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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남해·하동 지역 주민들이 20일 오전 국회 남문에서 농어촌 선거구 유지를 요구하며 국회로 진입을 시도하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남 남해·하동 지역 주민들이 20일 오전 국회 남문에서 농어촌 선거구 유지를 요구하며 국회로 진입을 시도하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총선 날짜가 50일도 채 안남았는데 선거라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연일 폭력 속에서 공전하고 있다. 당장 중앙선관위는 선거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고, 유권자들은 혼선을 겪고 있다. 정개특위 회의장 주변은 날마다 고함과 몸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멀쩡한 선거구가 갈기갈기 찢어질 위험에 처한 남해·하동과 담양·곡성·구례의 주민들은 연일 상경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국회는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돌아간다. 국정감사도 소관 상임위 별로 실시하고, 예산안 심의·확정과 부수법률안 처리도 상임위 별로 이뤄진다. 국회는 16개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위, 윤리특위 등 2개의 상설 특별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이외에도 남북관계발전특위와 정치개혁특위, 독도영토수호대책특위 등 한시적으로 설치된 특위가 7개 더 있다. 국회는 해마다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들 특위의 활동 기한을 연장한다.

정부가 제출한 예결산 심의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국회의 권능으로 보면 가장 중요한 특위로 예결특위와 정개특위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핵심 특위의 또 다른 공통점은 국회가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는 점이다. 그 무림신공(武林神功)의 주특기는 기네스북에도 가끔 오르내리는 '날치기'와 '벼락치기' 그리고 '후려치기', 이른바 '3치기'다. 이유는 단 하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다. 

국회 무림신공의 주특기는 '날치기·벼락치기·후려치기'

먼저 '날치기' 기술은 설명이 불필요한 낯익은 신공이다. 여야는 예산안 처리 때마다 거친 몸싸움 끝에 여당의 '날치기'와 야당의 의사일정 거부로 국회가 마비되는 구태를 반복해왔다. 18대 국회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새해 예산안 '날치기'라는 오점을 남겼다.

뭐,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한나라당에만 '날치기' 오점이 있는 건 아니다.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지키지 못한 것은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던 17대 국회를 포함해 9년째다. 그런 판국에 예산안 심의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결국 예산안은 '벼락치기' 졸속 심의가 될 수밖에.

'벼락치기' 다음에는 '후려치기' 기술이 들어간다. 예결특위 위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비법이다. 최대한 예산 심의기한을 늦췄다가 막판에 후려쳐서 삭감하는 것이다. 많이 깎아 놓아야 국회의 재량권이 커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에 들이민 민원성 '쪽지 예산'만도 1조 원이라는 얘기가 있다. 특히 야당의 처지에서는 정부예산을 최대한 후려쳐서 삭감해 놓아야 여당과 '거래'할 때도 야당 몫이 커진다.

지금 정치권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국회의원 공천 심사도 예산안 심의와 마찬가지다. 선거 승리가 지상목표인 당대표의 처지에서는 공천을 앞두고 최대한 '현역 프리미엄'을 줄여서 '물갈이' 폭을 늘려야 '전략공천'을 할 수 있는 재량권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역 의원들은 선거구 획정과 공천 심사가 밀실에서 이뤄지는 것을 경계하기 마련이다.

선거 때마다 법을 어겨온 국회 정치개혁특위

선거라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정치개혁특위는 출범부터 여야 타협의 산물이었다. 1997년 15대 국회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대선을 앞두고 자민련과 함께 여당인 신한국당과 협상을 벌여 '여야 동수의 정치개혁특위 구성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 배정은 의석수에 따라 배분하게 돼 있다.

그러나 야당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일은 만장일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여야 동수 구성안'을 밀어붙였다. 여야 동수면 최소한 '날치기'는 막을 수 있다. 날치기가 불가능하면 여야가 서로 양보해 합의안을 낼 수밖에 없다. 그 이후 지금까지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정개특위에서 심의한 공직선거법 개정법률안은 의원 개인이 아닌 '위원회안'으로 본회의에 상정돼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온 것이 불문율이다.

