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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은 어린이만 보는 책은 아니다. 어른에게도 동화책을 읽어야 할 순간이 인생에선 반드시 되돌아온다. 삶의 고비에 지쳐 한번 쯤 자신의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싶을 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그른지 옳은 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바로 그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동화책이다.

길벗어린이에서 나온 <들꽃아이>는 임길택이 쓰고 김동성이 그린 어린이 동화책이다. 초등 고학년이 읽기에 적합한 이 동화는 아름다운 그림과 유려한 문체를 특징으로 한다. 다소 문장의 연결이 미흡한 것이 흠이지만 초등 교사의 입장에서 현장감 있게 쓴 책이란 것에 의의가 있다.

동화 <들꽃아이> 표지 본 사진은 책표지를 직접 촬영한 것임
동화 <들꽃아이> 표지본 사진은 책표지를 직접 촬영한 것임 ⓒ 조을영

책 속에서 구체적 정황은 나와 있지 않지만 70, 80년대 강원도의 어느 초등학교가 이야기의 배경이다. 이곳에 부임한 초보 교사가 겪는 작은 에피소드를 기둥으로 해서 아름다운 산골의 정취와 순박한 시골 어린이들과의 소소한 일상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더 나아가 자연과 벗하며 서로 욕심 없이 사는 우리네 이웃들의 정서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특히 <엄마마중>으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은 화가 김동성의 그림이 많은 보탬이 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초보 교사로 발령 받은 김 선생은 매일 교탁 위에 꽃을 꺾어다 놓는 한 여학생을 통해 시골 아이들과 친해지게 된다. 도시에서만 자라서 아이들이 꽃 이름을 물어도 제대로 대답을 못해주는 것이 부끄러워 눈에 보이는 대로 꽃을 스케치하고, 저녁이면 식물도감을 펼쳐들며 그 꽃에 대해 공부를 한다. 게다가 매일 꽃을 꺾어다주는 아이가 지각하는 사연이 궁금해 집으로 찾아가 보니, 숲을 지나고 내를 건너서 인가가 다섯 채 밖에 없는 마을에 살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

동화 <들꽃아이>의 삽화 시골학교에 부임한 김선생은 저녁마다 식물사전을 보며 꽃이름 공부를 한다. 
(본 사진은 책의 삽화를 기자가 촬영한 것임)
동화 <들꽃아이>의 삽화시골학교에 부임한 김선생은 저녁마다 식물사전을 보며 꽃이름 공부를 한다. (본 사진은 책의 삽화를 기자가 촬영한 것임) ⓒ 조을영

'그래서 항상 손전등을 가지고 다녔구나', '그 긴 숲을 걸어오며 매일 꽃을 꺾어 교탁 위에 놓았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으며 해가 진 숲길을 지나고, 별이 총총한 산골 마을에 자정이 가까워서야 도착 하니 다섯 가구의 마을 사람들이 밤잠도 잊은 채 메밀전, 욱수수주 같은 음식을 차려놓고 김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산골에서 말 할 수 없는 감동에 겨워 마음이 풍요로워진 김 선생은 그날 하루를 그렇게 마감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의 담담하고 섬세한 그림은 화면을 뒤덮는 싱그러운 색채와 함께 이 책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동화책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비율은 글 못지않게 커서 그 그림으로 인해 동화가 더욱 시각적으로 명료화된다는 것을 화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지병으로 1997년에 고인이 된 동화작가 임길택은 교사 생활을 통해 체득한 잔잔한 삶의 진리를 어린이 시각에서 곱게 펼쳐 보이며,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이란 주제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떠나갔다.

오늘날 학교 폭력과 입시가 낳은 경쟁 심리는 우정과 이해라는 가치관을 무너뜨렸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참 가치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어린이들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 아이들을 그렇게 키운 것은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란 것을 다시금 깨닫고, 우리 어른들이 그들에게 인간애와 이웃이라는 아름다운 정서를 더 성실히 가르쳐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우리의 소중한 지난날을 돌아보며 앞으로 우리 사회의 방향을 고민할 의무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책, 바로 이 책 <들꽃아이>다.


들꽃 아이

김동성 그림, 임길택 글, 길벗어린이(2008)


#들꽃아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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