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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고곤의 선물>에서  헬렌 담슨(김소희 역)이 필립 담슨(이동준 역)에게 에드워드 담슨(정원중 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극 <고곤의 선물>에서 헬렌 담슨(김소희 역)이 필립 담슨(이동준 역)에게 에드워드 담슨(정원중 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문성식

명동예술극장에서 2월 23일부터 3월 11일까지 피터 쉐퍼의 <고곤의 선물>(극단 실험극장, 구태환 연출)이 공연 중이다. <고곤의 선물>은 <에쿠우스>, <아마데우스>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피터 쉐퍼 말년의 역작으로 천재 극작가(에드워드 담슨)의 죽음과 그의 연극에 대한 치열한 집념을 다룬 작품이다.

연극은 <우상들>, <특권> 등의 극을 남긴 천재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이 마지막 작품 < IRE > 를 쓰던 중 자신의 집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소식으로 시작한다. 에드워드 담슨의 두번째 부인 헬렌 담슨에게 전처의 아들이자 연극교수인 필립 담슨은 에드워드의 전기를 쓰겠다며 편지를 보내오지만, 헬렌은 거절한다. 재차 간청하는 에드워드에게 헬렌은 어떤 상황이라도 전기를 반드시 쓰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에드워드와의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드워드(정원중 역)와 헬렌(김소희 역)의 즐거운 신혼.
에드워드(정원중 역)와 헬렌(김소희 역)의 즐거운 신혼. ⓒ 문성식
대학교수인 헬렌 아버지의 수업을 듣다 불손한 발언을 해서 쫓겨난 천재극작가이자 학생 에드워드. 에드워드는 극본의 클라이맥스 부분만 수십 편 쓸 정도로 아이디어가 많고 성격이 급하다. 우연히 헬렌을 알게 되고 헬렌 아버지의 반대에도 둘은 결혼하여 어려운 경제형편이지만 연극 대본 작업을 하며 행복한 신혼을 시작한다.

헬렌은 에드워드의 대본 작업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행복이었다. 이들의 유일한 대화 수단은 연극 대본이다. 어쩌면 이들의 실제 삶은 연극 속 삶과 함께한다.

초반의 집필 연극들은 성공이었으나 마지막 작품인 < IRE >가 흥행실패가 되고 에드워드는 헬렌과 그리스에 은둔생활을 하며 술과 여자 등으로 삐뚤어진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아이도 가지지 못하고 연극 대본을 제 아이인 양 키워왔던 헬렌은 점차 외로워진다.

이때부터 연극 <고곤의 선물>에는 페르세우스와 아데나의 이야기가 구체화한다. 태양의 신이자 제우스의 아들인 페르세우스는 이 연극에서 에드워드를, 제우스의 후계자이자 전쟁의 신, 지혜의 신인 아데나는 헬렌을 상징한다.

극 중의 극, 에드워드와 헬렌의 정신세계를 표현할 때 등장하는 흰 분가루를 칠한 앙상블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신비하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신성한 고대 신전을 부활시킨다. 

제목 <고곤의 선물>에서 '고곤(Gorgon; 그리스어로 '굳세다'라는 뜻)'은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과 그 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로 이 중 셋째가 머리가 뱀으로 뒤덮인 그 유명한 메두사이다.

본 연극에 등장하는 흰 분가루의 앙상블은 이 '고곤'을 상징한다. 무대는 헬렌의 집 내부모습이 전부이다. 전면의 하얀 큰 테라스 문 다섯 개와 오른쪽 뒤에 있는 에드워드의 작업 데스크, 왼쪽 앞에 놓인 작은 응접 테이블뿐인데도 현재와 과거, 그리스 신전과 거실 사이를 오가며 조명과 음악과 더불어 극의 분위기를 충분히 고조시킨다.

 헬렌이 에드워드에게 증오의 마음을 대본 한 페이지의 편지로 써서 준 장면. 제목에 등장하는 하얀 고곤(Gorgon) 세 자매가 보인다.
헬렌이 에드워드에게 증오의 마음을 대본 한 페이지의 편지로 써서 준 장면. 제목에 등장하는 하얀 고곤(Gorgon) 세 자매가 보인다. ⓒ 문성식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헬렌은 에드워드에게 영감에 차올라 그들만의 대화 방식인 대본 편지를 한 장 써서 에드워드의 책상에 둔다. 그녀는 여신 아데나로서 고곤들과 함께 에드워드를 처참하게 밟아 짓부순다.

"...메마른 자궁... 그대가 그렇게 된 것이 내 탓이란 말인가?" 그녀의 대사에서 오히려 짓밟혀 왔던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남편을 향한 증오를 불태운다.

이 장면에서 헬렌 역의 김소희는 앞의 해맑은 대학생, 다정한 아내의 모습에서 진정 불같이 화가난 전쟁의 여신 아테나 같은 카리스마로 돌변하며 에드워드를 향해 소리친다.

"용서할 수 없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하지만 오히려 복수는 남편 에드워드가 한 수 위인 듯하다. 그는 "나를 씻겨줘,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합시다"라고 애원하며 부인에게 비누 한 개를 건넨다. 헬렌은 비누칠을 하며 점차로 미친 듯이 흥에 겨운 탄력으로 문지르다가 그것이 면도날이 박힌 비누임을 알고 까무러친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목욕 가운을 입은 채 답장의 편지를 헬렌에게 남겨주고, 에드워드는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알몸으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린다.

극 초반 에드워드 역의 정원 중은 연극에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쾌활한 대학생 에드워드 역에서 다소 빠른 대사로 의미전달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였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연극에의 집념을 불태우는 모습으로 빛을 발하였다. 헬렌 역의 김소희는 남편에 대한 애증으로 점철된 모습을 아주 잘 몰입하게 표현하여 전반에 걸쳐 극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연극 <고곤의 선물> 중 헬렌(김소희 역)이 남편 에드워드(정원중 역)를 회상하며 분노에 떨고 있다.
연극 <고곤의 선물> 중 헬렌(김소희 역)이 남편 에드워드(정원중 역)를 회상하며 분노에 떨고 있다. ⓒ 문성식
<고곤의 선물>을 기획, 제작한 극단 실험극장 이한승 대표는 "특히 <고곤의 선물>은 어느 연출, 어느 배우가 하더라도 그 연극성이 변하지 않는 작품이다. <에쿠우스> 등의 명작들을 공연했지만 <고곤의 선물>은 할 때마다 경외감을 갖는다"며 "그동안 정동환, 서이숙 등과 작업하였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새로이 정원중과 김소희와 공연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연극을 진행하게 되어 기쁘다"며 기대를 나타내었다.

예술가의 열정과 치열하고 극단적인 삶을 그려내며 "연극은 죽었다"라는 극 중 대사를 통해 오히려 '연극은 살아있다'라고 부르짖는 피터 쉐퍼의 치밀함과 집념이 전율로 밀려온다. 국내 연극계를 이끌어온 실험극장이 자부심으로 그동안 2008년 2009년 앙코르 공연 등 이번 2012년까지 3회에 걸쳐 공연한 이유가 잘 전달된다.

연극 <고곤의 선물>(구태환 연출)은 명동예술극장에서 3월 11일까지 공연된다.

 연극 <고곤의 선물> 에드워드 담슨(정원중 역)의 죽음 장면. 그는 피묻은 몸으로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린다.
연극 <고곤의 선물> 에드워드 담슨(정원중 역)의 죽음 장면. 그는 피묻은 몸으로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린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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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곤의 선물#김소희#정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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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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