역대 국회 정개특위는 그동안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등 이른바 '정치관계 3법'의 개정을 통해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는 선거제도 도입과 선거연령의 하향조정(20→19세) 등으로 참정권을 확대하고 규제 위주의 선거운동을 폭넓게 허용하는 쪽으로 기여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개특위도 예결특위로부터 '못된 기술'만 배웠으니 그 역시 '벼락치기'와 '후려치기'다.

다시 '벼락치기' 기술을 보자.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지역구)를 획정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다. 정치 지망생들은 먼저 선거구가 획정되어야 출마 희망지역을 정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선거를 준비하며, 정당에서도 공천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그래서 공직선거법은 선거 시행일 1년 전까지 선거구를 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이 당리당략에 따라 총선에 임박해 졸속으로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선거 때마다 법을 어겨 왔다.

 지난 11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천기흥(전 대한변협 회장) 제19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장이 선거구획정위안(보고서)을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지난 11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천기흥(전 대한변협 회장) 제19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장이 선거구획정위안(보고서)을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 김당

우선 공직선거법(제24조)에 따라 설치하는 법정기구인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의 구성 자체가 선거 시행일 1년 전에 이뤄진 적이 없다. 이번 19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만 해도 지난 2011년 9월 6일에야 구성되었다. 18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는 선거 시행일 1년 전은커녕 심지어 선거가 있던 2008년 1월 18일에 '벼락치기'로 구성되었다. 18대 획정위는 선거 시행일을 불과 석 달도 안 남기고 구성돼 한 달간 활동 후 선거일 두 달 전에 획정위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19대 획정위는 지난해 9월부터 전문가 공청회와 정당 의견 청취 등 9회의 회의를 열어 11월 25일 획정안 보고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획정위의 획정 자체가 선거 시행일 1년 전(2011년 4월 10일)이라는 시한보다 7개월이나 늦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획정위안을 토대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 정개특위에서의 논의 과정과 방향이다.

18대 획정도 여야 밀실담합으로 '밥그릇 챙기기 꼼수'

이번엔 '후려치기' 기술이 들어갈 차례다. 18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때도 그랬다. 18대 획정위는 위원들 간에 이견을 좁히지 못해 지역구 의석을 2석(245석, 1안) 또는 4석(247석, 2안) 늘리되 비례대표를 현행 유지하거나 늘리는 복수안을 냈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사실상 1, 2안을 모두 배제한 채, 지역구 의석수는 245석으로 하되 비례대표는 줄이면서 획정위가 통폐합 대상으로 제시한 3곳(부산 남, 대구 달서, 전남 여수)을 유지했다. 여야가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밀실 담합'으로 '밥그릇'을 챙기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당시 정개특위에서 한나라당 밥그릇 챙기기에 앞장선 이가 현재 선거구획정을 논의하는 정개특위 공직선거관계법심사소위의 주성영 소위원장(새누리당 정개특위 간사)이다. 주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 달서구가 인구 상한에 미달해 통폐합되는 것을 적극 반대해 관철시켰다. 당시 또 한 명의 '이해 당사자'인 김정훈 의원(부산 남구갑)의 지역구도 전남 여수 선거구를 유지하려는 민주당과의 '나눠 먹기'로 살아남았다.

주성영 의원은 당시 부산 남구와 대구 달서 지역의 통폐합 반대논리로 향후 재개발지역의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어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재 부산 남구(-1만4323명), 대구 달서(-1만3762명) 지역 인구수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각각 인구 상한선 기준에 모자란 상황이다. 결국 통폐합을 반대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억지 논리였던 셈이다.

국회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제정한 것은 1994년이다. 국회는 이후 제15대 국회부터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를 구성해 선거구를 획정해왔다. 공직선거법(제24조 10항)은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선거구획정에 관한 규정을 개정할 때는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의 선거구획정안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취지는 선거구획정위안에 위법이나 부당한 사유가 없는 한 최대한 수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래서 19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는 획정위안을 제출하면서 보고서 서문에 "앞으로 국회가 선거구획정을 위한 구체적 입법을 할 경우에 우리 위원회의 선거구획정안이 최대한 수용되어야 하고, 정치적 이해가 개입되어 선거구획정의 원칙이 훼손되거나 위헌적 요소를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명시해 정개특위가 획정위안을 존중해줄 것을 완곡하게 요청했다.

