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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대표적 글쟁이 6명(고은태·박권일·이택광·진중권·한윤형·허지웅)이 오마이뉴스의 팀블로그 '리트머스' (http://blog.ohmynews.com/litmus)로 뭉쳤습니다.

리트머스는 SNS에서의 단편적인 말싸움이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상식'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이번 주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기소청탁' 사건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꼼꼼히 들여다본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리트머스의 첫 글을 썼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2011년 10월 26일 밤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새누리당 나경원 전 의원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선거개표 상황실로 들어서고 있다.
 2011년 10월 26일 밤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새누리당 나경원 전 의원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선거개표 상황실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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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위대 행사가 아니라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관련 소송이었다.
(2) 그 소송은 자신이 맡지 않았으며 판결 역시 다른 판사의 것이다.
(3) 따라서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유포로 어차피 기소될 사안이었다.
(4) 기소가 이루어질 시점에 김재호 판사는 미국에 있었다.
(5) 사건이 서부지원에 할당된 것은 피의자의 주소지에 따른 것이다.

의원의 기자회견

기자회견에서 나경원 전의원이 해명한 내용이다. (1)과 (2)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리라. (3)과 (5)는 다소 논란의 여지를 남기나 대체로 무난하다. 문제는 (4)이다. 문제의 청탁은 기소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루어졌으며, 그 시점에 김재호 판사는 아직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이 사건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김재호 판사가 이 일로 박은정 검사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는가?'

나경원 의원은 이 물음에 끝내 답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그저 "청탁은 없었다."고 세 번 반복했을 뿐이다. 이것으로 보아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검사와 전화, 혹은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을 한 것은 (나 의원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나경원 의원은 다만 그것을 '청탁'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나경원 의원이 끝내 부인하지 못한 그 접촉의 성격을 따져 봐야 한다.

나경원 의원은 그것이 '청탁'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재호 판사가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단순히 언제 기소가 되는지 '문의' 한 것일 수도 있고, 기소를 서둘러 달라고 '재촉'한 것일 수도 있고, 아예 반드시 기소를 해달라고 '청탁'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그 접촉이 적어도 박은정 검사에게는 부담스러운 '청탁'으로 받아들여졌음에 틀림없다.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법원 관계자를 통해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검사에게 전화를 하여 기소를 '재촉'한 것을 확인했다고 하나, 아직 다른 언론의 보도는 없다. http://goo.gl/HVGck)

김재호 판사가 전화를 한 게 사실이라면, 그 발언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 없이 판사로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이다. 판사가 자신의 부인이 관련된 사안에 관해 검사와 통화할 이유는 '청탁' 혹은 '압력' 이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화가 있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다소 사실과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적어도 여기까지는 나꼼수의 폭로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 물론 그 이상은 아직 픽션에 가깝다.

검사의 침묵

일부 매체와 SNS에서는 박은정 검사의 "양심선언"이라 표현했지만, 나꼼수 방송 이후 박은정 검사가 보인 모습은 일반적인 양심선언자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양심선언을 하는 이들이 기자회견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자신의 폭로를 널리 알리려 하는 데에 반해, 박은정 검사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내려놓고 언론과의 모든 접촉을 끊은 채 "이것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개인적으로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했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박은정 검사가 출산 휴가를 떠난 이후 기소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사건을 이어 받은 최영운 검사는 "나경원 전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탁받았을 수는 있지만,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란 바로 옆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자신도 비슷한 청탁을 받았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연합뉴스>, 최영운 검사, "나경원으로부터는 청탁 없었다." http://goo.gl/k1gNa)

그가 말한 "다른 사람", "바로 옆의 사람"이 누구일까? 박 검사를 지목하는 시각도 있다. "박 검사가 (...) 사건을 넘기는 과정에서 최 검사에게 자신이 받은 '청탁'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남는다." (<프레시안> 궁지 몰린 나경원, 총선 공천 '빨간불' http://goo.gl/QHLtR ) 하지만 같은 기사에서 최검사는 "여러 사건을 통째로 재배당 받았는데 그 사건만 찍어서 '잘 해달라'고 했겠느냐."며 박 검사로부터 "청탁을 전달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기소 자체는 청탁의 결과로 보이진 않는다. 그 네티즌이 올린 글이 허위임이 분명한 이상, 고소가 있는 한 기소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재호 판사가 사건을 서부지원에 할당 받게 했다는 의혹도 근거가 박약하다. 그것은 피고인의 주소지만 확인하면 될 문제다. 7백만 원 벌금형은 유사사례와 비교해 볼 때 특별히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1, 2심은 몰라도 대법원 판결에까지 김재호 판사가 힘을 썼다고 믿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검사에게 '청탁'을 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한 기소와 처벌이 청탁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박은정 검사가 "양심선언"이라는 일부의 성격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리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박검사는 그저 자신의 침묵으로 인해 주진우 기자가 허위사실유포로 처벌받는 것을 막으려 했을 뿐, 이 사건을 확대시킬 필요는 없다고 봤을 것이다.

