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봄이 온다지만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여전히 추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선지 김이 풀풀 나는 음식이 여전히 맛이 있다. 특히 국수는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더더욱 반가운 음식인 터, 부글부글 물이 끓으면 솥에다 허연 국수 면을 집어넣고, 잘 삶긴 면발 위로 슬슬 끓여낸 육수를 붓고, 마지막으로 계란지단과 채 썰어 볶은 호박 그리고 깨소금을 듬뿍 올려 먹는 그 맛은 눈과 입이 즐거운 간편한 한 끼 식사임이 분명하다.
베트남 쌀국수, 이태리 스파게티 등등 이런저런 국수 음식들은 이제 세계화 산물이 되었다. 최근에 읽고 있는 크리스토프 나이트하르트가 쓴 <누들> 역시도 국수의 그 같은 점을 이야기한다.
접시 위의 정체성, 어린이 음식 컴포트푸드, 고기와 밀, 유럽의 국수문화, 아시아의 국수 화 등의 다양한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4천 년에 걸쳐 이어진 세계화 음식인 국수에 대해 쉽고도 편하게 이야기한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히 즐기는 식품이 되어 이제는 비행기 기내식으로도 맛볼 있는 국수는 수 천 년 전에 근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에 이르렀다고 추측되고 있다.
이러한 국수의 전파 경로는 음식이 가진 문화적 역량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며, 특히나 동아시아에서 국수는 이탈리아 파스타보다 더 일찍 더 깊이 문화 침투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편으로 국수는 먹는 것 이상으로 다층적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국수가 멋들어지게 표현된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를 보면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영화 속 시간인 홍콩의 1960년대는 2차 대전 후에 최고의 현대화가 도래한 시기로서, 국수는 그런 바쁜 도시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패스트푸드의 기능을 했다.
영화에서 장만옥은 퇴근 후 대충 때울 저녁거리인 국수를 사러 매일 시장통으로 내려간다. 멋들어진 치파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그대로 좁고 어둠침침한 계단을 내려가서 복잡한 시장통에서 사 온 국수를 간단히 먹고, 외로움과 더불어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그녀가 즐기는 국수는 어느덧 양조위와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현대화와 서구의 물결이 급속도로 파고드는 그 시절의 바쁘고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뚫고, 국수는 하나의 방점을 찍는 이미지로 영화 속에 부드럽게 버무려진 셈이다.
누구에게나 친근한 음식 국수지만 그 여세가 만만치가 않다. 라면과 더불어 현대인에게 익숙한 패스트푸드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려서 세계화 음식으로 등극한 것이다. 더욱이 베트남 쌀국수인 포가 오늘날 이 나라를 상징하는 음식이 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은 근래에 만들어진 퓨전식이란 점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인들이 오래전부터 국수를 먹긴 했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통해 소고기를 먹게 되면서 지금의 베트남 쌀국수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점을 잘 말해준다. 음식이란 것이 반드시 정통만을 고집해서 세계화의 산물이 되는 것만은 아님을 이를 통해 알게 된다.
우리에게도 국수는 매우 각별한 음식이다. 결혼식에 먹는 국수, 열차가 막 떠나려 할 때 화다닥 내려서 한 그릇 먹는 우동 등 이럴 때 국수가 딱 제격이다.
세계화를 위한 한식 메뉴에 국수를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국수는 적당히 패스트푸드의 느낌도 들고 있고, 색색 가지 고명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음식스토리텔링으로 치자면 혼인날 먹는 국수, 한국전쟁 당시에 피난 지 부산에서는 국수 면을 말리느라 줄줄이 걸어놓은 것 등으로 한국 현대사까지 조망할 수 있다.
더욱이 오방색으로 장식한 비빔밥은 너무 과하게 의미를 부여한 느낌이다. 또한, 일상과 거리가 먼 신선로는 한식 대표라 하기엔 다소 거리가 먼 것 같다. 적어도 마카로니 잔뜩 넣고 크림소스 버무린 떡볶이로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는 억지 주장보다는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레 어우러진 국수의 세계화는 어떨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