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재벌가 자녀의 빵집 사업이 한바탕 파장을 일으켰다. 대통령까지 한마디 할 정도였다. 지난 1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재벌 2~3세 본인들은 취미로 할지 모르지만 빵집을 하는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이 발언이 나오자 삼성을 필두로 현대, 엘지 등이 상당히 발 빠르게 빵집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특별한 저항도 없었다.

신속한 빵집 사업 철수, 재벌의 속내는?

특히 삼성의 민첩한 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해 7월에도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사업이 여론의 비난을 받자 즉시 삼성계열사인 아이마켓코리아(IMK)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지난해 12월 지분매각 조치를 했다. 올 1월에는 세탁기, TV 등에 대해 엘지와 가격담합행위를 한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자, 이를 "회사를 해치는 행위"라면서 담합행위가 그룹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실무자 개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대처했다. 그러더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베이커리 체인 '아티제' 포기 발표까지 즉각 이어졌다.

.
▲ [표1] 재벌가 자녀의 제과 외식업 철수 결정 내역 .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재벌이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거를 앞두고 여당까지 재벌개혁을 들고 나오니 알아서 몸을 사리는 것일까?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이미 금권과 언론, 관료들을 쥐고 있는 재벌이 그 정도에 꼬리를 내리지는 않는다. 사실 한국의 재벌은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 몸을 사리는 중이다.

그것은 바로 재벌 3세 자녀들의 분할 상속과 분할 승계 절차다. 상속과 승계를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재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는 차기 정권 임기 중에 3세 분할 승계를 매듭지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대사를 앞두고 빵집 같은 작은 문제로 인해 현재의 재벌 체제가 흔들리면 안 된다. 빵집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주로 대기업은 해외 진출에 성공한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국내 유통재벌들의 SSM(기업형 슈퍼마켓) 사업 확장과 최근 재벌 자녀들의 빵집 사업 등을 계기로 재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국내 시장과 산업에 대해 엄청난 장악력을 행사하는 독점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빵과 커피, 순대와 청국장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산업 전 영역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재벌을 향해 국민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핵심문제

재벌의 이런 문제는 '경제력 집중'이라고 표현한다. 경제력 집중은 ▲특정 제품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시장 집중' ▲총수나 가족에게 재벌 그룹의 경제적 자원의 배치와 사용 권한이 집중되는 '소유 집중' ▲산업이나 제조업 일반이나 국민경제 전체와 같은 광범위한 경제영역에서 특정한 기업집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반 집중'으로 구분된다. 한국 재벌의 경우 특히 일반 집중이 주의를 요하는 문제이다.

특정 기업집단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면, 즉 일반집중이 심화되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낳게 된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거대기업 집단들, 미국의 트러스트, 독일의 콘체른, 일본의 계열(系列)이 모두 그러한 우려를 일으켰고 특히 독일과 일본의 기업집단은 파시즘의 경제적 기초라는 지목을 받았다.

결국 미국 최초의 트러스트 스탠더드오일의 해체,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독일 콘체른과 일본 계열의 해체로 연결된 것이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이 가져온 역사적 결말이었다.

한국의 재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 재벌은 50여 년 정도의 짧은 역사에도 1970년대 말의 율산그룹 파산과 구조조정이 있었고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재벌체제의 부분해체와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당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었고, 환란에 의한 외부적 압박으로 재벌 대기업 집단의 절반 가까이가 해체되는 운명을 경험했다.

그런데 2012년 지금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총생산 대비 재벌 집단의 자산이나 매출액 규모를 측정해보면 현재의 재벌 경제력 집중은 대체로 거의 외환위기 당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연구들도 한결같이 "한국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이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일정 정도 감소하였으나, 구조조정이 일단락 된 2002년을 기점으로 하여 다시 상승하여 2011년 현재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친 기업 정책을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 정부 4년 기간 동안 경제력 집중이 급속히 진행되었다는 것은 모든 자료에서 확인된다.