꼼수의 폭로

박은정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검사.
 박은정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검사.
ⓒ 법무부 블로그 moj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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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인 백혜련씨에 따르면, 박검사가 "이 사건에 대해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그녀는 이번 폭로가 "나꼼수 쪽과 어떤 논의 하에 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본인이 외부와의 접촉을 끊어놓은 상태에서 백혜련씨의 인터뷰가 이 사안에 대해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다. 그녀가 박은정 검사의 심경을 정확히 전달한 것이라면, 이번 나꼼수의 폭로로 인해 박은정 검사는 본의 아니게 '아웃팅' 당한 셈이다.

검찰에서 확인해주기를 거부하나, "박은정 검사가 검찰 측에 김재호 판사로부터 청탁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보고했다."는 나꼼수의 주장은 사실로 보인다. 그게 사실이라면, 전화가 있었다는 박은정 검사의 증언만으로도 검찰이 나꼼수를 허위사실유포로 기소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남은 물음은, 이미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어 가는 마당에 굳이 박은정 검사와의 "논의" 없이 굳이 그 사실을 폭로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나꼼수에서는 박은정 검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즉 '박 검사는 청탁전화를 받은 사실(과 이를 나꼼수에 알려준 사실)을 검찰청에 보고함으로써 이미 조직생활 하기 힘들어졌으므로, 차라리 이 사실을 널리 공개함으로써 시민의 힘으로 그를 지켜줘야 한다.'는 판단이다. 과연 이 판단이 적절했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따를 것이다. 적어도 그런 치명적 판단은 나꼼수가 아니라 박은정 검사의 몫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백혜련씨에 따르면, "지난달 이미 인사철이 끝났기 때문에 당장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이번 일로 (박검사가) 검사 생활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여기서 '이번 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것은 (1) 기소청탁의 사실을 나꼼수에 흘린 것을 검찰청에 알린 것일 수도 있고, (2) 그렇게 조용히 처리하려 했던 일을 나꼼수가 공개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박 검사는 사표를 냈다.

(1) 때문에 검사생활이 힘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검찰에서는 "기소청탁 진술을 했다고 누구에게 말했다 해도 사적 행위에 불과해 감찰 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며, "박 검사에게 책임을 물을 사유가 없어 사직서를 반려하기로 했다."고 밝혔기 때문이 이다. 굳이 알려고 했다면 검찰에서는 사건이 터진 작년에 이미 누가 제보자인지 알아냈을 게다. 청탁은 당연히 담당 검사들이 받았을 테니. 하지만 박검사는 2월말 인사에서 이익을 받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2)가 사퇴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이런 가운데 나꼼수가 '박 검사가 기소 청탁은 받았다고 양심선언을 했다'고 밝히자 현직 검사로서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노컷뉴스>, 박은정 검사, 사직서 내고 휴가 떠나 http://goo.gl/CMJcf )

건조한 시나리오

나꼼수 버전에 따르면, 이 사건은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과 판결청탁으로 무고한 네티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벌을 받은 사건일 것이다. 팬덤 일각에서는 나꼼수에서 박은정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박 검사와 사전교감에 따른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쓰는 모양이다. 즉 실명을 공개하기로 서로 합의했지만, 검찰 내에서 박 검사의 처지를 고려하여 그 사실을 드러낼 수 없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이야말로 나꼼수의 매력이자 한계다.

나꼼수의 폭로 중에서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은 하나, 김판사가 박검사에게 전화로 기소 청탁을 했다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거나, 근거 박약한 추측에 불과하다. 문제는 선악이 뚜렷한 권선징악의 영웅담에 익숙한 구술매체의 대중은 이렇게 구멍 난 스토리에는 전혀 만족을 못한다는 데에 있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미 드러난 사실에 근거하여 되도록 비약을 자제하며 아주 건조하게 대응 시나리오를 써 보자.

박은정 검사가 사석에서 주진우 기자에게 김판사로부터 청탁 전화를 받은 사실을 얘기한다. 박 검사는 주기자가 이 사실을 폭로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사실의 폭로를 적극적으로 원하거나, 폭로해도 괜찮다고 소극적으로 방임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자기 실명이 드러나는 것만은 원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설사 나꼼수에서 그 사실을 폭로한다 해도 자신은 "검찰 관계자"나 "법원 관계자" 등 익명의 제보자로 남기를 원했을 것이다.

