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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향  비닐 우산을 들고 봄비가 내리는 종로 거리를 걷고 있는 가수 금사향, 팬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 금사향 비닐 우산을 들고 봄비가 내리는 종로 거리를 걷고 있는 가수 금사향, 팬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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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입을 뗀다는 경칩 전날(3월 4일), 인사동에도 촉촉하게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국내외 관광객들로 일요일 오후의 인사동 거리는 북적거린다. 사람들은 하나둘 우산을 받쳐들고 비를 피한다. 인사동 입구 상설무대에서는 봄비와 관계없이 풍물 놀이가 신명나게 펼쳐지고 있다.

종로 1가 쪽에서 인파속에 묻힌 허리굽은 합머니가 비닐 우산을 받쳐들고 걸어온다. 한복이 땅에 닿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오더니 굽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사람들을 향해 활짝 웃는다.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할머니를 바라보더니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닟익은 얼굴. 원로 가수 금사향(85) 씨였다.

85세의 노구를 이끌고 봄비를 맞으면서 봄나들이라도 나선 것일까. 잠시 허리를 폈다가 또 조심조심 걸어 인사동 입구 건널목 앞에 선다. 신호등 때문이다. 약속 장소가 탑골공원 뒤 국민은행 앞이라고 한다. "안녕하세요"라며 기자가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 돌아보더니 금세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세월을 잊은 듯한 얼굴이다.

파란 신호등이 들어오자 한쪽 손에 지팡이를 들고, 또 한쪽 손에 비닐 우산을 들고, 곱게 차려 입은 한복 치마가 땅에 닫지 않도록 조심조심 걷는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밝은 표정으로 괜찮단다. 걷는 것이 힘겨워 보인다.  

금사향  탑골공원 앞을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금사향, 탑골공원 뒤 국민은행 앞에서 원로가수 김광남 씨를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 금사향 탑골공원 앞을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금사향, 탑골공원 뒤 국민은행 앞에서 원로가수 김광남 씨를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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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향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 가수 금사향도 세월은 비켜가지 못했다.
▲ 금사향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 가수 금사향도 세월은 비켜가지 못했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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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가수들이 모여 추억만들기 하면서 살아요. 추억은 아름답잖아요. 오늘은 김광남씨를 만나기로 했는데 빨리 가야 하는데,  모임에 가면 여자 중 내가 제일 꼭대기야요. 나는 큰 전쟁을 겪었어요. 한국전쟁하고 월남전쟁하고. 월남전에서는 채 장군도 만났어요."

반세기가 넘게 흘러간 전쟁을 마치 엊그제 사건인듯 이야기한다.

"노래하신지 얼마나 되셨지요?"
"64년이예요. 한길로만 걸어 왔어요. 저는 노래밖에 몰라요."

외길로만 걸어 왔음을 특별히 강조한다. 탑골공원 파출소 앞을 지나 긴 담을 따라 걷는다. 걷기가 힘이 든 듯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허리를 편다. 노년의 남자가 다가오더니 반갑게 인사한다. 금사향의 열열한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가죽피리가 제일 오래가요. 돈은 누가 가져가면 그만이지만 가죽피리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잖아요."

가죽피리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기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눈치를 채고 쓸쓸하게 웃었다. 뼈가 있는 소리같아 가슴이 아프게 전해 온다. 

탑골공원 긴 담을 끼고 돌자 금사향씨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약속 시각이 지난 듯했다. 부지런히 걷다가도 간간이 허리를 세운다. 평소 아픈 허리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표정은 여전히 밝고 명랑하다. 팬들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부자 되세요"라며 같은 인사를 반복한다. 봄비는 옷이 젖지 않을 만큼 조금씩 내렸다.

"아픈 곳이 없으세요?'
"허리가 아프지만 안 아픈 척하고 사는 거예요."
"병원에는 안 다니세요?"
"지금은 병원에 안 가요."

85세의 노구의 몸으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하니 아직은 강건하신 모양이다. 긍정적으로 살면 행복해진다며 길에서 만나는 팬들에게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금사향 씨를 향해 사람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금사향  가수 김광남 씨가 금사향 씨의 우산을 받쳐들고 정답게 나란히 걷고 있다.
▲ 금사향 가수 김광남 씨가 금사향 씨의 우산을 받쳐들고 정답게 나란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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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향  김광남 씨에 이어 무대에 오른 금사향 씨가 '홍콩 아가씨'를 부른 후 태극기를 흔들며 '님계신 전선'을 부르고 있다.
▲ 금사향 김광남 씨에 이어 무대에 오른 금사향 씨가 '홍콩 아가씨'를 부른 후 태극기를 흔들며 '님계신 전선'을 부르고 있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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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긴 담을 끼고 돌자 원로가수 김광남씨가 그녀를 마중 나왔다. 약속 시각이 임박해서인지 걸음을 재촉한다. 김광남씨가 우산을 들고 나란히 걷는 모습이 정답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곳이 인사동 좁은 골목의 허름한 이층집, 그곳에는 이미 백여 명의 가까운 노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효 잔치 현장이었다.

김광남씨의 '선창'에 이어 금사향씨가 무대에 올라갔다. 무대에 오르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85세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운 목소리로 <홍콩 아가씨>를 감칠 맛나게 부른다. 우뢰같은 박수가 터졌다. 이어서 태극기를 흔들며 <님계신 전선>이 이어진다. 객석에서 모두 손을 흔들며 합창한다. 흥겨운 잔치마당이 이어졌다.  

분주한 무대 공연이 끝나고서야 늦은 점심이 시작됐다. 요즘은 하루에 한 번, 많으면 세 번 이렇게 팬과의 만남을 갖는다고 한다. 3월 5일은 반야월 선생을 만난다며 요즘이 자기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고 소녀처럼 활짝 웃었다.

금사향  바쁜 무대 공연이 끝나고 소박한 늦은 점심 식사가 이어졌다. 원로 가수 하루 일정은 이렇게 저무러 가고 있었다.
▲ 금사향 바쁜 무대 공연이 끝나고 소박한 늦은 점심 식사가 이어졌다. 원로 가수 하루 일정은 이렇게 저무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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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향은 1929년 평양에서 출생, 1946년 상공부 섬유국 영문 타이피스로 근무하던 중 럭키 레코드사가 주최한 전국가수선발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KBS 전속가수 1기로 활동한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쟁 중에도 전선 가수로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된다. 

1954년 부산에서 도미노 레코드사를 통해 그녀의 대표곡이 된 <홍콩 아가씨>를 취입하면서 일약 국민 가수로 우뚝서게 된다. 이어 <님계신 전선>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발표된다. 작은 체구 때문에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었고, 공작 깃털로 만든 공작 드레스를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생 국민을 위해 노래한 금사향도 돈을 남에게 빌려줬다가 떼이는 등 금전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그로 인해 한 때 차상위 게층으로 인생의 어두운 길에 들어서기도 했지만,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지금은 동료 가수들과 추억만들기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금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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