재벌 3세 상속과 승계로 경제력 집중 심화 우려

특히 최근에는 재벌의 사업 영역이 빵과 순대를 거론할 정도로 다양해졌다는 점, 수출시장 중심의 제조업보다는 국내시장 중심의 서비스 분야로 업종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더 문제다. 이른바 업종 다각화가 확대된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개 재벌 기업집단의 "평균 영위업종 수가 2002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상승하여 2001년 10.6개 업종에서 2011년 17.1개 업종으로 대폭 증가하여 영위업종 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기업집단의 다각화 활동이 활발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런데 재벌 3세의 분할 승계과정은 필연적으로 또 한 번의 경제력 집중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재벌가의 각 자녀들이 맡고 있는 계열 부분을 키워서 분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자녀들이 분할 상속을 통해 파생 재벌그룹을 만들어내면서 더욱 커다란 재벌 가문을 만들어간 사례를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2세대 재벌 가족들의 분할 승계와 파생재벌 탄생의 역사를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최상위 재벌 그룹인 삼성과 현대, 엘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완전히 2세대 분할 승계가 완료되면서 다수의 파생재벌을 탄생시켰다. 파생재벌들 역시 업계의 상위로 진입했고, 이들을 모두 합쳐 전체 재벌 가문의 경제력 집중도를 계산해보면 그 정도는 훨씬 상승한다. 

삼성은 씨제이(14위), 신세계(16위)를 포함하여, 현대는 현대차, 현대(18위), 현대 중공업(6위), 현대 백화점(26위), 현대산업개발(33위)을 포함하여, 엘지는 지에스(7위)와 엘에스(13위)를 포함하여 계산해보았다. 그 결과 국내 총생산 대비 5대 재벌의 매출액 비중은 55%에서 70%로 뛰어 오르고, 순이익 비중은 4.5%에서 5.6%로 뛰어올랐다. 결국 외환위기로 인해 재벌의 절반이 해체되었다지만, 살아남은 거대 재벌들은 2세 분할 승계과정에서 친족들로 구성된 새로운 파생재벌을 만들어내면서 해체된 재벌의 빈자리를 메워갔다.

재벌을 추적해왔던 경제개혁연대 등에서 이미 2011년 3세 상속 시나리오를 발표한 바 있다. 재벌 3세 자녀들로의 분할 승계는 매우 가시적인 반경 안에 들어왔으며 차기 정권 안에 모두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차기 정권은 현재의 재벌 총수가 아니라 그들의 자녀와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새로운 3세 재벌체제의 구조가 착근되려는 시점에서 재벌구조에 대한 규제의 틀과 질서를 국민경제 차원에서 세워두는 것은 향후 10년 이상의 재벌체제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선거용 정치구호로 내용도 없이 함부로 재벌개혁을 고창하다가 선거 끝나면 폐기해야 할 그런 성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음 정권이 상대할 사람은 이건희 아니라 이재용

특히 현재 압도적인 1, 2위 재벌로 다른 그룹들과 격차를 벌리고 있는 삼성과 현대차의 분할승계는 매우 구체적으로 임박해있다. 우선 삼성을 보자. 삼성은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재용 사장과 두 딸로의 그룹 구획과 지분 승계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다([그림1] 참조).

이재용 사장을 중심으로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전자와 금융을 모두 포괄하는 삼성그룹의 승계 작업이 막바지에 왔다. 동시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중심으로 호텔, 레저, 바이오 등의 업종을 특화하고, 이서현 부사장은 광고와 패션 등을 중심으로 특화하여 파생재벌로 분할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1년 기준
▲ [그림1] 삼성 3세 분할 승계를 앞둔 주요 지분 관계 요약 *2011년 기준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이미 지난해 순환출자 고리인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정리 작업에 들어갔으며, 분할에 필요한 자금동원을 위해 모든 자녀들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삼성 SDS를 상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진단이다. 그 과정에서 각 분할 그룹별로 또 한 번의 소유 집중과 일반 집중이 일어나면서 지배력 규모를 유지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소유권 분할 → 그룹 분할 → 각각의 소유권 재집중 → 각 주력그룹과 파생그룹의 경제력 재집중"의 경로를 밟을 것이다.

2012년 정권 교체뿐 아니라 경제권력 교체에도 주목해야

삼성보다는 속도가 한 발 늦지만 현대차도 곧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과 달리 압도적으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겸 기아차 사장으로 집중되어 있지만 세 딸에게도 일정한 지분이 분할될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 다만 아직도 현대 모비스(6.96%), 현대자동차(5.17%), 글로비스(18.11%), 현대제철(12.52%), 현대하이스코(10.0%), 오토에버(10.0%) 등 대부분의 지분을 정몽구 회장이 직접 소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현대모비스 → 현대차 → 기아차 → 현대 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와 정의선 부회장이 소유한 글로비스의 연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이 삼성보다 느리게 승계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그림2] 참조).

