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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가방을 메고 만화책을 봅니다. 지금까지는 가방 메는 일이 좋은가 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을 내겠지요. 둘째는 호시탐탐 가방 한번 메보려고 기회를 노립니다.
▲ 가방 큰애가 가방을 메고 만화책을 봅니다. 지금까지는 가방 메는 일이 좋은가 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을 내겠지요. 둘째는 호시탐탐 가방 한번 메보려고 기회를 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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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퇴근길입니다. 회사를 빠져나와 느긋한 기분으로 거리를 달립니다. 아무리 좋은 직장도 퇴근하는 맛이 없으면 어떻게 버틸까요? 하루 스물 네 시간 중 가장 편한 시간입니다.

허리띠를 조금 느슨하게 풀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는데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옵니다. 늙으신 어머니가 전화를 했습니다. 풀렸던 근육이 자연스레 긴장합니다. 노부모 전화는 사람을 한없이 긴장하게 만듭니다.

급히 전화를 받으니 대뜸 집으로 오랍니다. 더 긴장됩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사정을 물었습니다. 큰애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가방을 사놨으니 들러서 가져가랍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운전대 잡았던 한 손에 힘이 빠집니다. 별 탈은 없는 겁니다.

또 한 번 숨을 고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전화가 울립니다. 애들 작은 고모가 지나는 길에 챙길 테니 집에 올 일 없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별 일이 없어서 그리고 부모님 집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덜어 줘서 고맙습니다.

끝없는 자랑에 둘째 질투 깊어가고...

할머니 선물을 받자마자 재빨리 이름을 적습니다. 둘째가 이름을 써버리면 둘째 물건이 되버리거든요.
▲ 이름 할머니 선물을 받자마자 재빨리 이름을 적습니다. 둘째가 이름을 써버리면 둘째 물건이 되버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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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가슴을 뛰게 한 전화 받은 후,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밀고 집으로 들어섭니다. 큰애가 등에 가방을 달고 폴짝폴짝 뛰어와 빙그르르 한 바퀴 돕니다. 할머니가 사준 선물이랍니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과장해서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모습에 자랑이 이어집니다.

자세히 보니, 등에 메는 가방과 보조가방, 그리고 신발주머니까지 보아 하니 입학 3종 선물세트였습니다. 갑자기 큰애가 불쌍해 보입니다. 이 모든 가방을 몸에 붙이고 학교에서 집까지 오려면 땀 꽤나 흘리겠군요. 뒤쪽에선 둘째가 한없이 종알종알 떠들어 대는 형을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으로 쳐다봅니다.

눈빛이 수상합니다. 잠시 아빠와 형의 대화를 듣더니 갑자기 보조가방을 탁 치고 저쪽으로 달아납니다. 단단히 삐쳤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큰애는 둘째 격한 반응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직, 아빠에게 자랑하느라 입 다물 시간이 없습니다.

계속 움직이는 큰애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의자에 걸터앉은 둘째를 달랬습니다. 틀어진 마음을 푸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형보다 늦게 태어나게 된 생물학적(?) 배경을 설명하느라 진땀 꽤나 흘렸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큰애는 제 주변에서 계속 종알거리더군요.

물론 등에 둘러맨 가방은 벗을 생각을 않고 말이죠. 그런 큰애를 보고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가방과 신발주머니 그리고 보조가방까지 둘째와 셋째 손을 타지 않도록 가까이 두고서 만화책을 봅니다. 다른 물건은 순순히 내주는데 할머니 선물인 가방은 양보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그런 형이 더 야속합니다.
▲ 가방 가방과 신발주머니 그리고 보조가방까지 둘째와 셋째 손을 타지 않도록 가까이 두고서 만화책을 봅니다. 다른 물건은 순순히 내주는데 할머니 선물인 가방은 양보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그런 형이 더 야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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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벗어. 정신없잖아."
"조금만 더 메고 있을게요."
"계속 그러면 가방 어디다 숨겨버린다."
"그럼, 오늘 가방 메고 잘래요."

오늘은 가방 메고 잔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갈 때 메고 가는 배낭입니다. 이제 큰애 배낭은 제가 메고 다녀야겠습니다.
▲ 배낭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갈 때 메고 가는 배낭입니다. 이제 큰애 배낭은 제가 메고 다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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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큰애가 가볍게 내뱉은 아내의 말 한마디에 가방을 메고 자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끼는 가방을 엄마가 숨길까 걱정도 되지만 좋아하는 물건을 손에 꼭 쥐고 자고픈 마음이 더 크겠지요. 고민됩니다. 가방을 둘러매고 어떻게 잘까요? 그 걱정,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풀렸습니다.

