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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위에 예술을 빚는 발레리나 한서혜
무대위에 예술을 빚는 발레리나 한서혜 ⓒ 곽진성

우리 사회 젊은 명사들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때론 솔직하고, 때론 자유로운… 그래서 열정 가득한 그들의 하루, 기자는 꿈꾸는 젊은 예술인들을 만나 그들의 하루를 밀착 스케치했다. 그 첫 주인공. 대한민국 발레의 신성 한서혜(24) 발레리나이다.

스위스 로잔콩쿨 장학금상(Bourse) 커리어가 빛나는 한서혜는 2010년, <1박2일> 시청자 투어 출연으로 대중에게도 사랑받는 '인기 발레리나'가 됐다. 하지만 그녀는 유명세에 초연하다. 대신 '오늘'에 집중하며, 묵묵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녀가 만들어간 2012년 1월 28일, 그 특별한 하루를 만나보자.                                     <기자주> 

#1. [오전 9시 40분] 충격적인 어제, 오늘은 행복하길!

1월 28일 아침. 한서혜 발레리나(24)가 총총 걸음으로 아파트 출입문을 나섰다. 11시에 시작되는 발레단 클래스 연습을 위한 발걸음이다. '유니버설발레단' 발레리나에게 클래스 연습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 매서운 겨울 한파가 기승을 부린 하루였지만, 출근하는 발레리나의 출근 모습은 가볍고 경쾌했다.

 한서혜 발레리나의 출근풍경
한서혜 발레리나의 출근풍경 ⓒ 곽진성

오전 9시 40분, 운전석에 앉은 한서혜 발레리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발레단(서울 광진구 능동)까지 4년 째 출·퇴근을 한다. 그런데 어제는 그 4년 중, 아찔한 기억으로 남을 만한 하루였다.

"어제는 정신없는 하루였습니다. 차선 침범을 한 시내버스와 사고가 났거든요. 생전 처음 '아줌마'라는 말까지 들어 굉장히 슬픈 하루였죠. 사고 당사자인 버스기사 아저씨가 저를 보며 '이봐요, 아줌마', 라는 말을 했던거에요. 세상에, (웃음)" 

살다보면 남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한서혜 발레리나에게는 어제가 바로 그런 하루였다. 그래서일까. 문득 그녀가 꿈꾸는 오늘의 모습이 궁금했다.

"오늘은 평온한 날이 됐으면 좋겠어요. 오늘 하루는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소박한 오늘에 대한 소망. 한서혜의 하루는 그런 작은 꿈을 안은 채, 시작됐다.

#2. [오전 10시 30분] 달콤한 러브콜 이겨낸, '발레' 사랑!

 발레단에 들어서는 한서혜 발레리나
발레단에 들어서는 한서혜 발레리나 ⓒ 곽진성

10시 30분, '유니버설발레단'에 도착한 한서혜 발레리나, 그녀는 연습복으로 갈아입고 클래스 연습에 임했다. 그녀는 운명 같던 발레와의 첫 만남에 대해 말했다.

"어머니가 발레 선생님, 고모가 성악 그리고 사촌 오빠들도 예술을 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발레를 접했어요. 발레는 보기에는 순수 아름답지만 그 속에 고통이 더 많아요. 하지만 그 고통을 딛으면 행복해져요. 고통 속에 성취감을 얻는 것이지요. 그래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힘듬을 딛는 열정, 그 모습 안에는 한서혜 발레리나의 발레여정이 함축되어 있다. 그녀의 발레인생은 9살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영재스쿨에 입학하며 시작됐다. 이후, 수많은 담금질이 가해진 그녀의 춤은, 연금술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냈다.

 한서혜 발레리나
한서혜 발레리나 ⓒ 곽진성
한서혜 발레리나는 2005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장학금상(Bourse)과 2008년 바르나발레콩쿠르 금상을 수상하며 한국발레의 기대주로 우뚝섰다. 한국예술종학학교 입학 후, 1년 여의 러시아 유학생활도 그녀의 성장에 도움을 줬다.

"러시아 발레 유학은 추위 때문에 고생을 했어요. 발레 교육과 기숙사의 반복된 일상이었고, 백야 현상 그런 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힘든 순간이었지만, 잘 해냈던 것 같아요. 제가 잠이 많은 편인데, 당시 선생님들이 제게 쏘냐(잠이 많은 여인) 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것이 기억에 남네요."

