정치적 힘으로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은 것이죠. 그동안 한국노총의 정치세력화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총선,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현안을 정치력으로라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현실적으로 민주통합당이 대안이었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이번 제1야당, 시민사회 세력과 함께하는 통합정당 건설이 한국노총 역사상 가장 획기적이고 중요한 정치참여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향후 친노동자 조직의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고 노동정책 입안에 있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물론 이후 통합정당 내부에서 혁신적인 정책이 실패할 경우, 다시금 한국노총의 정치참여는 이용만 당한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민주통합당 참여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한국노총이 민원인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당에 직접 들어가 당의 일원으로서 당을 설득해내고 참여의 내용을 채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노총의 민주통합당 참여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일이지만, 곧 변화의 한가운데에서의 일이기도 하다. 그러하니 우선은 지켜볼 일이었다.    

이전의 한국노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노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버려야 합니다. 100만 노동자의 조직인데, 지도부의 잘못된 행태만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말이 단호하다. 한국노총의 비판 앞에서도 그가 단호할 수 있는 데는 자신의 모든 지향이 노조원들에서 근거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 듯했다.

그는 당장 3개월도 남지 않은 총선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화학노련 차원에서 당원모집에 나서고, 노총 후보가 나오든 안 나오든, 선거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 운동을 할 것이라 했다. 듣자니, 그동안 잠잠히 머물러 있던 천군만마가 이윽고 전면전을 선포하고 전장으로 내달리는 듯했다. 

한 명의 해고도, 비정규직도 없는 세상 만들기

노동기본권 사수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 2011년 노동절의 여의도 노동기본권 사수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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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지역의 한국노총 체육대회 때 일동제약 노조 천막에는 아이들을 대동한 엄마 노조원들이 많았다. 일동제약 노동자들 중 3분의 2는 여성이고, 해고가 없는 이 회사에는 장기 근속한 노동자가 많다. 그래서 애 둘 낳고, 셋 낳을 동안에도 이 여성들은 여전히 노동자이며 노조원이다. 노조원들과 그 자녀들이 뛰노는 사이에 임꺽정처럼 아무렇게나 생긴(?) 김동명 위원장이 있었다. 일동제약 노조원들의 아름다운 가을날은 그렇게 평화로웠다. 고용불안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당연히 있어야 할 세상이라고 그 풍경은 말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에게 노조원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 물었다. 이 임꺽정은 "두려운 마음으로 대한다"고 대답한다. 의외의 답변이었다. "조합원이 주인이고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노조의 존재 이유가 조합원들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그가 말한다. 주인을 대하는 머슴의 경외심이 느껴졌다. 그는 털털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뿐 가공을 모르는 사람이다. 말하는데 있어 가림이 없고 직설적이다. 할 말 다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도부란 느낌이 없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이 역설적이면서도 매력적이었다.

김동명 위원장은 유년 시절 영세농의 아들이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은 자라서 뭐가 될 거란 야무진 꿈은 없었지만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인 건 알았다. 타고난 반골의 기질이 있어 어려서 반항이 많았다. 그 기질대로 논바닥을 뛰어다니며 자란 김동명은 이제 전국화학노련의 수장으로서 한국노총의 변화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이끌겠다고 나서고 있다.

어디선가 탱크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나 처음부터 길을 다 알지는 않는다. 노동자나 한국노총이나 시행착오를 거치는 가운데 성장해 결국 궁극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걸음이 느릴지라도 김 위원장의 말처럼 그것은 약자들의 연대이므로 무조건 정의롭다. 김동명 위원장의 앞으로의 걸음이 지축을 흔드는 큰 걸음이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월 1일자 안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국노총, #화학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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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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