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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2012년 체제, 이명박 이후를 준비하자'를 주제로 10만인클럽 특강을 하고 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2012년 체제, 이명박 이후를 준비하자'를 주제로 10만인클럽 특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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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중동 사주라면, 요새 잠이 안올 것이다."

진보진영의 원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4)의 말이다. 그는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오마이뉴스> 창간 12주년 기념 10만인클럽 특강을 가졌다.

백낙청 교수는 특히 종편 이후 조중동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조중동은) 종편을 받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정권에 아부하는 등 온갖 추한 짓을 다했다"며 "(이제 와서) 신문의 영향력도 줄고 종편도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정권도 특유의 단기차익만 노린 나머지 (조중동이) 욕을 못하게 하려다 보니까 (종편을) 다 줬다"며 "도와주려면 욕을 먹더라도 한두 개로 몰아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받은 사람(조중동)도 속이 부글부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바꾸는 데 만족하지 말고 세상을 확 바꿔보자"

백낙청 교수는 최근 <2013년체제 만들기>란 책을 냈다. 2012년체제도 아니고 2013년체제? 그의 말에 따르면 "2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내가 낸 책 중 가장 도전적"이란다.

책이 나오자마자 진보진영에서는 토론회를 연일 개최하며 87년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체제로서의 2013년 체제를 모색해나가고 있으나, 보수진영에서는 백 교수의 주장을 진보 집권을 위한 노회한 논객의 '꼼수'정도로 깎아내리고 있다.

그럼 백낙청 교수는 왜 '2013년 체제'를 주장하는 것일까?

"2013년이면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이다. 이때 대통령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세상을 한번 확 바꿔보자는 것이다. 시대의 전환을 꾀해보는 것이다."

그는 이어 "'체제'라는 말은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이미 '87년체제'라는 말이 있고 앞날을 도모하자는 것이라서 2013체제라고 했다"고 부연했다.

백 교수는 "2013년체제를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금년 선거에 달렸으며, 양대 선거 중 사실 4월 총선에서 판가름이 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이유로 "2012년은 총선이 대선보다 불과 8개월 앞에 오는 특별한 해"라며 "총선 이후 한참 있다가 대선이 있으면 '다수당으로 뽑아줬는데 하는 일이 맘에 안들더라'며 대선에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데, 간격이 좁으면 '대선 땐 (총선과 달리) 따로 뽑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국민 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더 중요한 것은 만약에 야당이 19대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면 헌정 사상 없던 사태가 벌어진다"며 그 이유로 "잔뜩 쌓인 (현 정권의) 의혹 사건, 비리 사건을 다음 국회에서 파헤치면 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다음 여당 대통령 후보를 꿈꾸는 사람도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야권이 총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하면 대선 이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야당이 다수당 되면 헌정 사상 없던 사태가 발생"

백 교수는 또 "이번 총선에서 남북관계나 평화문제가 그렇게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12월 대선과 특히 2013년체제의 성패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는 "남북관계는 남한 내부의 정치권력의 추세, 권력다툼, 권력 균형을 좌우하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핵심문제"라며 "남북관계가 나쁘면 나쁠수록 수구세력은 기득권 지키기가 편리하지만, 반면에 개선되면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기득권에 대해 비판할 때 남북관계가 나쁘면, '넌 친북좌파, 빨갱이가 아니냐. 평양에나 가라'는 소릴 들을 것이다. 지금도 복지, 민주주의, 언론자유 등 싸움을 하다가 어느 단계에 가면 반드시 나오는 소리가 '저건 좌빨 친북세력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관계에서 남북관계가 핵심이다."

백 교수는 "87년 체제는 군사쿠데타 정권은 끝냈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53년 휴전협정 이후 지속된 불안정한 상태를 바꾸지 못했다"며 "2013년체제의 첫 과제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며, 그래야 복지, 양성평등도 제대로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분단체제와 국보법은 수구세력의 꿀단지"

그는 특히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에 대해 '수구세력의 꿀단지' '전가의 보도'라고 지칭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관계는 2013년 체제 하에서 '남북연합'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5·24조치 때문에 예전에 해오던 남북교류도 거의 못하고 있는 판국에 꿈같은 소리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면서도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문제들보다 반드시 더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고 낙관했다.

그는 2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미 3차회담을 거론하면서 "이미 김정일 사망 전 어느 정도 타결됐기 때문에 곧 6자회담과 핵시설 불능화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전제하고 만약 핵협상이 끝나고 더 이상 흥정거리가 없어질 경우 북한은 불안을 해소할 관리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국가연합'이라는 것.

