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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1일 동아대 교양교육원(원장 이재욱 교수) 운영위원회에서는 홍순권·김광철 사학과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관문제를 배제하고자 한국사의 강의 내용을 조선시대까지로 제한하라."

2012학년 1학기 교양교과목으로 선정된 '한국사'의 강의 내용에서 '근·현대사' 부분을 빼라는 통보인 셈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교과범위로 강의지침서를 작성한 두 교수는 '수정 지시'를 거부했고, 이에 학교 당국은 한국사 강의를 없애 버렸다. 특히 '근·현대사 배제 지시'와 관련해서는 '외압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동아대 교양교육원 운영위에서 홍순권 교수 등에게 보낸 결정사항. '한국사' 교양강의 내용을 조선시대까지로 제한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다.
동아대 교양교육원 운영위에서 홍순권 교수 등에게 보낸 결정사항. '한국사' 교양강의 내용을 조선시대까지로 제한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다. ⓒ

'조선시대까지'만 강의하라?... "사관문제 운운은 독재정권시대 표현"

동아대는 지난해부터 교양강의의 전면 개편을 추진해왔다. 방만한 교과목수 축소, 대학실정에 맞는 실용중심 교양교과목 개편 등이 교양강의 전면 개편의 이유였다. 그런 가운데 '한국사' 강의가 교양교육원에 의해 '전략교과목'으로 선정됐다. 교양교육원은 교양교육과정(교양필수-중점교양-균형교양-학과교양)의 편성과 운영을 맡고 있는 대학기구다. 

교양교육원은 홍순권(한국 근·현대사 전공)·김광철(고려사 전공) 교수에게 한국사 교양교과목 강의지침서 작성을 의뢰했다. 이에 두 교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범위로 한 강의지침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 당국에서 강의내용을 '조선시대까지'로 제한하라며 강의지침서 수정을 지시했다.

'1. <한국사> 교과목명 변경불가 및 강의지침서 전면 수정
: <한국사>는 중점교양 전략교과목 선정시 한국인/동아인의 덕목을 배양하고자 개설한 교과목으로, <한국사>라는 명칭으로 충분한 의미전달이 가능하며, 내용 구성을 조선시대까지로 하여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관문제를 배제하고자 함.'

이에 두 교수가 수정 지시를 거부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학교 당국은 아예 '한국사 강의'를 없애 버렸다. 애초 '전략교과목'으로 선정했다가 '근·현대사 배제' 지시 거부를 이유로 강의 개설 자체를 금지한 것이다.

홍순권 교수는 주변에 보낸 이메일에서 "왜 한국사라는 교과목이 조선시대까지만 강의해야 하고 근·현대사는 제외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궁색하기 짝이 없다"며 "행정 당국은 왜 동아대 학생들은 한국 근·현대사 강의를 들어서는 안되는지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외압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단순히 행정당국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구석들이 있다"며 "우선 한국 근·현대사 전공인 본인에게 한국사 강의를 의뢰하면서 한국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말라는 상식밖의 요구를 해왔다는 것이 그 의문의 단초"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양교육원의 결정사항에 표현된 한국 근·현대사의 배제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관의 문제' 운운은 독재정권시대의 공안기관이 아니고는 쓸 수 없는 표현"이라며 "그러므로 이번 사태의 배후에 외부세력이 존재한다는 나의 믿음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대쪽 "근·현대사 미포함, 수업 충실도 높이기 위한 결정"

하지만 이재욱 교양교육원 원장은 8일 배포한 해명자료에서 "지난해 11월 운영위에서 제출한 강의지침서의 채택 여부를 심의했는데 한국사 강의의 경우 근현대사 부분이 14주 중 5주를 차지해 재작성을 요청했다"며 "(게다가) 마감시한인 지난 1월 6일까지 강의지침서가 접수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학사 일정상 한국사의 개설을 위해 2차례 협의했지만 최종적으로 1월 19일에 강의지침서 수정 의뢰를 거절해 한국사의 개설이 미루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또한 이 원장은 "한국사 강의지침서 수정 의뢰시 사관문제를 언급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일부 인정한다"며 "공문에서 언급한 사관문제는 교수 개인에 대한 사관을 언급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근·현대사 부분은 고대사나 중세사에 비해 논란이 많은 편"이라며 "근·현대사 부분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뿌리에 해당하는 고대와 중세에 취약해 수업의 충실도를 높이기 위해 결정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교수님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심의를 통해 자유선택과목으로 개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아대#한국사 교양강의#홍순권#교양교육원#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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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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