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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취임 한달을 맞아 15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대국민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취임 한달을 맞아 15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대국민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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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폭등 방관하는 기재부, 론스타 먹튀를 적극 도와 국부 유출시킨 금융위, 주가조작에 앞장서다 압수수색 당한 외통부, 있으나 마나한 통일부, 언론장악의 선봉장 방통위, 생태계 죽이는 환경부, 알짜 공기업 팔아넘기려는 국토부, 존재가치를 의심케 하는 법무부와 검찰, 무책임하고 무능한 내각으로는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국민은 정권의 마지막 1년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전면교체하십시오."

대표 취임 1개월을 맞이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첫 일성입니다. 한 대표는 15일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와 확실하게 각을 세웠습니다. 허니문 기간 중엔 비교적 둥글게 말하던 편이었는데, 1개월을 기점으로 태도를 바꾼 것일까요?

우상호 민주통합당 전략홍보본부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내각 총사퇴라는 메시지는 간단한 수사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정권 말기의 새누리당과 집권을 앞둔 민주통합당 간의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이 '한미FTA 말 바꾸기'로 전선을 쳤다면, 민주통합당은 이제 정권심판론으로 압박하겠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일까요?

한데 아무리 꼼꼼히 뜯어봐도 한 대표의 메시지에는 현재 뜨겁게 논란 중인 한미FTA와 야권연대에 대한 입장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자들의 질의응답에서 나오긴 했지만 대표 메시지로 정리된 것이 없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5년차로 접어든 MB정권 규탄과 정권심판에 대해서는 이미 온 국민이 모두 공감하는 의제이기 때문에 별달리 새로울 것도 없고, 오히려 민주통합당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이 문제에 대해 뭔가 보여주기를 바라는 게 국민적 기대인데 그에 비한다면 실천방향이 담기지 않은 데 적이 실망하게 됩니다. 미래비전과 관련해서도 한 말씀도 없으셨지요.

이런 지적에 우 본부장은 같은 날 출범한 'MB정권 비리·불법비자금 조사특위' 활동을 주목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박영선 최고위원이 위원장을 맡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낸 유재만 전 검사와 '삼성물산 재개발 비리'를 파헤쳐 주목을 받았던 백혜련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 등 법조 엘리트들로 구성된 이 위원회가 앞으로 이명박 정권의 비리와 불법비자금 문제를 탈탈 털어 국민 앞에 그 죄상을 낱낱이 고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정권교체 전략, 제1막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매번 전략부재로 비판받던 민주통합당이 드디어 제대로 진용을 갖추고 MB와 새누리당을 향해 진격할 태세를 갖춘 것일까요? 조직적으로 MB규탄 프레임을 짜고 돌격하는 모양새를 만들어낼까요?

그런데 민주통합당 지도부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쏟아집니다.

내각 총사퇴 주장했으니 다음은 거국내각?

이인영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 과정에서 내각 총사퇴 카드로 이명박 정부와 대척점을 이루자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그저 한명숙 대표의 결기 아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또 다른 최고위원은 "워낙 이명박 정권이 아수라장이니 충분히 내각 총사퇴를 주장할 만하지만 지금 왜 그 얘기를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최고위 내부에서 그 구상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한 대표가 당 간부들과 상의해 정리한 '1개월 기념 메시지' 정도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 밖에서는 어떤 반응일까요?

민주통합당의 주요 야권연대 대상인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는 "자다 봉창 두드리느냐"며 "지금 난데 없이 무슨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현 체제로는 안 된다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 알지만 그렇다고 지금 새 내각을 꾸린들 또 얼마나 괜찮은 인물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며 "한명숙 대표가 어떤 취지로 왜 그런 발언을 하셨는지 진의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노 대변인은 "MB정권이 잘못했으니 물러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지금 한 대표께서 거국내각을 제안하신 것도 아니라서 뭐라 언급하기 상당히 애매하다"고 전했습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내각 총사퇴를 언급했으니 이제 공동내각을 꾸리자는 것이냐"며 "거국내각 비상내각을 꾸리자는 제안도 아니니 별로 진지하게 답변할 일도 아닌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터뜨립니다.

