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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이 구호가 단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월 31일에 뒤늦게 사망 사실이 알려진 강아무개씨까지 포함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20명의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희망텐트와 희망뚜벅이 등 쌍용자동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계속 되고 있지만, 죽음의 행진 역시 이어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쌍용자동차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울 구로동에 있는 한성카센터는 2010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9명이 생계유지와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공동 출자해서 만든 곳이다. 현재는 출자자 중 2명만이 한성카센터에 집중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희망뚜벅이 참여, 쌍용자동차 지부장 활동 등 복직투쟁에 전념하고 있다. 8일 오후 2시 기자는 한성카센터에서 운영을 총괄하는 A씨를 만났다. 

바깥에서 본 한성카센터의 모습.
 바깥에서 본 한성카센터의 모습.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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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못 가져간 게 굉장히 아쉽다, 그 물만 있었다면..."

먼저 장사가 잘 되는지부터 물어봤다. 그는 "잘 안 된다"며 "생계는 지부에서 100만원씩 받는 지원과 집사람이 야쿠르트 배달을 해서 버는 돈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파업 당시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공장 점거에 참여했고, 결국 징계·해고당했다. 그는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같이 있던 사람이 정리해고당한다고 하니까 나섰을 뿐"이라고 말했다.

파업 당시의 기억을 묻자 A씨는 "식사 업무를 맡아서 크게 한 일도 없고, 크게 기억나는 것도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내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 하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경찰이 침탈하는 날 식수와 전기가 모두 차단됐다. 그날 아침도 식수로 쓰려고 물을 끓여놓았는데, 도장팀 중 하나에 물을 못 가져간 게 굉장히 아쉽다. 그 물이 있었다면 조합원들이 목마를 때 물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 있었는데, 경찰을 뚫고 갈 수 없었다."

해고 이후 심리적 문제는 없었는지 묻자 "정리해고 후에 2달, 3달 동안 안 좋은 쪽으로 이상한 생각을 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조심스레 물어봤지만, 그는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고 대답을 피했다.

A씨는 "아직도 3년 전 일이 가끔 생각나냐?"는 기자의 질문에 "생각은 항상 한다"며 "회사에 남아 있으면 안에서 정리 해고된 사람이나 휴직자를 위해 조그마한 일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부당해고 관련 소송 중이다. 그는 "행정 1심에서 12명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승소했고, 2심 결심 공판이 3월 22일에 예정되어 있다"며 "재판 문제가 있어 얼굴과 이름은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쌍용자동차 사태의 시작과 끝은 상하이차 때문"

쌍용자동차 사태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중 하나가 그들 사이의 대화를 앗아간 일이었다. A씨는 "무급휴직자는 연락 자체가 잘 안 돼 거의 만나지 못 하고, 정리해고자 중 정비 쪽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자주 만나지만 사적인 일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자주 보면 사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냐"고 묻자 "자연스럽게 그런 걸 묻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며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추측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현장 노동자들도 말수가 줄어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A씨는 "구로역 인근의 쌍용자동차 서울서비스센터 노동자들과 가끔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예전과는 많이 다른 걸 느낀다"며 "서로 마음속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파업이 현장에 남은 분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 서울서비스센터 사업소에서는 일이 없다"며 "특근은 아예 없고, 잔업도 예전에는 월 40~50시간을 했는데 지금은 10시간 내외"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원인을 상하이차에서 찾았다.

"상하이차에서 기술 투자를 해서 차를 많이 개발했어야 했는데 개발한 게 없다. 코란도 C가 정상적으로 나왔으면 2008년도 가을쯤, 늦어도 2009년 봄에는 나와야 했는데 작년에 출시됐다. 생산된 차가 없고 기존 차량도 폐차 기간이 되어가니 할 일이 없다. 상하이차가 아예 회사에 신경을 안 썼다고 생각한다. 상하이차는 오로지 쌍용차의 기술이 탐나서 기술을 빼가기 위해서 쌍용 자동차를 인수한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상하이차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었다"며 "상하이차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을 때부터 노조가 반대를 했지만, 결국은 노조의 예상대로 모든 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정권교체 되지 않으면 쌍용차 사태 해결 어려워"

그는 "상하이차와 함께 정부도 쌍용자동차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매각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상하이차 매각에서부터 상하이차가 다시 철수하고, 법정관리 들어간 것까지 정부에서 그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혹은 방관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회사가 방법을 내놔야 한다."

그는 "노조가 그 많은 당사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상담하고, 투쟁에 결합해 달라고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의 강아무개씨 사망에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기자가 희망버스를 이야기하며 "희망텐트나 희망뚜벅이가 뭔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자 A씨는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는 좀 다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뭔가를 해서 그런 사태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는 애초에 정부에서 개입을 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많은 시민들이 정치권, 국회에 압력을 행사해서 해결한 것이고, 쌍용차 같은 경우에는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아무리 뭔가를 해도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힘들다."

그는 이어 "정권 교체가 되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정권 하에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강아무개씨 사망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며 정부의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구로역 부근의 쌍용자동차 서울서비스센터 앞에 걸린 현수막.
 구로역 부근의 쌍용자동차 서울서비스센터 앞에 걸린 현수막.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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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지상파는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해"

A씨는 마지막으로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의 일부 언론보도에 문제가 있었다"며 "국민들이 일부 언론만 보고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당시 지상파 방송이나 조중동에서 기사 나온 게 100%가 아니다. 다른 언론, 예를 들어 <한겨레>, <경향>, <YTN> 등까지 전부 본 후에 결론을 내려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공장 안에 있을 때 언론보도를 보지 못했는데 나와서 언론보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역시 지상파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어 "일부 언론들이 특정 측면만 부각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는 경찰이 침탈해서 조합원을 폭행하거나 용역이 행패를 부리는 내용은 없고 조합원들이 새총을 만들었느니 전쟁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이야기만 있었다. 그건 아니었다. 새총을 만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도부 방침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지도부 방침은 경찰 침탈을 막자는 정도였고, 폭력적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걸 들었다면 나는 거부했을 것이다. 지도부 통제를 벗어나 조금 격해진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

A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는 구로역 인근의 쌍용자동차 서울서비스센터를 지났다. 그곳에는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정리해고 철회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쌍용자동차 사태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김경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한성카센터, #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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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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