러시아 유학 후, 한서혜 발레리나는 한국예술종학학교를 졸업하고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다. 한서혜 발레리나의 재능을 알아본 발레단은, 2009년. 입단오디션 없이 그녀를 채용한다.

그후, 1년, 한서혜 발레리나는 더 높이 비상했다. 2010년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한해다. 그 해, 한서혜 발레리나는 USA국제발레콩쿠르에서 특별상인 '로버트 조프리상'을 수상해 자신의 재능에 날개를 달았다.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2010년 2월, KBS <1박2일> 프로그램 시청자 투어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1박2일> 방송은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한 발레리노 오빠가 방송에 출연 신청을 했고, 저도 우연히 참여하게 됐던건데... 방송의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 재밌었어요. 목소리가 컸던 강호동씨도 기억이 나네요. <1박2일>에 (제가) 출연해 큰 관심을 받았던 부분은 아직도 신기해요. 재밌는 추억이 됐어요. (웃음)"

 한서혜 발레리나
한서혜 발레리나 ⓒ 곽진성

당시 한서혜 발레리나에게 쏟아진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연일, 포털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내렸고, 그런 인기에 힘입어 몇몇 기획사에서는 실제로 계약을 문의하기도 했다.  '연예계의 러브콜'에 마음이 흔들릴 법도 했다. 하지만 한서혜 발레리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발레 '열정'은, 갑작스런 '인기'가 휩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유혹이 클수록, 그녀는 마음속에서 발레를 알리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사실, 고백 아닌 고백을 하자면 당시 CF를 하나 찍었는데, 광고료가 상상 이상이었어요. 깜짝 놀랐죠. 10년 동안 발레하면서 벌 지 못한 큰돈이었어요. 신기하기도 했고 놀라웠죠. 그런데 문득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냥,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발레리나', 예술을 하는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죠."

어제의 유혹을 이겨낸, 그녀는 오늘의 꿈을 키우고 있다. 하루하루의 열정이 쌓여, 어느덧 15년이 넘는 발레 인생이 됐다. 오늘도 그 하루를 더해간다. 낮 12시, 1월 28일 발레 클래스는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리허설 연습이 없는 하루였기에, 평소보다 연습이 빨리 끝난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하루였다.

#3,[낮 1시] 신세대 발레리나들의 자유시간!

 발레리나 한서혜, 자유시간에는 친구들과 자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친구인 발레선생님 임다희씨와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발레리나 한서혜, 자유시간에는 친구들과 자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친구인 발레선생님 임다희씨와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곽진성


24살 발레리나 한서혜는 온종일 발레에만 빠져 살지 않는다. 자유시간에는 자유롭게 취미 생활을 만끽한다. 그녀에게 자유시간은, 연습의 고단함을 푸는 재충전의 시간이다.

"자유시간에는 친한 친구들과 '매운 음식 먹으러 다니기'를 좋아해요.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은 통각이 발달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쩌면, 제가 고통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낮 1시, 한서혜 발레리나는 친구 임다희씨와 맛집을 찾아 떠났다. 친구 임다희씨 역시 유니버설발레단출신 발레 선생님. 두 사람은 그 나이 또래의, 여성들이 그렇듯,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식사 메뉴는 베트남쌀국수, 매운맛을 좋아하는 그녀들답게 청양고추양념을 듬뿍 넣는다.

 한서혜 발레리나, 신세대 발레리나 답게 자유시간을 잘 활용한다
한서혜 발레리나, 신세대 발레리나 답게 자유시간을 잘 활용한다 ⓒ 곽진성
식사 후에 그녀들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영화, 쇼핑, 노래방은 이들의 단골 메뉴다. 온종일 '발레'에 매달리지 않고, 쉴때는 편하게 쉬는 것. 이는 신세대 발레리나들의 특징이기도 한 모양이다.

"노는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요? 아니에요.(웃음) 자유시간은 스트레스를 푸는 활력소니 아까운 시간이 아닙니다."

최근 한서혜 발레리나는 취미가 한가지 더 생겼다. 군 복무 중인, 동생 면회를 가는 것이다.

"동생이 청소년 때 캐나다 유학을 갔어요. 그래서 캐나다 국적이 있지만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하기 싫다며 군대에 입대 했어요. 대견스러웠죠. 그런데 요즘 '너무 힘들다'고 투덜거리긴 해요.(웃음) 아참, 얼마 전, 제 동생이 선임들한테 우연히 제 이야기를 했나봐요. 덕분에 동생이 군대 생활이 편해졌다며 자랑스럽다고 하네요.(웃음) 동생 기 살려주려고, 예쁜 친구들하고 자주 면회 가고 있답니다."