그는 한편 7.4공동성명과 6.15-10.4공동선언을 차례로 열거하고 "앞선 공동선언들은 국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정권교체를 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시민참여형 통일'을 역설하고, "대북정책이 잘못됐다는 지적에 꿈쩍도 하지 않는 현 정권을 국민이 나서서 갈아치운다면 시민들의 큰 승리이미 이정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백낙청 교수는 마지막으로, 책의 '색인'에 천안함 사건이 유독 많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천안함 사건은 남북관계 이전에 남한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문제"라며 "이것을 제대로 밝혀내면 남북관계도 풀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핵심고리가 아닌가 한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내가 낸 책 중에는 잘 나가는 편이다"

 "이 정권은 10·4선언을 노 대통령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지만 10·4 선언은 법률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국민이 나서서 정권을 갈아치운다면 시민들의 큰 승리이며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정권은 10·4선언을 노 대통령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지만 10·4 선언은 법률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국민이 나서서 정권을 갈아치운다면 시민들의 큰 승리이며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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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기조발제가 끝난 뒤 백 교수와 사회를 맡은 오연호 대표, 방청객들의 일문일답이다.

- 책 잘 나간다는 얘기가 있던데.
"내가 낸 책 중에는 잘 나가는 편이다.(웃음)"

- 이 책은 이명박 정권을 극복하는 외에 더 큰 꿈을 꿔보자는 얘기인 듯하다. 과거 분단체제론 제시 때도 그랬지만, 선생은 어쩌면 그렇게 일관되게 남과 북을 아우르는 생각을 할 수 있나.
"일제 말기에 태어나 중학교 때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는 항상 통일이 절대 과제란 인식을 갖고 있다. 또한 문학 하는 사람들에게 한국문학은 한국어로 하는 문학이지, 단순히 대한민국 문학이 아니다. 70년대 민족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반쪽의 국민문학을 거부하고 전 민족의 문학을 생각했다."

-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통일이 꼭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뉘어 있어도 잘살고 있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정말 잘살고 있나. 그럼 왜 멀쩡한 학생들이 자살하나. 그들이 굶주리고 헐벗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집에 가면 엄마에게 공부 안 한다고 혼나고 학교 가면 폭력에 시달린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대학 들어가면 취직 공부해야 하고. 겨우겨우 좋은 직장 들어가면 완전 혹사당하다 간다. 

그동안 통일운동이나 통일담론을 편 사람들의 잘못일 수도 있다. 무조건 통일만 하자고 했으니까. 통일이 당장 안 되고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젊은이들도 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남북연합은 그게 아니다. 분단체제하에서 살다 보면 민주주의에도 해가 되고 남이든 북이든 기득권이 판친다. 그래서 지금 현실에 맞는 아주 느슨한 결합상태로 가자는 것이다. 위태로운 상황을 공동관리할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원래 천몇백 년을 한 민족으로 살아왔는데 억지로 갈라졌으니 언젠가 통일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합의된 것이다. 남북연합은 통일을 향해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나는 통일이란 말을 되도록 안 쓰고 분단체제 극복이라고 쓴다. 분단극복은 그냥 통일이지만, 체제 극복은 우리를 옥죄고 있는 것을 조금씩 해소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통일하자는 것이다."

- 책에서는 그런 수준의 국가연합이 2013년에 보수정권이 아닌 진보정권이 들어선다면 임기 내에도 가능하다고 했던데.
"다들 어렵다지만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만 돼도 남북관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복지사회 발전 등을 가로막는 수구세력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꿀단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임기 중 적당히 낮은 단계에서 이 정도로 국가연합 선포하자고 합의하면 된다. 다음 대통령이 유능하고, 국회가 확실히 뒷받침하고,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밀어주면 못하란 법도 없다."

"보수? 그들은 수구세력일 뿐이다"

-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과 비교해서 '포용정책 2.0'이 필요한 때가 왔다며, 통일프로세스 과정에서 시민참여형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시민참여형이란 통일'이라는 게 뭔가.
"시민참여형이라고 해서 7·4공동성명, 6·15-10·4공동선언 같은 것을 이 다음에는 민간끼리 체결하자는 게 아니다. 그건 정부가 해야 한다. 앞서 세 가지 협정을 거치며 모두 시민 참여가 발전해왔다. 직접적 통일 사업에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협정이 가능하도록 하는데 시민 역량이 많이 축적돼야 한다는 것이다. 

앞선 공동선언들은 국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정권교체를 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정권은 10·4선언을 노 대통령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우린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10·4 선언은 다 법률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다. 대북정책에 대해 수많은 학자들이 잘못됐다고 했지만 현 정부는 꿈쩍도 안해왔다. 국민이 나서서 정권을 갈아치운다면 시민들의 큰 승리이며 이정표가 될 것이다."

