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생 앞에서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오른쪽 문성준씨)
 학생 앞에서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오른쪽 문성준씨)
ⓒ 문성준 제공

관련사진보기


2011년 최고 화두는 단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시장 모퉁이의 한 젊은이의 분신으로 시작된 아랍의 민주화가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또한,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도 SNS와 스마트폰이었다. 이런 SNS와 스마트폰의 등장은 지금까지 일부 계층이 독점해온 '정보'를 누구나 생산·유통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정보 민주화'라고 불러도 좋을 듯싶다.

이런 정보의 흐름은 그동안 정보 소외 계층으로 남아야 했던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조그만 희망을 던져 줬다. 지금까지 시각장애인들은 IT 관련이나 새로운 매체에 대해 언제나 한걸음 뒤처졌던 게 사실이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도 같았다. 새로운 매체나 기술은 그 처리 방법에서 시각 이미지 처리를 위주로 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접근이 어려웠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기는 개발 시기보다 언제나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겨우 정보에 접근하면 이미 다른 시스템이 대두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SNS와 스마트폰은 정보의 동시성면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때문에 정보 소외계층이었던 시각장애인의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각장애인 자체의 움직임도 매우 활발하다. 스마트폰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먼저 사용한 유저들이 동호회를 개설해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여러 시각장애인 단체나 기관에서 스마트폰과 SNS 강의를 개설하기도 한다(관련기사 :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나폰수에 물어봐).

동시대를 공유했으면...

수업시간에 강의하는 문성준씨
 수업시간에 강의하는 문성준씨
ⓒ 문성준 제공

관련사진보기



최근 가장 널리 쓰이는 SNS의 하나인 페이스북 강의를 만들어 시각장애인 통신망에 소개한 문성준(45)씨도 그 중 한 사람. 현재 대전 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한 문씨는 얼마전 총 6회 분량으로 페이스북 강의를 만들어 시각장애인에게 배포했다.

자신도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1급 시각장애인인 문씨는 시각장애인계에서는 대표적 IT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SNS 강의를 개설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음성이 탑재된 스마트폰의 등장과 스크린리더(컴퓨터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 시각장애인들도 SNS 접근이 가능하게 됐죠. 그동안 나왔던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등은 웹 접근성 면에서 사실 시각장애인들이 접근하기가 다소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모바일 버전의 SNS, 사이트는 구조가 간단하고 단순해서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스크린리더로도 충분히 접근할 수가 있지요. 이미지 위주의 인터페이스 기반의 윈도우가 대세가 된 이후 시각장애인들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도 아주 적은량의 정보만을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SNS는 정보의 공유라는 점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들이 동시성을 가지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기회를 맞아 보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SNS를 통해 좀더 넓은 세계와 교류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강의 녹음 파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문씨는 단순한 강의 파일만 만든 게 아니다. 자신의 강의를 듣고 실제 SNS의 세계에 동참한 다른 시각장애인들이 도중에 궁금한 것 등을 물어오면 SNS와 전화, 이메일 등을 통해 가르쳐 주기도 한다. 문씨가 이렇게 SNS 전도사로 나선 것은 그의 컴퓨터 사용 경력과도 관계가 깊다. 그의 컴퓨터 사용 경력은 바로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컴퓨터 역사다.

"저는 89학번입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갈 때 타자기 한 대를 준비했었죠. 시험을 치르거나레포트 등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타자기였습니다. 타자기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후 알고 지낸 선배님으로부터 컴퓨터를 사용하면 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모님을 졸라 당시엔 거금을 들여 XT급 컴퓨터를 구입했죠. 저와 컴퓨터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땐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여서 같은 학과 비장애인 친구들이 구경을 하러 오기도 했었죠."

문씨의 회상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래서 음성 합성기란 특수한 장치를 달아야 했다. 당시엔 한글을 지원하는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 제품의 키판을 비밀리에 복제하는 곳이 세운상가 등에 있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곳을 찾기 위해 세운상가를 다 뒤져서 끝내 컴퓨터에 해적판 음성 합성기를 달 수 있었다. 이렇게 컴퓨터를 시작한 문씨는 이후 컴퓨터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경험한다. 1990년대 우리 사회를 강타한 PC통신을 통해서다.