오후 6시, 한낮의 자유시간을 만끽한 후, 한서혜 발레리나는 모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로 향했다. 오페라 발레공연인 '뮤즈' 연습을 위해서다. 이 무대를 위해, 한서혜 발레리나는 1월 말부터, 매일 밤 '야간연습'을 진행해왔다.

#4. [오후 6시] 젊음을 빛내는 춤의 연금술사, 한서혜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는 한서혜 발레리나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는 한서혜 발레리나 ⓒ 곽진성

"'뮤즈'는 김선희 교수님께서 매년 해오는 공연인데, 캐스팅되어 영광이에요. 은사님이거든요. 이번 공연은 <투란도트> '공주는 잠 못 이루고'에 안무를 맞췄어요. 현대무용 같지만, 토슈즈를 신고 발레를 하는 특징이 있죠. 저는 왕자를 사랑하는 시녀 '류' 역할을 맡아 독무를 춰요, 공주로부터 왕자를 지키려다가, 결국 왕자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 인물이죠."

오후 7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도착한 한서혜 발레리나가 곧바로 연습에 임했다. 그녀는 연습실에 도착해 토슈즈를 갈아 신었다. 토슈즈 사이에 비친 발등에는, 무수히 견뎌온 고통의 흔적이 엿보인다. 한서혜 발레리나는 말없이 발가락 테이핑을 하고 연습 무대에 섰다.

 한서혜 발레리나, 독무.
한서혜 발레리나, 독무. ⓒ 곽진성


 토슈즈 사이로 비친 한서혜 발레리나의 발
토슈즈 사이로 비친 한서혜 발레리나의 발 ⓒ 곽진성

잠시 후, 연습실 안은 한서혜 발레리나의 독무로 채워졌다. '마법'의 연금술 같이, 그녀의 춤은 다채로운 색깔을 냈다. 왕자를 구하기 위한 시녀 '류'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아련하고, 고혹적인 춤으로 승화되어 장내를 열정으로 밝힌다.

보는 이를 감동시키는 무대, 2011년 12월의 기억은 그녀의 열정을 더욱 공고히 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연말 <호두까기인형> 공연 때의 일이다. 당시 주연을 맡았던 그녀는 갑작스런 무대 연출 고장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무대 자체가) 조명이 꺼져 암전이었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죠. 그래서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부상 위험도 컸기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갖고, 파트너와 춤을 췄어요. 다행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죠. 공연이 끝나고, 치료해 주시는 박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내는군요. 한서혜 선생님이니까 해낸 것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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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진성
뜨거운 열정을 안은 한서혜 발레리나, 그녀는 항상 '한서혜'다운, 무대를 꿈꾼다. 위기의 순간은 그녀에겐 배움의 시간이다.

그런 한서혜의 발레리나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최고의 발레리나?', '오랫동안 프로 발레리나로 무대에 서는 것?'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꿈에 대해 말했다.

"30대가 넘어선 어느 순간, 병원, 보육원 같은 웃음이 적은 공간을 찾아가 무료 발레 공연을 펼치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제 춤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함께해주는 동료, 스태프들이 있어야하고, 노력도 많이 해야겠지만... 열심히 노력해 (웃음) 꼭 꿈 있는 사람들과 멋진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남다른 꿈을 꾸는 24살의 발레리나, 그녀에게 오늘은 어떤 하루였을까? 한서혜 발레리나가 웃으며 답했다.

"평범한 하루에요, 특별하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은. 하지만 마음이 평온한 하루였어요. 그래서 마음 속에 그리던 그런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내일도 그럴 수 있겠죠?"

28일, 오후 8시 30분, 만족스럽게 하루를 끝마친 발레리나는, 자신의 취미인 영화 2편을 연달아 볼 계획을 세우고 연습장을 나왔다. 열정의 무대를 마친 발레리나의 표정이 밝았다. 그렇게 하루의 일상이 지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늘 하루' 인터뷰 그후] 1월 27일, 28일 인생의 냉온탕을 오갔던 한서혜 발레리나는 다음날(29일) 갑작스런 몸살로 링겔을 맞았다. 하지만 그녀의 열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2011년 2월 10일, 11일 <뮤즈>(한국예술종합학교)공연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토란도트> 독무 공연을 환상적으로 끝마친 것이다. 그렇게, 신세대 발레리나 한서혜는 자기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무대를 끝마쳤다. 그리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해나가고 있다.



#한서혜 발레리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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