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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정권교체 후 한미FTA 폐기시킬 것'>이란 제목의 기사가 최근 신문 등 거의 모든 매체에 실렸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발언한 내용을 담은 글의 제목이다. 그는 '국가 이익이 실종된 것'을 폐기(廢棄) 주장의 이유로 들었다.

국가에 이익이 되지 않으므로 (이익이 되도록 협정 내용을 손질하든지, 아니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 협정의 발효를 이대로 진행한다면, 나중에 (민주통합당이 칼자루를 쥐고 나서) '폐기시킬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 발언의 어투(語套) 그대로인지, 아니면 기자들의 표현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날 뉴스를 봐도 그 대목은 확실히 찍혀있지 않다. 한 대표가 그렇게 말한 것을 옮겨 썼든지, 기자들이 알아서 (제 맘대로) 썼든지 간에 '폐기시킬 것'이란 말은 문제가 있다.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던 정치인 김영근 씨(전 한국경제신문 정치부장)가 최근 펴낸 책 이름 <한미FTA 파기하라>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선명하다. 깨서 버린다는 '파기(破棄)' 또한 폐기와 거의 같은 의미다. 쓰는 방법 즉 용례(用例)도 같다. '파기시켜라'가 아닌 '파기하라'다.

문법적으로 톺아보자면 '폐기하다' '파기하다' 둘 다 '목적어를 갖는 타동사'다. 뜻으로 보자면 말 뿌리 즉 어근(語根)인 폐기와 파기가 '무효로 하다'라는, 시킴 즉 사역(使役)의 의미를 품는다. 그 뒤에 다시 사역의 뜻인 접미사 '시키다'를 붙여 어법에도 맞지 않으면서 듣기에 어색한 표현을 짓고 있는 것이다.

말글 얘기에서 '사역동사'라는 문법이 나오니 느낌이 낯설까? '~으로 하여금 ~하게 하다'라고 학창시절 외웠던 영어 make, have, let과 같은 사역동사 단어는 잘 알면서도 우리말 사역동사의 활용에는 어설프다. 그 대표 격인 '시키다'는 '~을 하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쓰이고, 명사의 뒤에 붙어 사역의 뜻을 더하는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로도 쓰인다.

말의 뿌리가 되는 의미인 속뜻을 챙기지 않고 말글을 멋대로 쓰다 보니 이런 오용(誤用)이 빚어진다. 이미 많이 지적된 '소개시키다'와 같은 형태의 잘못이다. '서로 알게 한다'는 사역의 의미를 갖는 '소개(紹介)'에 다시 사역의 뜻 접미사를 붙인 이 말은 잘못이다. 당연히 '소개하다'가 옳다.

이제 상당수가 이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말글의 관성(慣性) 즉 습관은 뜻밖에 강하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라는 제목의 영화도 최근 나와 한참 광고를 해대더니, 비슷한 표현을 쓴 보험 광고도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인다. '시키다'는 말이 어느덧 말과 글을 조절하는 우리의 의식(意識) 구조에서 익어버렸나? '소개해줘'라 하면 되레 어색한가?

정치인들의 발언은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의도한 바는 아닐지 몰라도 의외로 잘못된 의식이나 언어습관을 심어줄 수 있다. 그래서 정치 조직들은 대변인(代辯人)이란 직책을 둔다. '입'의 역할을 하는 전문가다. 그 '입'은 내용 뿐 아니고 내용을 구성하는 틀 즉 '형식'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 '입'은, 이를테면 한명숙 대표가 회의에서 '폐기시키라'고 발언했더라도 '폐기하라'로 바루어 정리하고 발표해야 한다. 더 좋은 것은 그 조직이 활용하는 언어가 반듯하고, 뜻이 생생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아름답도록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 미디어오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명숙#김영근#한미FTA#대변인#말글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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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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