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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 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 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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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고 김훈 중위 사건은 발생 후 14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방부는 요지부동 자살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다른 3개 국가기관의 판단은 달랐다. 1999년 국회 국방위원회에 설치되었던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는 그해 5월 31일 부실 수사에 대한 의문 15가지를 제기하며 '김훈 중위는 타살당했다'는 요지의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대법원도 2006년 12월 김훈 중위 사건 관련 판결을 통해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3년간 사건을 조사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 의문사위)는 2009년 11월 2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국방부와는 달리 국회와 법원, 군의문사위가 '적어도 자살은 아니다'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서종표 의원, "국방부가 의도적으로 타살 증거 묵살하고 있다"

최근 논란은 지난 해 11월 열린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서종표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김훈 중위 사망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해온 서 의원은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이 자료가 그동안 국방부가 줄기차게 고수해 온 자살 결론과 상반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을 왜곡하고 조작한 흔적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서종표 민주당 의원이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질의를 하고 있다.
▲ 질의하는 서종표 의원 지난 해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서종표 민주당 의원이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질의를 하고 있다.
ⓒ 서종표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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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이 이미 과학적 실험을 거쳐 김훈 중위가 권총을 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실험 데이터를 확보했지만, 의도적으로 이를 묵살하고 결과를 왜곡 조작했다는 것이 서 의원이 제기하는 의혹의 핵심이다.

1998년 2월 24일 김 중위 사망 직후 1차 수사를 담당했던 미군 범죄수사대는 현장에서 발견된 군용 권총(M9 베레타)과 실탄, 탄피 등의 유류품을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로 보내 감식을 의뢰해 그 결과를 통보 받았다.

김 중위 시신의 부검을 담당했던 한국군 군의관은 "김훈 중위는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발사하였다"고 했지만 미군은 이 문서에 '사망자의 왼손바닥에서만 화약이 검출된 것으로 보아 스스로 쏘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특별한 주의 문구를 명시했다.

김 중위의 왼손 바닥에서 발견된 화약은 '바륨'과 '안티몬' 등 뇌관화약 성분으로, 이것은 탄환의 추진제 역할을 하는 무연화약과는 다른 성분이다. 권총을 발사할 때 총구로는 탄환과 함께 미처 타지 못한 무연화약 입자 및 기타 연소 잔유물이 분출되고, 탄피 배출구로는 뇌관화약이 연소되고 남은 성분인 바륨과 안티몬, 납 등의 금속 성분이 배출된다. 이때 뇌관화약은 무연화약보다 양이 훨씬 적어 총기의 탄피 방출구, 즉 방아쇠를 격발한 손 주변에만 남게 된다.

M9 베레타 권총을 발사할 때 탄피 배출구로 탄피가 튀어나오면서 오른손 잡이의 경우 오른손 손등 부위에 뇌관화약 성분이 묻게된다.
▲ M9 베레타 M9 베레타 권총을 발사할 때 탄피 배출구로 탄피가 튀어나오면서 오른손 잡이의 경우 오른손 손등 부위에 뇌관화약 성분이 묻게된다.
ⓒ world.guns.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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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권총 사망 사건의 경우 발사자(용의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권총을 발사한 사람의 손에 묻은 뇌관화약 성분인 바륨과 안티몬 등을 채취하여 분석하는 '뇌관화약 잔사 확인시험'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방법은 김 중위의 유류품을 감식한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 뿐 아니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아래 국과수)와 국방부 조사본부 등 전 세계적으로 범죄 감식기관이 권총 발사자를 식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오른손잡이인 김 중위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오른손 손등에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 되어야 하는데, 미 육군성 과학수사연구소는 그의 왼손바닥에서만 뇌관화약이 발견된 점에 유의해 '자살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인을 자살로 단정하고 수사를 진행했던 1군단 헌병대(1차 수사), 육군 고등 검찰단(2차 수사), 국방부 특별 합동조사단(3차 수사, 아래 특조단)은 "김 중위의 왼손 바닥의 화약잔재로 보아 총구를 고정하기 위하여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발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즉, 왼손으로 탄피 배출구가 있는 총열을 잡고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에 왼손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미 육군 과학수사연구소가 작성한 '왼손의 뇌관화약성분을 근거로 자살로 단정해선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특조단은 거꾸로 '왼손에 뇌관화약성분이 있으니 김 중위가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발사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 셈이다.