문제는 나경원 후보 측에서 나꼼수를 고발했다는 데에 있었다. 사실 이것은 예상하기 힘든 대응이었다. 실제로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있는 이상, 상식적으로 고소를 할 경우 무고로 걸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는 선거 막바지였고, 일단은 의혹에 불을 끄는 게 중요했다. 게다가 이 고발의 주체는 나경원이 아니라 선대위, 즉 그의 보좌관이다. 한 마디로 나경원이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로써 공은 자동으로 법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제 주기자는 발설자를 밝히지 않는 한 허위사실유포로 처벌 받을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박은정 검사는 이 모든 일이 결국 자신의 발설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거기에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사건을 담당하는 검찰청에 스스로 기소 청탁 받은 사실을 보고하게 된 것이다. 그로써 주 기자에 대한 고발 건은 깨끗이 해결된 셈이다. 박 검사가 원한 것은 딱 여기까지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 사실을 사회적으로 폭로할 의사는 없었다.

목적이 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나꼼수는 왜 제보자의 실명까지 드러내며 이 사실을 폭로했을까? 여기에 대한 나꼼수의 해명은 '이미 검사 생활하기 힘들어졌으니 차라리 공개하여 검찰에 사회적 압력을 가하여 박 검사를 돕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 대화는 감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사표를 반려한 대검의 쿨한 태도나, 이 사실을 사회적으로 공개하기를 꺼리며 끝까지 익명으로 남으려 했던 박 검사의 태도를 볼 때, 그 판단은 매우 아스트랄하게 들린다.

나꼼수와 박검사가 서로 짜고 일을 벌였다는 가정은 그냥 웃어 넘기자. 실제로 벌어진 일은 일반적인 '양심선언'의 경우와는 양상이 너무 달랐다. 일반적인 양심선언의 경우, 내부 고발자가 먼저 폭로를 하고, 언론에서 이를 받아 보도를 한다. 기관에서 그에게 부당한 조치를 취하면, 고발자는 복권을 위해 법적 투쟁을 선언하고, 사회적 지원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언론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았던가.

팩션으로서 세계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멤버인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주진우 <시사인> 기자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멤버인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주진우 <시사인> 기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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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역시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검사에게 그 사건에 관련해 전화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나꼼수의 폭로는 사실로 보인다. 법원에서는 신속히 조사해 공적으로 사실여부를 확인해줘야 한다.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질 경우, 김재호 판사는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징계를 받아야 하고, 나경원 의원은 거짓말과 함께 나꼼수를 무고까지 한 데에 대해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검찰에서는 이 일로 박 검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매체에 흘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나, '기소청탁'의 사실은 흘려서는 안 될 '직무상 취득한 정보'라기보다는 공익을 위해 당연히 '폭로해야 할 비리'에 속한다. 더군다나 검찰 조직의 독립성을 위해서라도 '연수원 선배들'로부터 들어오는 유무형의 간섭과 그로 인한 유착은 막아야 할 것이다. 박검사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한편, '굳이 이 사건을 폭로했어야 하냐'는 물음엔 가치관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 (1) 판사가 자신의 부인에 관해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스캔들이다. 사법정의를 이는 공익적 관점에서 충분히 폭로할 가치가 있으나, (2) 인사 불이익을 당한 것도 아닌데 미리 사건을 공개함으로써 취재원을 난처한 처지로 몰아넣을 필요가 있었는지는 한번 따져볼 만한 일이다. 당신은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일부 언론에서는 박은정 검사의 허락도 없이 성급하게 이 사건을 "양심선언"으로 규정했다. 물론 백혜련 전 검사의 말대로, 박 검사의 성품상 꼭 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기꺼이 양심선언을 했을 분이지만, 그것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 그 성급한 규정이 혹시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은 욕망의 산물이 아니었는지 살필 일이다. 언론의 임무는 권선징악의 소설을 쓰는 데에 있지 않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라 일련의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실'에는 늘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다. 그러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기란 어렵다. 그럴 때에 세상을 명확히 선악(아군과 적군)으로 갈라주고, 구멍 난 사실들의 틈을 허구로 메워 전체상을 보여주는 매체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아마 나꼼수라는 매체가 가진 매력이자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어떤가?

아군은 내 생각만큼 착하지 않고, 적군은 내 상상만큼 악하지 않다. 현실은 매끄럽게 이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여기저기 구멍이 난 파편적 보도다. 팩션으로 전달되는 폭로 중에서 '사실'은 보도로 믿고, '허구'는 오락으로 즐길 일.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팩션'을 통째로 사실로 받아들이라 강요할 필요는 없다. 폭로의 과잉이 주는 스트레스 못지않게 피곤한 것이 바로 사실과 허구의 지위가 뒤바뀐 이상한 나라의 주민으로 사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 사회의 대표적 글쟁이 6명(고은태·박권일·이택광·진중권·한윤형·허지웅)이 오마이뉴스의 팀블로그 '리트머스'로 뭉쳤습니다. 리트머스는 SNS에서의 단편적인 말싸움이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상식'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태그:#나경원,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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