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많이 듣던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사과나무 밑에서 잠자고 있던 토끼가 '쿵'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큰 일이 난 줄 알고 도망갔습니다. 토끼가 급히 뛰어가는 것을 본 다른 동물들도 큰 일이 났다는 토끼 말만 듣고 무서워서 같이 도망갔습니다. 또 다른 동물들도 함께 뛰어가는 동물들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같이 도망갔다고 합니다.
이때 '쿵' 소리를 들은 것은 토끼인데 아무도 '쿵' 소리가 어디에서, 왜 났는지를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까닭을 모르면서 '큰일났다'며 도망가는 토끼 말만 믿고 숲 속의 동물들은 모두 겁에 질려 함께 도망가게 된 것입니다.
학교현장에 난무하고 있는 '카더라'식 이야기들
이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에도 나와있지 않고, 국가교육과정에도 없고, 누가 말했는지도 명확히 알려진 것도 없으면서 '카더라' '해야 한다' '어디어디의 지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가 아닌 2012년 3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바로 '학교에서 먼 곳으로 현장 학습을 갔다왔다면 이를 몇 시간으로 계산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카더라' 또는 '해야 한다'식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체험 학습을 다녀올 때 아무리 늦게까지 해도, 6시간으로 수업 시수를 계산할 수밖에 없다.""현장 학습 다녀올 때, 버스를 타고 오가는 시간은 수업 시수에서 제외한다."실제로 현재 우리나라 수많은 학교에서는 이렇게 알고 학교 교육과정을 짜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교 교장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제가 문의한 장학사들도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수를 계산하라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근거를 대지 못하며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만 답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장학사는 "하루 6시간 넘게 시수를 책정하면 감사를 받아서 처벌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역시 근거는 대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초중등교육법은 물론 국가교육과정, 서울시교육과정편성지침을 샅샅이 다 뒤져봐도 이런 얘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는 '카더라'식 얘기가 통하고 있습니다.
오후 10시까지 교육활동 해도 6시간만 수업으로 인정?
그러나 이것은 굳이 관련법을 들이대지 않아도 학교 교육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체험 학습을 다녀와서 오후 5시에 돌아올 때, 그리고 1박2일 교실 야영이나 캠핑장에 야영을 갔을 때, 오후 10시까지 아이들과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는데 수업 시수는 6교시만 하는 것으로 한다면 6시간 이후 시간은 수업이 아니고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요?
또 서울에서 강화도까지 현장체험 학습을 가게되면 길이 막혀 버스로 오가는 시간이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그런데 버스 타고 오고가는 시간은 시수에서 제외하고 현장에서 머물렀던 2시간만 시수로 인정한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가능한가요?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안전 교육을 하고, 현장학습 장소로 가면서도 주변에 보이는 풍경을 살펴봅니다. 또,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것이 교육시간 아니면 무엇인가요?
그동안 교육청과 교과부 담당자한테 메일로 전화로 '
정보공개시스템'으로, '
국민신문고'로 이에 대해 문의해 봤지만,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서로 회피만 하거나, 근거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추상적인 답변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국민신문고'에 교과부를 상대로 아래와 같은 민원을 넣었습니다.
<민원내용> 민원인 신청번호 1AA-1202-037887
|
학교교육과정 편성시수에 대해서 학교마다 의견이 분분한 다음 내용에 대해서 정확하게 근거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말하는 사람마다 달리 말하고, 학교마다 적용을 달리해서 학교현장에 혼란이 많으니 법적근거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 2. 학교에서는 1년에 많게는 네 번 정도 먼 거리의 현장체험을 떠납니다. 그리고 교실이나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거나 2박 3일로 수학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이럴 때 1일 수업시수는 어떻게 계산하는지요? 학교마다 교육청마다 적용기준이 달라서 혼란이 많으니 다음과 같은 상황일 때 수업시수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학교 현장에서 혼란이 없도록 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5시에 돌아왔을 때 1일 수업시수를 몇 시간으로 편성해야 합니까? - 밤 8시에 돌아왔을 때 1일 수업시수를 몇 시간으로 편성해야 합니까? - 1박 2일 야영행사를 할 때 1일 수업시수를 몇 시간으로 편성해야 합니까? - 2박 3일 수학여행을 다녀올 때 1일 수업시수를 몇 시간으로 편성해야 합니까? … 5. 초등학교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을 떠날 때, 대절버스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학교에서 떠날 때부터 학교에 돌아올 때까지 교사와 함께 합니다. 교사는 현장체험학습을 오고가는 과정에서 아이들과 안전지도와 오고가는 동안 길가의 모습을 보고 듣고 경험한 얘기, 목적지에 대한 얘기들을 하면서 교육활동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현장학습을 오고갈 때 이동시간은 수업활동에서 빼야한다는 말이 들립니다. 오고가는 시간을 수업시간에서 뺀다는 의견으로 보면, 만약에 강화도까지 현장체험을 다녀올 경우 길이 막혀서 오고 가는 시간이 6시간이고 현장에서 2시간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 날 수업시수는 2시간이 됩니다.
교과부에서는 이럴 경우 수업시수를 몇 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에 교과부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해왔습니다.
2월 20일 전달받은 교과부의 답변
|
처리결과 (답변내용) … 문2, 5 : 체험활동의 1일 수업시수에 대한 시간편성 여부 답2, 5 : 초·중등교육법 제24조(수업등),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48조(수업운영방법 등), 제49조(수업시각)에 의해 수업시각은 학교장이 정합니다. 예를 들면 체험활동의 경우 이동시간에 유의미한 교육활동을 계획하여 운영하면서 교육활동 시수에 포함하는 등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학교장의 결재에 의한 시간 운영 기준에 따라 적용하면 될 것입니다.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관해 국가 수준에서는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대한 사항은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 문5 : 이동시간의 수업시수 산입 여부 답5 : 질문2와 동일
|
'체험활동 시수는 학교 자율로 결정해 실시'결국, 교과부의 답으로 본 체험활동 시수는 그동안 저를 비롯한 현장교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체험활동의 경우 이동시간에 유의미한 교육활동을 계획해 운영하면서 교육활동 시수에 포함하는 등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학교장의 결재에 의한 시간 운영 기준에 따라 적용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꼭 교과부에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상식 중에 상식이지요.
이번 민원 결과를 통해 그동안 학교장과 교육청 장학사들이 근거없이 오직 '카더라' 또는 '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만 학교에 강요하고 지시해 왔다는 게 이번에 확실히 증명이 된 셈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 초중등학교에서는 마음 턱 놓고 교과부가 말한대로 유의미한 교육활동을 계획해서 교육활동 시수에 포함해 학교장의 결재를 받아서 시행하면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런 내용을 관리자나 장학사가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고, 현장교사가 교과부에 민원을 넣어서 답변을 얻어서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딱 열흘이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을 교육청에서는 왜 미리 알아서 학교에 알려주지 않고 계속 아닌 내용을 강요만 하고 있는지 답답합니다.
저는 이번 민원 결과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 관리자와 장학사들이 시키는대로 해 온 전국의 모든 학교 선생님들한테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또 그동안 제게 근거없는 불확실한 얘기를 전했던 장학사들한테 거꾸로 알려주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모습입니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