"처음 <한국경제신문>에서 제공하는 '케텔'이란 PC통신을 통해 소설 등을 다운받으며 PC통신을 접하게 됐죠. 이후 천리안 등에서 활동하며 장애인 동호회 등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의 운영체제도 그렇고 PC통신의 환경도 텍스트 기반체제여서 시각장애인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비장애인과 동시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기였죠. 정보의 동시성 면에서는 전성기라고 해도 좋을 시기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울리고 웃긴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 애플 누리집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문씨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윈도우의 등장 때문이었다. 처음 윈도우가 등장했을 때, 그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운영체제가 WINDOWS로 완전히 넘어가기 시작한 WINDOWS98부터는 컴퓨터의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채택한 GUI(Graphical User Interface) 방식이 윈도우에서도 사용됐기 때문이다. 아이콘과 마우스를 이용하는 새로운 환경은 시각장애인인 문씨로선 전혀 적응할 수 없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당시 윈도우 운영체제에 대응이 가능한 스크린리더가 출시되기도 했으나 국내에는 아직 그런 소프트웨어가 없었다.

"3~4년 정도 컴퓨터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7살된 딸아이는 컴퓨터를 모르고서도 마우스로 이것저것 잘도 했는데, 저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소리눈'이란 이름의 스크린리더가 처음 출시됐다. 이를 계기로 시각장애인도 윈도우 환경의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제품이 국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하고 있다. 또 한국정보화진흥원 등에서 매년 이런 정보기기를 보급하고 있어 고가인 제품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들이 사용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 수많은 시각장애인은 과거 천리안이나 하이텔 등의 PC통신 서비스 방식인 '텔넷 서비스'를 이용한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과거 방식을 고수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운영하는 넓은마을과 몇 곳의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통신망들은 기존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 수준을 고려해 텔넷방식과 웹 방식을 함께 지원하는 데이터베이스 형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적(?)인 텔넷과 웹의 연동 데이터베이스를 고안한 사람이 바로 문씨다.

국산 스크린 리더인 '센스리더 프로페셔널'. 이 프로그램을 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플래시나 배너 등 이미지 위주의 웹 서비스는 읽어낼 수 없기 때문.
 국산 스크린 리더인 '센스리더 프로페셔널'. 이 프로그램을 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플래시나 배너 등 이미지 위주의 웹 서비스는 읽어낼 수 없기 때문.
ⓒ 엑스비전테크놀로지 누리집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2001년 윈도우 환경이 자리를 잡으면서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때 제가 근무하는 대전맹학교의 시스템에 텔넷과 웹이 연동되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런 시스템이 구축됐습니다. 시각장애인 학생과 비장애 선생님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 연동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뤄졌죠. 학생도 선생님도 모두 열광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이후 2003년에 학교 교직원 업무처리가 이 시스템을 통해 이뤄졌고 이후 시각장애인 통신망인 넓은 마을이나 국립특수교육원의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구성됐습니다."

웹 방식의 인터넷 환경은 시각장애인들이 새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우선 접근성에 문제가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스크린리더는 화면의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웹을 디자인하면서 그래픽 위주로 처리를 하거나 플래시, 배너 등 그래픽 요소가 강한 형태로 디자인하면 스크린리더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W3C(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에서는 웹접근성에 관한 국제 표준을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형 웹 접근성 표준 지침'이 만들어졌다.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발효됨에 따라 2008년부터 정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시작으로 2013년 4월 11일까지는 일정 규모 이상의 포털까지 이를 준수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별로 없다.

또 이런 표준을 지킨 누리집이라고 하더라도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웹 구성에 따라서 어떤 메뉴를 선택했더라도 이어지는 화면의 변화 내용을 알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시각장애인들은 웹 방식의 블로그 등 새로운 커뮤니티 방식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SNS는 모바일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을 위한 별도의 단순한 누리집이 존재하고 모바일기기에서도 (애플사의 아이폰의 경우) 보이스 오버라는 음성 출력을 지원하는 기술을 채택함으로써 시각장애인도 새로운 커뮤니티 방식에 접근이 가능하게 됐다. GUI 환경을 처음 시도해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안겨 줬던 애플의 전 CEO 고 스티브 잡스가 반대로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셈이다.

"국가가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곤란하다"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왼쪽 문성준씨).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왼쪽 문성준씨).
ⓒ 문성준 제공

관련사진보기


"시각장애인이 급변하는 환경을 그저 뒷짐만 지고 구경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조금 거칠더라도 악을 쓰면서까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소외되고 차별받는 우리들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회가 국가가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2008년 웹접근성에 관한 사항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돼 시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국가 기관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웹 접근성을 강화하도록 누리집을 수정했지만, 지금까지도 웹 접근성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사용자인 시각장애인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자가 시각장애인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디자인 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좀더 항의하고 요구한다면 현재보다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겠지요. 물론 그 전에 사회나 국가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문씨가 이번에 페이스북 강의를 만들어 시각장애인에게 배포한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를 시각장애인들도 공유하고 고민함으로써 동시대를 더불어 살아가고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 말이다.


태그:#SNS, #페이스북, #스마트폰, #시각장애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