민주통합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실효성도 없는 얘기를 대표가 왜 실없이 하신 건지 알 수 없다"며 "지도부를 살펴보면 일부는 잘해보라 관망하고 일부는 침묵하고 있으며 대표는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는 "이제 와서 전면전이라 하면 그럼 여태까지는 전면전 안 했다는 얘기냐"며 "조용환 헌법재판관 인준 부결 이후 대표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내부문제를 점검해야지 전혀 신중해 보이지 않는 소리로 국민들에게 비판받을 일이 무어냐"고 꼬집었습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15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대국민회견에서 MB정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15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대국민회견에서 MB정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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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내각 총사퇴?"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치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차라리 22일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비리에 대해 입장을 밝힌다고 하니 그에 대해 확실한 요구조건을 걸고 전선을 치는 게 훨씬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세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곁들입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가만 보면 민주통합당이 포인트를 잘 못 잡는 것 같다"며 "커다란 정책실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형 철도사고가 난 것도 아니며 국정난맥을 꼬집을 대표적인 실책이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갑자기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다니 이건 감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강 교수는 "한미FTA 문제도 공연히 사태를 키워 오히려 조중동만 신나게 민주통합당을 비판할 거리를 제공한 꼴이 됐다"며 "차라리 정권 내부의 문제, 대통령의 문제를 아프게 지적해서 쟁점화하는 시도가 훨씬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않겠느냐"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한명숙 대표가 여론을 읽고 그 여론에 부합하는 메시지를 시의적절하게 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전혀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안타깝다"며 "너무 뜬금없는 주장이라 코멘트 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당 안팎의 평가가 이 정도라면, 도대체 한 대표는 왜 '내각 총사퇴'라는 메시지를 취임 1개월에 맞춰 내건 것일까요?

임종석 사무총장은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야당이 내각 총사퇴에 대한 프로세스가 있겠느냐"며 "현 내각으로는 남은 임기 1년을 제대로 꾸릴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서 던진 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각 총사퇴는 앞서 우상호 본부장의 말대로 단순한 수사일 수 없습니다. 특히 집권을 눈앞에 둔 야당의 수장이 별 뜻 없이 툭 던질 수 있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야당 대표의 말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말의 무게가 실려야 합니다. 또 말에 대한 책임이 반드시 수반돼야 합니다.

따라서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고 그에 대한 프로세스가 있겠느냐고 한 임 총장의 발언은 오히려 무책임한 말로 들립니다. 이것은 한 대표와 책임을 함께 하는 당무라인, 민주통합당의 핵심 브레인들의 전략적 사고와도 연동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내각이 총사퇴하면 어떤 혼란이 오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인들이 저잣거리 시시껄렁 농담처럼 그렇게 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무책임한 말에는 MB정권이 꿈쩍도 안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히려 비웃음만 사게 되지요. 어차피 현실화 되지도 않을 일인데 그런 주장은 왜 하는 것이람? 조롱거리가 됩니다. 왜 스스로의 존재를 그렇게 추락시키려는 것일까요?

이렇게 대표의 발언에 힘이 안 실리면 다음 번에 한 대표가 무슨 얘기를 한들 그 말을 우리 국민들이 깊이있게 새겨듣게 될까요? 집권을 앞둔 야당 대표 발언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한 대표의 말대로 우리 국민은 지금의 정부에 대해 신뢰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식물정부가 맞습니다. 또, 한 대표가 강조한대로 이명박 새누리정권은 대한민국을 후퇴시켰지만, 우리 국민은 희망을 만들기 위해 외롭게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통합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에 무려 80만명의 시민들이 힘을 보탠 것입니다. 그런 시민들을 더 외롭게 하실 겁니까?


태그:#한명숙, #내각 총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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