늦은 시간, 큰애 자는 모습을 보니 간단하더군요. 엎드려 자면 됩니다. 등에 할머니 선물을 붙이고 새근새근 잘도 잡니다. 그날 이후 큰애는 책 읽을 때도, 밥 먹을 때도 할머니 선물을 등에 꼭 붙이고 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보낼 듯합니다.

졸업과 입학식이 이어지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부모님들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특히, 애들 학용품 구입에 신경이 많이 쓰이지요. 저희 집은 그동안 큰애와 둘째 가방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죠.

숲에서 노는 어린이집을 다닌 덕분입니다. 작은 배낭 하나면 충분했으니까요. 그런데,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니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담 없이 구입했던 배낭을 짊어지고 학교에 갈 수는 없으니까요.

입학 준비, 아이들 어깨보다 부모 등골 먼저 휠 지경

들고, 매고 다녀야 할 가방들입니다.
▲ 가방 들고, 매고 다녀야 할 가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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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할머니 선물이 집에 도착하기 전, 아내와 큰애 가방을 사려고 몇 번 상의를 했지요. 가방 구입을 위해 몇 군데 가게도 들렀는데 자꾸 손이 커지더군요. 가격대를 고민하며 제품을 찾는데 비싼 가방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겁니다.

인지상정이지요. 자식에게 좋은 것 주고픈 부모 마음 다들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 점을 인정하더라도 요즘 아이들 가방 가격 너무 비싸다는 생각입니다. 가게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유명 상품은 가격대가 수십만 원까지 치고 올라가더군요. 50만 원을 넘는 제품도 있었습니다.

아이들 어깨보다 부모 등골이 먼저 휠 지경입니다. 책가방은 멋 내려고 메고 다니는 장식품이 아니라 학용품인데 말이죠. 불행히도(?) 큰애는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비싼 가방은 메고 다니지 못할 겁니다. 비싼 가격에 살 엄두도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마음껏 뛰놀게 하려고요.

개구쟁이 초등학생 등에 매달린 가방은 흙도 묻고 찢기기도 할 겁니다. 비싼 가방 사주면 조심조심 들고 다니느라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테니 그 핑계로 저렴하고 튼튼한 가방을 사주렵니다.

그나저나 가방이 싼지, 비싼지 이렇듯 신경 쓰는 걸 보니 저도 학부모가 된 게 실감납니다. 덩달아 어찌할 도리 없이 걱정도 생깁니다. 왕따 당하면 어떡하나, 덩치 큰 아이들에게 손찌검 당하고 오면 또 어찌 대처해야 할까요? 스치는 고민이 무시 못할 지경입니다.

물론, 아내도 같은 분위기 같습니다. 이래저래 아내와 상의할 일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이제 며칠 지나면 큰애는 노모가 사준 가방 메고 시간 맞춰 집을 나서겠죠. 어린이집 다닐 때처럼 게으름을 피우면 곤란합니다. 조금 아프다고 학교에 안 갈 수도 없습니다. 웬만한 고통은 참고 견뎌야 합니다.

가방에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보는 법 담아왔으면...

하늘을 봅니다. 무슨 생각 하는 걸까요?
▲ 아들 하늘을 봅니다. 무슨 생각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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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넘어져도 이젠 선생님이 부리나케 달려와 안아주며 달래주지 않습니다. 또, 하고픈 일만 골라서 하고 싫은 일은 고개 돌려 외면해도 안 됩니다. 온실을 벗어나 바람 거센 들판으로 나온 겁니다.

바람에 꺾이는 가련한 풀이 아니길 바랍니다. 때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가방끈 단단히 잡고 다시 걷고 걸어 목적한 곳에 당당히 서는 참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에 조언이 필요하다면 잠시 함께 걸어주렵니다. 그러나 결국, 또다시 혼자 가야 한다는 걸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간 참 빠르네요. 기저귀 떼고 엉거주춤 걷는 모습이 몇 달 전처럼 눈에 선한데 말이죠. 큰애는 화려한 그림이 박힌 가방 속에 뭔가를 열심히 담아 올 겁니다. 지식을 담을 수도 있고 숲속 친구를 계속 담아 올 수도 있겠지요.

할머니가 선물한 작은 가방에 무엇을 담아오든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많이 담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숲속 친구들과 정답게 지냈듯 이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할 시간이니까요.


태그:#초등학교 입학선물, #가방, #학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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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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