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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통합당 정청래 전 의원(왼쪽 세번째) 등 예비후보들이 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구의 15% 이상을 여성 후보로 공천한다는 원칙과 관련해 '과도한 특혜'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민주통합당 정청래 전 의원(왼쪽 세번째) 등 예비후보들이 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구의 15% 이상을 여성 후보로 공천한다는 원칙과 관련해 '과도한 특혜'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 연합뉴스

민주통합당이 4·11 총선 지역구 공천에 여성 15% 할당을 의무화하는 당규를 확정했다. 이미 공직선거법에 '지역구 여성공천 30% 노력' 조항이 만들어진 지 오래이건만 이해당사자이자 기득권을 가진 기성정치인들은 해당 조항을 외면해왔다. 강제규정이 없으니 지켜지지 않는 통에 정당 차원의 경과규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간 정치학자로서 주장해 온 내용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치이건만, 이해당사자인 남성후보들로부터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남성후보에 대한 역차별이다, 비례대표 50% 할당되어 있는데 지역구에도 여성할당을 강제하는 것은 과도하다, 경선 가산점도 있는데 지역구 15% 할당하는 것은 이중혜택이다, 여성이 없는데 억지로 15% 하는 것은 자격이 있는 남성을 배제하고 자격이 없는 여성이 공천 받게 되는 것이다 등등 이유도 가지가지다. 과연 이러한 이유들이 타당한 주장일까? 이에 대해서 왜 여성을 15% 할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논리들이 가지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여성 15% 할당, 남성 차별 아닌 여성 차별이다

첫째 역차별인가? 사실 여성 15% 할당은 남성 85% 할당인 것이다. 남성을 왜 85% 할당해야하는가? 남성 정치인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할당하는 것은 당연한가? 할당이란 누적된 차별,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이어지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지역구 남성 국회의원 수가 전체 245명 중 231명이다. 여성은 14명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이 정치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지역구 출마를 꺼리니까 등등의 설명을 붙일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단지 정치가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의 속성이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선거는 특히 그러하다) 새로 정치를 시작하는 여성들은 선거의 벽을 뚫기가 어렵다. 그 탓에 남성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시정하려는 게 바로 할당제다.

그렇다면 그것은 15%가 아니라 30%, 아니면 더 나아가서 40% 이상을 요구해야 한다. 왜 30%인가? 그것은 30%가 물질의 성격을 바꾸는 임계수치(Critical Mass)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바뀌어야지 정치의 성격이 바뀌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여성 15% 할당은 사실 너무 적은 수이다. 남성 85%는 너무 수가 많다. 이는 남성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지역구에 출마할 여성이 있느냐? 여성이 없는데 어떻게 15%를 채우는가 하는 것은 당장 심각한 문제이고 또 이를 채우기 위해서 민주통합당은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정치가 워낙 신뢰도가 낮고 국민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영역이기에 소위 '자격 있는' 여성들은 그런 험난한 영역에 발을 담그려고 하지 않았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이 문제는 우선 정치 자체의 문제이다. 오랫동안 정치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고, 폐쇄적이고, 부패해 국민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기에 여성들이 참여를 꺼렸다. 물론 그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구태에 물들지 않은 여성이 더욱 정치에 진입할 필요가 있다.

여성정치인들은 검증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정당에서는 여성을 공천할 때 당내 여성보다는 외부에서 유명한 여성들을 공천했다. 외부에서 온 여성은 지지기반이 없는 탓에 당내 권력관계에 대항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존의 구도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은 일회용으로 그치게 되고 경력을 지속한 여성정치인들은 적다.

많은 연구들이 여성이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일회용 여성 국회의원이 아닌 직업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많아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당내에서 여성정치인을 충원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서구의 많은 사례들, 특히 스웨덴과 같이 여성의 정치참여가 활발한 국가에서는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여성들이 충원되고 이들이 당내에서 세력화하면서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되고, 그 국가의 성격도 젠더친화적인 형태로 바뀌어왔다.

한국에는 정당 내에 여성들이 없는가? 1990년부터 시작된 지방자치의 부활 이래로 적다면 적지만 그래도 지방에서 경험을 쌓은 여성정치인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충원해도 얼마든지 15%는 채울 수 있으리라 본다. 사실 여성이 '자격이 없는' 게 아니라 '검증이 안 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여성정치인들은 검증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했었다. 이제 그들에게 검증받을 기회를 주어야한다. 16, 17, 18대에 신인으로 국회에 들어갔던 여성 정치인들은 훌륭하게 검증받았다. 시민단체와 신문사에서 하는 의정활동 모니터링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왔다. 민주통합당은 여성이 없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여성을 찾아야 한다.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해야 한다'면 그것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셋째 경선에서의 가산점과 지역구 의무공천은 이중혜택인가? 경선에서 가산점을 주는 것과 15% 할당을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는 할당을 지키기 매우 어려운 제도다. 비례대표에서는 좀 더 쉽게 당내에서 할당을 지킬 수 있지만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는 할당을 지키기 어렵다. 그래서 할당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략공천 등 어느 정도 당 지도부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는 비민주적이 아닌 당의 기본 가치를 지키기 위한 개입이어야 하고, 적절한 공천과정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지역구 15% 여성공천에 관한 논란을 바라보면서 민주통합당에 묻고 싶다.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면서 민주통합당이 이번에 15%의 여성도 채우지 못한다면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은 18대 총선, 2010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보수적인 한나라당에 비해서 여성공천에는 훨씬 인색했다. 사실상 18대 총선은 하향식 공천이었기 때문에 당 지도부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성을 공천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여성의 공천은 평균에 못 미쳤다.

한나라당보다 여성공천에 훨씬 인색했던 민주당

18대 총선 지역구 여성후보는 11.9%였는데 민주당은 7.6%에 그쳤다(한나라당은 7.3%). 민주노동당은 44.7%를 여성으로 공천하여 가장 성 평등적인 공천을 보여주었다. 한나라당은 7.3%에 그쳤지만 숫자로는 민주당의 15명보다 3명이 많은 18명을 공천하였다. '혁신'을 외치는 민주통합당이지만 평등의 가치 중 하나인 성평등에 대해서 그다지 노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당내의 남성 기득권 정치인들은 아주 보수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만 급급해 개혁적인 가치를 상실한 듯하다.

지금의 상황만 보더라도 사실상 당내 지역구 공천 여성할당의 문제는 어제 오늘 거론된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 시절 당개혁특위가 확정한 개혁방안에도 지역구 여성할당 의무화가 포함되어 있다.

민주통합당은 당헌에 명시한 성 평등과 여성참여의 보장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했고, 그러한 노력이 제대로 축적되었다면 오늘날 여성이 없어서 공천을 못하겠다는 소리는 적어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여성이 없어서 30%도 아닌 15%조차 공천하지 못한다면 혁신을 추구하는 개혁정당으로서 정체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공천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통합당이 한국 성평등 역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긋는 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민정 기자는 정치학박사이자 서울시립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입니다.



#민주통합당#여성할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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