*2011년 기준
▲ [그림2] 현대차 3세 분할 승계를 앞둔 주요 지분 관계 요약 *2011년 기준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한편 현대 하이닉스 인수로 다시 몸집이 불어난 에스케이는 사촌 형제들 사이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있고, 그 밖에도 엘지나 롯데 등에서도 크고 작은 친족들의 지배구조 확장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2012년에는 선거에 의한 정치권력 교체 뿐 아니라 재계에서의 거대한 경제권력 교체도 준비되고 있다.

다만 재계의 권력 교체는 선거를 치루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된다. 정치권력 교체는 더 많은 권력을 국민에게 귀속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경제권력 교체는 더 많은 부와 경제력을 몇몇 재벌 가문에게 귀속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문제를 다시 요약하자면 빵집 철수로 불거진 재벌 자녀들의 문제는 공주들의 취미생활 같은 한담이 아니다. 임박한 3세 분할 승계를 앞두고 한국경제의 핵심 부와 재산이 재배치되고 재집중되는 문제다. 줄잡아 수백 개 거대 기업들의 경영과 연관된 문제다.

이 시점에서 이미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는 외환위기 직전수준까지 왔다. 그러나 이를 제어할 내적 동력도 외적 충격도 없다. 재벌 시스템에 대한 규율을 미리 엄격하게 세워서 재벌구조가 국민경제와 더 이상 어긋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규제 대신 자율을 선택했으나 완벽히 실패했다. 정치권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등의 대책이 나오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이제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소비자를 위한 보호의 울타리보다 재벌을 막는 규제의 울타리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법제화한다 하여도 제한이 많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벌을 규제하는 틀이다. 재벌을 규율하는 독립적인 법체계, 바로 독일 콘체른 법과 유사한 기업집단을 규제하는 '재벌 규율법'을 만들어야 한다.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등 포괄적 규제가 효과적

또한 현재의 재벌 규모로 볼 때, 한 두 가지 규제책만으로 재벌을 포괄적으로 규제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현재 상황에서 출자총액 제한제도만으로 삼성그룹을 규제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주회사 체제로 변한 엘지나 에스케이를 순환출자 금지만으로 규제할 수 없다.

때문에 참여정부시절 재벌의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을 지낸 강철규 총장은 "출총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법 개정 등이 따로 이뤄져서는 재벌 개혁이 무력화된다"면서 "일종의 패키지로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하나 더 지적할 것이 있다. 강철규 총장이 적시한 출총제나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 등은 일종의 사전적인 경제력 집중 억제 조치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미 과도하게 경제력 집중이 되어버렸고 그 부작용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강력한 사후적 교정수단을 도입해야 한다. 기업분할 명령(청구)제와 계열분리 명령(청구)제도가 그것이다.

두 제도가 너무 과도한 것이고 실제 기업분할 명령제도가 있는 미국에서도 백 년 동안 몇 번 사용되지 않은 제도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잠재적 규율효과'가 중요하다. 실제 "미국에서도 법원에 의하여 실제로 기업분할 명령이 내려진 경우는 과거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몇 건에 불과하였지만 그 잠재적 규율효과는 매우 컸다고 평가된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계열분리나 기업분할은 기업세계의 필요 때문에 수시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다. 특히 분할 상속과 분할 경영승계 시점에서는 대대적으로 일어난다. 문제는 그것이 대대적인 편법, 불법적 과정으로 국민경제 이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분할 명령제와 계열분리 명령제를 통해 이를 국민경제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엄격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시키자는 얘기다. 이는 사유재산권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사유재산을 몰수하지 않는다. 매각을 지시할 뿐이다.

사실 국민들이 재벌가 자녀들의 빵집, 외식사업, 외국 명품 브랜드 수입 사업 등에 분노하는 것은 그들의 취미생활로 서민의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더불어 대다수의 일반 청년들과 달리 재벌 3세들은 무임승차에 가까운 세습과정을 거쳐 거대한 경제력과 부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99%는 계속해서 99%로 1%는 계속해서 1%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1%인 그들에게 빵집은 오늘 닫고 내일 더 크게 열면 그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재벌개혁, #재벌규율법, #기업분할명령제, #계열분리명령제, #재벌 3세 상속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