"정치인에게 자와 칼을 쥐여준 것 자체가 난센스"

 4월 총선 선거구 획정과 석패율제, 모바일 투표 도입 여부 등을 논의하기 위해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치개혁특위 공직선거법 소위원회에서 주성영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4월 총선 선거구 획정과 석패율제, 모바일 투표 도입 여부 등을 논의하기 위해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치개혁특위 공직선거법 소위원회에서 주성영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남소연

그러나 정개특위는 획정위안을 한 달여 동안이나 쥐고 있다가 이번에도 '후려치기'로 획정위안을 갈기갈기 찢어서 '형해화'(形骸化)시켰다. 먼저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역구는 살리면서 농촌 지역구를 통폐합시키는 4(분구 및 신설)+4(통폐합)안을 채택해 정개특위에서 한나라당과 협상에 들어갔다. 즉 전국 선거구(지난해 10월말 기준)를 오름차순으로 정리했을 때 가장 인구가 적은 경남 남해·하동(10만4342명), 경북 영천(10만4669명), 경북 상주(10만4945명), 담양·곡성·구례(10만5636)의 4개 선거구를 통폐합하자는 안이다.

결과적으로 정개특위는 이번에도 헌법재판소의 선거구획정 결정기준(선거구 평균인구수의 ±50%)을 무시하고 획정위가 통폐합 대상으로 제시한 3곳(부산 남, 대구 달서, 전남 여수)을 유지하면서 선거구 통폐합 없이 3개 지역구만 신설하려는 '꼼수'를 부리며 여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정개특위는 1월에 이어 2월에도 뒤늦게 '벼락치기'로 공직선거법 소위원회를 거듭 열어 선거구획정을 논의했으나 여야간 이견으로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현재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파주를 분구하고 세종시 선거구를 신설해 지역구를 3곳 늘린다는 데는 잠정 합의했지만 '어디를 줄일 것인지'에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영·호남에서 각각 한 석씩 줄이고 비례대표를 한 석 줄여서 국회의원 정원(299석)을 유지하는 안을 고수하고 있고,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영남 2석, 호남 1석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은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쪽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구획정은 헌재의 선거구획정 결정기준(평균인구수의 ±50%)을 무시할 뿐만 아니고, 당리당략에 따른 도시 중심의 선거구 획정으로 농촌지역 선거구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박선영 의원이 '선거구 획정권을 국민에게 돌려줘라!'는 개인성명을 내고 "영·호남을 토대로 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영역을 공고히 함으로써 조폭같은 정치를 계속 조장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이렇게 비판했을까 싶다.

"4년 동안 헌법전문가로서 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했던 자로서 솔직히 고백하건대 정치인에게 자신들의 텃밭을 줄여보라고 자와 칼을 그 손에 쥐여진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국회, 정치인들에게 지금 이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처럼 외부인들에게, 순수하게 외부인들에게 선거구 획정권을 주고 국회는 오로지 그 결정권에 구속되도록 해야 한다."

국회 밖에서도 이번 기회에 국회에 맡긴 '밥그릇'을 찾아오자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이종우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21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을 찾아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경재 정개특위위원장, 주성영 정개특위 간사 등을 만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를 상설의결 기관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당과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면서, 선거의 관리에 어려움이 초래되고 있으니 선거구획정위를 국회 밖에 독립기구로 두자는 것이다.

2월 임시국회는 여야 정치권과 18대 국회가 국민에게 쇄신과 변화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당연히 국민은 정개특위가 개혁의 선봉에 서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쇄신과 변화를 주도해야 할 정치개혁특위가 당리당략에 묶여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석패율제, 국민경선제, 모바일투표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은커녕 선거구 획정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니 정치개혁특위가 '정치개악특위'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들을 만하다.

사실 '정치개악'의 근본적 원인을 살펴보면 선거구 획정문제를 정개특위에 맡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정개특위는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을 갈기갈기 찢어서 '형해화'시켰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면? 정답은 '뼈만 남는다'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생선 밥그릇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18, 19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을 지냈다.



#정개특위#선거구획정#밥그릇 챙기기#공직선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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