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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6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축구 경기가 끝났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 중 전화 표시가 열 번 넘게 찍혀 있었다. 딸과 아내가 번갈아서 3~4분 간격으로 전화했다. 무슨 일일까! 집을 나설 때 일곱 살 아들 녀석이 아파트 단지에서 자전거 타던 모습이 눈에 아른 거렸다.

"전화 많이 했네, 무슨 일 있어?"
"호연이 OO병원 응급실에 있어, 빨리 와."

다급한 목소리였다. 얼마나 급한지, 어디를 어떻게 다쳤다는 말도 못하고 전화를 황급히 끊는다. 끔찍한 상상이 밀려 왔다. 헬멧이나 무릎, 팔꿈치 보호대 같은 보호 장구 없이 자전거 타던 모습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아내의 다급한 전화 "우리 아들, 응급실에..."

후회도 밀려 왔다. 그냥 데리고 나올 걸……! 축구를 하러 간다고 하자 아들 녀석이 '데려가 달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었다. 너무 추워서 안 된다고 살살 달래다가 결국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울먹울먹하던 아들은 눈에 고인 눈물을 주먹으로 훔치며 "그럼 나 자전거 탈 거야" 하고 소리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생각만 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부리나케 축구화를 벗어 가방에 밀어 넣은 다음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 탓인지 시내 중심부인데도 차가 뜸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늘 북적이던 길거리도 텅 비어 있었다. '이런 날, 아들 녀석과 집에서 레고나 조립할 걸 괜히 운동장에 나왔다는 생각이 뒷머리를 때렸다.

 마취에서 깨어나기 직전
마취에서 깨어나기 직전 ⓒ 이민선

국회의원 후보자들 현수막만이 텅 빈 거리를 파수꾼처럼 지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국회의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OOO후보 현수막이 날아와서 눈에 박혔다. 그의 자서전…아들…자전거……!

왜 저 사람 얼굴이 하필 지금 내 눈에 띄는 것일까! 아무래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몇 해 전 그의 자서전을 읽고 서평을 쓴 적이 있다. 아홉 살 나이에 세상을 뜬 아들에 대해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대목이 내 눈을 붙잡았었다. 

아들이 죽은 원인은 '뇌진탕'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차에 부딪쳐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그는 책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궁핍해서 제대로 먹이지도 못했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했다. 하느님 뜻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밀려드는 후회, 마음은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고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마찬 가지 아닌가. 무엇하나 풍족하게 해 준 게 없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등.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서 어디를 다쳤느냐고 물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오죽 급했으면 그렇게 황급히 전화를 끊었을까!

병원 옆에 있는 주차 빌딩은 만원이었다. 길거리에서 사라진 차들이 병원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주차 빌딩 마지막 층까지 올라가서야 가까스로 차를 댈 수 있었다.

응급실 문을 열자마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불길한 기분과 소독약 냄새는 궁합이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 봐도 호연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새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인가!

"호연이라고 이곳에 있다는데…보이질 않네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 젊은 의사에게 물었다.

"아~호연이 아버님 되세요?"
"네."
"지금 호연이 저 곳에서 부목 대고 있어요."

의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호연이가 왼쪽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 고마워, 아들 고마워'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머리도 아닌 다리도 아닌 왼쪽 팔을 다쳐서 정말 고맙다고.

얼마나 겁을 집어 먹었는지 호연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 한 방울을 찔끔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빠, 나 팔 부러졌대, 수술할지도 모른대."
"아프니?"
"응 아파."

호연아, 팔만 다쳐줘서 고마워

 호연이
호연이 ⓒ 이민선

다음 날인 월요일, 호연이는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했다. 입원실에서 함께 밤을 지새워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중요한 술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약속 한 일이고 더군다나 내가 만든 자리라 빠질 수 없었다. 

"아빠, 오늘 여기서 잘 거야?"
"아니, 엄마만 잘 거야."
"에이, 아빠가 옛날이야기해 주면 좋을 텐데."
"……"

호연이는 세 살 때부터 내가 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잤다. 마음이 불안해서 그런지 옛날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병실 문을 나서며 '아들 미안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8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호연이는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아내한테 물으니 수술 시간이 한 시간이나 앞당겨졌단다.

"호연이 밤에 잘 잤어?"
"잘 자긴, 무섭다며 밤새 울어서 얼마나 애 먹었는데… 금식 하라고 해서 과자를 주면서 달랠 수도 없고……."

아내 말을 들으니 또 다시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호연이가 금식할 때 난 술을 마셨고 두려움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동안 난 쿨쿨 잠을 잔 것이다. 음식도 맛이 없고 잠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웬 걸! 술도 안주도 맛있었고 잠도 잘 왔다. 그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약 한 시간 만에 수술실 문이 열렸다. 아직 마취가 덜 풀렸는지 호연이는 한 곳에 눈을 맞추지 못하고 연신 두리번 거렸다. 마치 이곳이 도대체 어딘가 하는 눈빛이었다. 드디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아~"
"그래 아빠야, 호연아."
"아빠아, 오늘은 옛날 얘기 꼭 해줘야 돼."
"그래그래, 오늘은 꼭 해줄게."

수술실에서 갓 나온 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난 '아들 고마워'라고 마음속으로 몇 번을 외쳤다. 축구한다고 혼자 내뺀 아빠와 눈을 마주쳐 주어서 고맙다고, 수술하기 전 두려움에 떨던 밤, 옆에 있어주지도 않은 아빠에게 말을 걸어줘서 고맙다고…….

오늘(2월 20일) 드디어 수술한 지 1개월 10일 만에 완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가끔은 병원에 들러 X-RAY 촬영을 하고 상태를 확인해야 한단다. 성장판 주변을 다쳤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듯하다. 참 후련하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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