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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이웃집 부부가 쌈박질을 하는 바람에 단잠을 못 잤다. 나보다 서너 살 아래인 남자와는 가끔 술도 한잔씩 하는 사이인데 부인과 싸우면 자주는 아니지만 가출(?)도 하는 그런 못난이다. 가출이라고 집을 나와봐야 갈 곳도 마땅치 않아 기껏 내가 일하는 사진관에 와서 놀다가 술이나 한잔 얻어 마시고 가는 그런 못난이다.

밥상을 집어던졌는지 밥주발 깨지는 소리도 들리고 하도 요란스럽게 싸우기에 밖에 나가서 슬쩍 엿들어보니 별 시답잖은 일도 싸움이 되는구나 싶었다. 싸움은 음식물 쓰레기 버려달라는 부인의 말을 거역한 데서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부인의 온갖 불만이 터져나오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별것도 아닌, 절로 웃음이 나오는 그런 소소한 일상에서의 불만이었다.

"형광등 좀 갈아주고 음식물 쓰레기 좀 버려주지! 그걸 가지고 밥상을 둘러엎으며 싸워? 쯧쯧."

일주년이 십주년이 되길.
▲ 팔당댐 담벼락의 낙서. 일주년이 십주년이 되길.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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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아내가 김치항아리 하나만 옮겨달라고 해도 짜증을 내던 사람이 헬스장 가서는 닭 가슴살까지 먹어가며 바벨을 들더라도 더 무거운 것을 못 들어서 안달이다. 김치항아리 드는 것은 일이고 돈 없애가며 헬스클럽에서 무거운 것 드는 것은 운동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골퍼는 자기 돈을 써가며 골프장을 누비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휘파람이 절로 나오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골퍼와 동행하는 캐디는 돈을 벌어가면서 골퍼와 똑같이 걷는데 머리 위의 작열하는 태양도 짜증이 나고 만사가 힘들다. 똑같이 걷는 일이건만 골퍼는 스포츠라는 생각이요, 캐디는 노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타를 배운 지 석 달째가 되어가는데 노래를 한 곡씩 뗄 적마다 참으로 즐겁다. 만약에 내가 먹고살기 위해 기타를 배운다면 기타줄이 손가락 끝을 파고드는 그 고통은 차라리 고문에 해당하는 고통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취미로 하다보니 그 고통마저도 말 못할 그 어떤 카타르시스로 다가오며 즐기는 것이다. 손가락 끝의 고통 끝에 생기는 굳은살이 무슨 훈장이나 되는 듯, 손가락 끝의 굳은살이 기타실력에 비례를 한다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고통을 한순간에 희열로 바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두물머리에서 다정한 부부.
▲ . 두물머리에서 다정한 부부.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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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돈을 쓰느냐 버느냐의 차인데 돈을 쓰는 사람은 즐겁고 돈을 버는 사람은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내 돈 써가며 웃음꽃이 만발한 사람도 그 돈을 쓰기까지는 겪었음직한 과정이다.

다만 쉽게 벌었느냐, 아니면 나처럼 '쌩' 고생을 해가며 어렵게 벌었느냐의 차이는 있겠다. 어찌되었든 똑같이 힘을 쓰고 머리를 쓰는 일이라도 돈을 써가며 하는 일은 재미있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힘들며 고달픈 게 인지상정이지 싶은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누워서 아내에게 '물 떠와라, TV리모컨 가져와라' 하지 말고 가끔은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주고 빈말이라도 "오늘 저녁 김치찌개는 내가 끓일까?" 하고 슬쩍 눈웃음이라도 쳐보자. 그리고 가끔 아내 몰래 장모님께 용돈도 드려보자. 아내 몰래 라고는 하지만 은근슬쩍 아내의 귀에 들어가게끔 해야 한다.

때로는 사랑도 요령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무튼 이렇게 평소 아내에게 쌓아놓는 공덕이야말로 노후연금보험에 가입하는 일보다 더 확실한 노후보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소한 음식물 쓰레기 안 갖다버려서 밥상 엎어가며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태그:#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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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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