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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열다섯 달째를 접어들면서 "숟가락으로 음식 먹기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늦어도 참 늦습니다. 열다섯 달만에 스스로 밥을 먹기 시작했고, 아내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사실 아내는 첫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자기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는 없지만 아내는 유독 더 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장롱 서랍을 잡고 일어서면 놀라 "잘했다"며 손뼉을 쳤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배밀이 할 때, 뒤집을 때, 물체를 잡고 일어설 때, 스스로 일어설 때마다 신기했고, 어떤 때는 눈물까지 다 흘렸습니다. 이도 참 늦게 났는데 "윗니 2개, 아랫니 1개가 총 7개"가 났는 데 그 때가 열다섯 달째였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저는 아이가 "사물을 가르키면서 '이것'이라고 말하며 전자제품"을 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아이는 천재야'라는 황당한 생각도 했었습니다.

 

드디어 열여섯 달째 접어 들자 "자유롭게 걷기 시작하며 혼자 놀고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젖병"을 뗐습니다. 문제는 젖병이 사라지자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손가락을 빨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손가락 두 개를 빠는데 손바닥이 위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손가락을 이렇게 빠는 아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여보 인헌이 손가락을 한꺼 번에 두 개나 넣고 빨아요. 더 신기한 것은 손바닥이 위로 가요. 이렇게 손가락을 빠는 아이는 처음 봤어요."
"나도 그래요. 정말 신기해요."

 

큰 아이가 손가락을 빨 때마다 우리 부부는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손가락을 빨려고 했지만 참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 책에서 체 게바리가 어릴 적 이런 모습으로 손가락을 빠는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본 후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체 게바라가 이렇게 손가락을 빨았어요. 혹시 인헌이 혁명가가 되는 것 아니에요."

"와 똑 같네. 혁명가라. 그래 남자가 태어나 정의를 위해 한 몸 바치는 것도 괜찮은 삶이지요."

"그래도 혁명가는 좀."

"솔직히 인헌이가 혁명가로 살아간다면 나도 동의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런 삶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니까."

"체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과 내 아이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체 게바라처럼 살기는 힘들겠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그대로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손가락 빠는 모습이 체와 같다는 것이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런 모습을 두고 아직까지도 큰 아이에 대한 바람이 큽니다.

 

"인헌아. 네가 체와 똑 같은 삶은 살아가지 못할지라도. 정의로운 삶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과 정신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너의 배를 채우는 탐욕은 다른 사람을 죽이지만 결국 너까지 죽일 것이다. 그것은 비극이다. 체는 혁명가였다. 우리 시대 혁명은 불가능하겠지만 혁명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 우리 집에 체에 관련한 책들이 있으니 꼭 읽어보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마음에 새겨라."

 

다시 육아일기로 돌아갑니다. 열일곱 달째 "엄마와 아빠 말을 따라하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쓰레기통에 휴지 버리기, 물통 갖고오기, 상 위 물건을 치워 엄마를 도와 주"었습니다. 하지만 큰 아이에게 가장 큰 위기가 닥쳤으니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터울이 열여덟 달입니다. 아내는 이렇게 썼습니다.

 

"동생 출산으로 어리광이 심해졌고, 혼자 놀기보다는 엄마 아빠에게만 안겨 있기를 원한다."

 

모든 사랑을 다 받다가 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울고불고 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없는 순간 동생을 꼬집고, 때리기도 했지요. 아이들이 그 때 많은 상처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열여덟 달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하겠지만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상한 것이 자기 사랑을 다 빼앗아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때 일수록 한 번 안아주고, 다독거려 주는 것이 아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아프게 해주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지요.

 

'인헌아 미안해.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해서.'


태그:#아내,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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