- 일부에서는 2013년 체제를 만들려면 진보-보수-중도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하는데, 선생은 올해 총선-대선은 확실하게 진보가 보수를 깨뜨리고 그다음에 중도를 흡수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왜인가.
"난 '진보' '보수'라는 말을 잘 안 쓴다.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세력일 뿐이다. 자신의 부당한 특권을 단기적으로 지키려 몰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정한 보수보다 훨씬 많다. 이명박 이후엔 제 세상 만나서 최근까진 아주 즐겁게 지내왔다. 진정한 보수도 많지만, 보수가 수구세력에 포섭돼 있다. 수구세력들이 선거에서 국민들의 무서운 맛을 봐야 한다. 참된 보수가 주도하는 집단이 있다면 진보집단과 대화도 가능하지만, 2012년은 어차피 한번..."

- 대선을 앞두고 복지국가론, 양극화해소 등이 시대적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2013년 체제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
"복지든 뭐든 정책 싸움을 거쳐 된다. 항상 걸리는 게 '친북좌파 아니야'는 말이다. 그거 설명하느라고 진을 다 뺀다. 다행히 이명박 정권이 하도 양극화를 심화시켜 놓고, 급식도 차별적으로 하자고 하고... 결국 남북관계 개선과 맞물린다. 복지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의 모델을 전환하는 게 첫째이다. 각자 경쟁을 하다 보면 희생자가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사회가 발전되면 못사는 사람들도 혜택을 받고, 정 죽겠는 사람들은 시혜를 주겠다는 것이 우리 국가의 모델이다. 국가나 사회에 대해 국민들이 생각하는 패턴을 바꾸자는 것이다.

"남한이 북 흡수통일한다면 양쪽이 다 망할 것"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87년체제가 대중의 '불법적인' 봉기로 이뤄졌다면, 2013년체제는 '합법적인' 선거공간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87년체제가 대중의 '불법적인' 봉기로 이뤄졌다면, 2013년체제는 '합법적인' 선거공간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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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적으로 남한 정부는 휴전 조인 당사자가 아닌데, 선생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말한다. 미국이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까.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는 쪽은 북한이었다. 그러나 북한도 그걸 포기한 지 오래됐고, 미국도 당연히 반대하지 않는다. 북이 그렇게 나올 때도 미국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중국도 동의한다. 법리상으로도 평화조약은 교전당사자들이 하는 것이다. 휴전협정 서명은 중요한게 아니다. 10·4선언에도 3자 혹은 4자 정상이 모여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나온다. 넷은 남북중미지만, 셋은... 노무현-김정일이 만난 자리였는데 한국을 뺐겠냐. 한국이 들어간 건 너무 당연하다."

- 흡수통일도 가능한데 굳이 평화통일을 할 필요가 있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흡수통일은 독일처럼 단기간에 될 수 없다. 동·서독은 전쟁한 적이 없다. 그러나 북한은 전쟁했던 군대가 있고, 그때 군인들도 아직 남아 있다. 독일은 동독에 군대가 별로 없었다. 소련군이 와서 지켜줬다. 서독이 고르바초프를 설득해 소련군이 안 움직이게 했다. 서독은 엄청난 부자나라였는데도, 동독을 흡수해서 만성 소화불량에 걸렸다.

그래도 동·서독의 격차는 지금 남북에 비하면 별로 크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남한이 북을 흡수한다면 양쪽이 다 망할 것이다. 그나마 한반도에 남북한만 살고 있으면 허리를 졸라매면 될지 모르지만, 외국자본이 들어와 있어 무모한 짓을 하면 전부 다 빠져나간다. 일단 흡수통일 안 하다고 하고 서서히 나가다가 그다음 흡수하자는 것은 좀 더 현실적이지만,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흡수통일'이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보법, 우선 찬양고무-회합통신만 없애도 된다"

- '포용정책 2.0'은 좋은데 국가보안법 문제가 걸린다. 어떻게 해야 폐지할 수 있을까.
"19대 국회의 지형을 봐야 한다. 17대 국회 때는 폐지는 못해도 개정은 할 수 있었는데, 완전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가 아무것도 못했다. 진짜 중요한 것들은 '찬양고무' '회합통신' 등이 국보법의 꽃이다. 공안기관 입장에서는 꿀단지일 것이다. 요걸 없애버리면 나머지는 그렇게 머리 싸매고 지키려고 할 것 같지 않다."

- 북한 인권문제가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진보세력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단순히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발언할 뿐 아니라 영향을 주려면 남북관계가 좋아야 한다. 서로 총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너는 인권탄압자'라고 하면 '그러니까 쏘겠다'는 말로 들릴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한다."

