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체 심플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보니 꽤 단조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평일은 그저 쌍둥이의 얼굴 마냥 똑같은 나날의 연속이고 주말이라 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대다수 사람들이 주말이면 시내에 몰려가서 외식을 하거나 하다못해 윈도우 쇼핑이라도 즐기건만, 그 마저도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여기는 탓에 일상의 변화 같은 건 그다지 없는 편이다.
게다가 짬을 내서 시내에 간다고 한들 백화점 1층 음식 코너에 가는 것이 전부일뿐더러, 거기 가는 이유조차도 단돈 2천 원 짜리 커피 맛이 제법 내입에 잘 맞는다는 것과 조명 시설이 잘돼 있어 눈 아프지 않게 책 읽고 글 쓸 수 있단 이유뿐이니, 백화점이란 곳은 적어도 내겐 수 백 가지 물건으로 사람의 눈을 현혹해서 소비를 하게 만드는 장소는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내가 백화점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도 포함돼 있다. 뭔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소녀들의 모습을 구경한다거나, 소비의 미덕에 빠진 여성들이 세일 상품이 동날 새라 눈에 불을 켜고 물건을 쓸어 담는 것을 보면 퍽이나 재미가 있다. 그 가운데 백화점을 제 집 드나들듯 하는 주부도 여럿 보았고, 나이가 육십 중반임에도 이십대 초반 아가씨나 입을 법한 알록달록한 색상의 봉긋한 퍼프소매 원피스를 사 입으며 '더 늙기 전에 이런 걸 많이 입어놔야 한다' 외치는 장년 여성도 보았다.
물론 나 역시도 백화점 탐방에 매우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건 쇼핑 목적이 아니라 물건을 보는 시간 동안 모든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이유여서, 최소 일주일에 세 번은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습관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단 말이다.
대개의 백화점은 지하에 식당가, 1층은 간단한 잡화와 명품매장, 2층 여성복(이곳엔 특별히 여성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테이블과 명품 소개 잡지도 비치돼 있다), 3층 신사복....그리고 꼭대기 층에는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게 대다수 백화점의 점포 배치 방식이다. 그리고 그곳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그저 바라봐주길 원하는 물건과 그저 떠받들어주는 종업원과 다소 경계 적이지만 그것조차 고가품의 특별한 매리트인 양 느껴지는 명품관은 그 정점에서 고객을 향해 찬연히 웃는다. 게다가 그 안에 들어선 모든 생물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게끔 이끄는, 창문도 시계도 갖춰놓지 않은 백화점 건축 구조는 시간을 잊은 채 그 엄청난 미로를 헤매게 하는 데는 실로 성공적 결과를 만들었다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틈에 그런 일률적인 백화점 탐방에 염증이 돋기 시작했고, 그 번잡함을 뚫고 '백화점의 작업실화'란 명제가 자연스레 일상에 들어오게 된 바, 서점에서 책을 몇 권 사와선 커피와 더불어 읽어대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조경란의 '백화점'같은 것도 그렇게 읽은 책 중 하나다.
백화점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개인적 소회를 다룬 이 책은 표지에서 내세운 광고 문구에 꼭 맞는 내용을 담진 않았다. 그저 백화점이란 공간과 작가의 개인사를 이리저리 엮어보려 한 듯, 마흔 중반의 독신 작가가 혼자서 백화점에 가는 동안, 혹은 가서 느끼는 자잘한 상념들을 다소 번잡하게 다루면서 백화점이란 시끌벅적한 공간에 대해 소개하는 형식을 취한다.
작가는 백화점을 매우 숭배하고 사랑하는 듯하다. 근 몇 주를 꼼짝없이 자신의 옥탑방에서 소설과 씨름하다가 하루를 잡아서 도서관에 들러 잡지들을 죽 훑어내고, 그에 대한 포상으로 스스로에게 '윈도우 쇼핑'이라는 상을 주러 백화점 행을 허락한다는 그녀는 가난한 소설가로서 꿈도 꾸지 못할 물건이 가득 찬 명품관 앞에서는 잠시 서성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구두코의 먼지를 손수건으로 훔쳐내곤 용기 내어 안으로 들어서 보건만, 종업원들의 말 한마디에도 노심초사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한탄하는 구절도 여지없이 들어있다.
그 점에서 보자면 제법 과감한 나는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세수도 않은 채 질끈 묶은 머리로 백화점에 간 적도 많다. 그런 날이면 백화점 여러 곳에서 남몰래 고객을 감시하던 경호원들이 일순간 당황하며 따라다니지만 내 상관할 바는 아니다.
더욱이 유능하고 경력이 많은 명품관 매니저들은 그런 고객이 더 미스테리하단 걸 알고 있기도 하다. 당당히 들어서선 똑 부러지게 물건에 대해 질문하고 제법 물건 보는 안목도 갖춘 듯한 이런 손님 중에 알짜 고객이 있다는 것을 알곤, 오히려 더욱 극진한 대접을 해 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아무것도 안사고 나간다 해도 그녀들은 자신의 개인 명함을 챙겨주며 신상품 입고 날짜에 연락 주겠노라 홍보를 해대기까지 하니, 명품관의 진짜 주인공은 손님이란 것을 가르치게 된 듯해 뿌듯함이 밀려오곤 한다.
그 에세이 속의 작가는 좋은 물건을 사지는 못하더라도 눈을 호사시키고 좋은 물건이 주는 감동을 즐기기 위해서 백화점에 간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내겐 백화점이 그저 동네 약국이나 마트의 대용 공간일 뿐이다. 가까운 곳에선 팔지 않는 침대 소독 시트 같은 것도 그곳엔 있고, 조용히 내 작업 할 수 있는 백화점 식당의 넓은 테이블에 앉으면 기쁨이 밀려온다. 게다가 그렇게 여유로워진 마음에 수많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꽤나 중독성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백화점이란 무엇일까? 가족들을 다 내보낸 주부가 오후 시간에 할 일이 없어 어슬렁거리는 공간? 혹은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 압축돼 있기에 반드시 소비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듯이 여겨지는 공간? 나는 이곳에서 대다수 사람과 역행하며 관찰하고 사유하며 나의 글감을 사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