국방부 스스로 외면한 총기실험 결과

하지만 서 의원이 입수한 자료는 이런 국방부의 결론이 억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김 중위 사건을 수사한 국방부는 1999년 1월 25일 경기도 광주의 특수전 학교 실내 사격장에서 실제로 M9 베레타 권총을 사용한 총기실험을 실시했다. 오른손잡이 사격자 3명이 인체 모형의 허수아비에 군복과 두건을 착용시킨 후 김훈 중위의 총상 부위인 측두부에 각각 1발씩 발사해보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사격자 3명 모두 예외없이 오른손 손등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됐다. 국방부 스스로 실시했던 실험에서 김 중위 시신에 남은 흔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1999년 2월 6일 작성된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에는 1999년 1월 25일 특수전학교 실내사격장에서 실시된 '뇌관화약 잔사 확인 시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3명의 실험 참가자 모두 방아쇠를 당긴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되었고(양성), 전투복 좌?우측 팔부위에서 무연화약 반응이 나타났다.
▲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1999년 2월 6일 작성된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에는 1999년 1월 25일 특수전학교 실내사격장에서 실시된 '뇌관화약 잔사 확인 시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3명의 실험 참가자 모두 방아쇠를 당긴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되었고(양성), 전투복 좌?우측 팔부위에서 무연화약 반응이 나타났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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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 중위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에서 발견된 뇌관화약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뉴욕 주정부 소속 법의학자로 30여 년 동안 1천 구가 넘는 권총 사망자 시신을 부검하고 사인을 분석한 경험이 있는 노여수 박사는 김훈 중위의 왼손에서 발견된 뇌관화약성분은 '자신에게 겨눠진 총을 막는 과정에서 생긴 방어 흔적'(디펜스 제스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 의원이 이를 지적하자 국방부 조사본부장이 의원실로 직접 찾아와 발사자의 38%만이 뇌관화약이 검출된다는 미국 논문 통계를 근거로 제시했다. 국방부가 제출한 논문은 미 육군 과학수사연구소에서 10년 동안 112명의 자살자를 조사한 통계를 싣고 있다. 하지만 이 통계는 권총의 종류, 발사장소와 위치, 기상상태 등을 구분하지 않은 일반적 자료에 불과해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근거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서 의원의 주장이다.

조사본부장의 대면보고 당시 서 의원은 국방부가 직접 시험한 결과는 무시하고 일반적 통계를 근거로 자살결론을 내린 이유를 추궁했다. 이에 대해 조사본부장의 답변은 '국방부 총기실험도 잘못될 수 있다. 논문통계가 더 신뢰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서 의원은 국방부가 스스로 실시한 권총실험결과를 의도적으로 감추고 일반적인 논문통계를 이용해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꿰맞추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서 의원은 국방부가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몰아가기 위해 중요 공문서까지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자살 결론 내리기 위해 공문서까지 조작

국방부 특조단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부 물리분석과 이OO 등 3명이 재감정결과, 김 중위의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수사결과 보고서 31 페이지)한다고 적시했다.

그렇다면 특조단이 언급한 국과수의 공문은 정말 이런 내용을 담고 있을까?

1998년 10월 2일자 국과수 문서는 "본 감정건의 경우 변사자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무연화약 성분은 검출되나, (중략)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에 대해서는 논단할 수 없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재 감정문서 1998년 10월 2일자 국과수 문서는 "본 감정건의 경우 변사자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무연화약 성분은 검출되나, (중략)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에 대해서는 논단할 수 없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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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2일자 국과수 문서(문서번호 물리 61112-17899)에는 "본 감정건의 경우 변사자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무연화약 성분은 검출되나, 팔 부위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지 않고, 변사자의 좌·우측 손바닥 및 손등에서의 화약성분 검출 여부를 알 수 없으므로,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에 대해서는 논단할 수 없음"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즉 '김 중위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발견된 무연화약의 존재로는 자살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국과수의 판단을 인용하면서 특조단은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자살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 사실을 발표했다는 혐의를 받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당시 국과수에서는 양쪽 야전 상의 어깨에서 발견된 화약흔을 갖고 김훈 중위 자신이 발사했다는 내용으로 회신한 적이 없다. 의뢰인인 국방부 특조단이 왜 그렇게 해석해 발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당초 특조단은 김 중위가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왼손으로는 총몸을 꼭 잡았기 때문에 왼손에만 뇌관화약 성분이 묻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특조단이 주장하는 김훈 중위의 자살자세 당초 특조단은 김 중위가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왼손으로는 총몸을 꼭 잡았기 때문에 왼손에만 뇌관화약 성분이 묻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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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14년간 무리하게 자살 결론을 고수하고 있는 국방부의 태도에 대해 서 의원은 검찰이나 외부의 객관적인 수사기관이 나서서 김훈 중위 사건을 전면 재조사 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김훈 중위의 유족은 수사 관련자 처벌과 김 중위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장문의 편지를 국방장관과 육군 참모총장 앞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조사본부는 사인규명을 위해 조사가 완료되면 그 결과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겠다는 내용의 회신문을 보내왔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유족은 국방부가 재조사를 빙자하여 또다시 억지 자살결론을 내리려고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견해를 이미 밝힌 바 있는 법의학자들에게 또다시 법의학 자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법의학자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을 경우 오른손에 뇌관화약 성분이 남지 않는다는 견해를 국방부 조사본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무리한 추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엄지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한 법의학자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을 경우 오른손에 뇌관화약 성분이 남지 않는다는 견해를 국방부 조사본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무리한 추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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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한 법의학자는 김 중위의 오른손에서 뇌관화약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 중위가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김훈 중위가 생도때 부터 여러 해 동안 권총사격 훈련을 받은 장교라는 점, 고통 없이 최단시간에 죽음을 맞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방아쇠를 당긴다는 총기 자살자의 특성 등을 감안하면 무리한 추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중위 시신에 남겨진 화약흔의 존재, 국방부 스스로 했던 권총발사시험 등 객관적 증거에 대해선 국방부가 애써 눈을 감고 또다시 자살 결론만 내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태그:#김훈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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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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