- 수구세력이라 하면 1%도 안 될 텐데, 어찌 그들이 30~40%의 힘을 발휘하는지 모르겠다.
"이득의 대부분을 챙겨가는 사람수로 따지며 1%겠지만, 그러지도 못하면서 그들과 같이 움직이는 세력은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일제때 친일하면서 혹은 분단시대 독재정권에서 얻은 부당한 기득권은 돈이든, 지위든 어느 정도 청산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념갈등, 사회갈등을 개탄하면서도 실제로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진짜 이슈는 기득권 세력의 부당한 기득권과 일반 시민의 대립인데, 그것을 이념·진보갈등으로 포장하면 기득권 지키기가 편해진다. 보수언론은 항상 사회갈등을 우려하지만 사실상 조장하고 있다."

- 87년세력은 응집력이 있었으나, 2013년세력은 다채롭고 촘촘하다. 응집력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나.
"87년체제가 대중의 '불법적인' 봉기로 이뤄졌다면, 2013년체제는 '합법적인' 선거공간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그게 다 선거공간을 열어준 87년 체제 덕분이다. 더이상 최루탄과 짱돌을 들지 않아도 이룰 수 있다. 다른 한편은, 그렇기 때문에 더 복잡하다. 선거는 돈과 목적에 밝은 사람들이 하는데, 그에 비해 일반 시민들은 약하다. 시민들이 뽑아놔도 말 안 듣는 경우도 있다. 선거로 정권 교체를 하고, 그를 통해 국회에 들어간 사람들을 감시하는 촘촘한 조직이 중요하다."

- 노무현 정권 때도 깨달았지만, 언론의 왜곡보도 문제가 걱정된다.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해서 2013년에 새 체제가 출범한다면, 그 자체가 거대 언론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중동을 압도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다. 승리 자체로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조중동 사주라면 요새 잠이 안 올 것이다. 신문의 영향력도 줄고, 종편도 앞으로 어떻게 할 지 모른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후퇴는 언론의 약화이다. 그것이 시민들의 힘으로 상당히 중화됐는데, 정치 권력까지 잃으면 곤란할 것이다."

- 이명박 정권은 종편을 왜 내줬고, 그들은 왜 받았을까.
"(언론이 종편을) 신청하고 받기 위해 온갖 추한 짓을 다했다. 신문들이 그 전에도 문제가 많았지만 미디어법 통과 후 종편을 받을 때까지 안면몰수 하고 정부에 아부한 것은 말할 수도 없다. 그래 놓고 정권이 준다는데 안 받을 수 없지 않나. 이 정권도 특유의 단기 차익만 생각하는 것을 보여줬다. 도와주려면 욕을 먹더라도 한두 개로 몰아줬어야지. (조중동이) 욕 못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까. 받은 사람도 속이 부글부글할 것이다."

- 종편 봤나.
"나는 안 봤다.(웃음)"

"분단체제는 괴물, 이명박 시대는 괴물의 시대"

- 통일의 당위성은 시간이 지나도 부정되지 않겠지만, 절박함이 줄어들면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이런 사회가 됐나 할때 '다 이명박 때문'이라고 단순히 생각하지 말고 그 뿌리에는 분단체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 전체의 문제도 한국에 올 때면 분단이라는 요소를 매개로 더 악화된다. 이것을 알려줘야 하는 게 지식인의 책임이다. 그런데 진보적이라고 하는 지식인들일 수록 상당수가 그걸 안 보려고 한다. 분단체제를 얘기하면 '아직도 민족주의적이다' '후진 지식인'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것을 '후천성 분단인식 결핍증후군'이라고 부른다."

- 짧은 기간 안에 흡수통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며 남북연합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생각할까?
"단기간 내 흡수통일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북한이 원칙적으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목표로 삼고 움직이면 그럴수록 북은 더욱 단단하게 뭉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늘 강조한 것은 '공산정권은 압력으로 무너진 적 없다는 것'이다. 화해하고 냉전이 끝나면서 무너진 것이다. 또한 북이 무너지면 주변국들이 모두 불행해지므로 다 꺼린다. 이번 김정일 사망 후에도 주변국들은 제일 먼저 북한의 신속한 안정화를 원했다. 나는 교류와 협력으로 남북연합을 이뤄내고 이후 양쪽이 다 변하면서 남쪽 시민들의 가치가 좀 더 많이 반영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남북연합은 관심이 없을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우려할 것이고, 중국은 인근에 적대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은 느슨한 남북연합만이 현실적이다."

- 책에 '마음밭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무슨 뜻인가.
"분단체제는 괴물이다. 그 속에서 오래 살다 보면 우리 맘 속에 괴물들이 하나씩 살게 된다. 내 속과 밖의 괴물을 동시에 퇴치해야 한다. 이명박 시대는 괴물의 시대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누가 그를 뽑았나. 괴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밭을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체제를 바꾸는 것과 내 마음밭 가꾸는 게 병행돼야 한다."


#백낙청#2013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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