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을 찾는 손님들 중에는 자식이 문학이나 예술을 한다면 부모가 극구 말리고 주위에 서도 미친 사람취급을 하는데 참 딱한 노릇이다. 딸아이와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는데 고등학생 딸이 시집 한 권 사게 돈을 달라고 하니 엄마 입에서 망설임 없이 '미친년' 소리가 튀어나온다. 그리고는 오만 원짜리 한 장을 던져주며 그까짓 시집 읽을 생각 말고 햄버거 사먹고 영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란다. 웃으면서 한마디 해줬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책에는 사랑과 효도가,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 없습니다. 아니, 있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가르침이 아닙니다. 문학과 예술에는 사랑과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끊임없는 질문이 있으며 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들어 있지요. 아주머니가 가정에서 제대로 가르칠 능력이 안 되면 문학과 그림, 또는 음악을 통해서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것도 좋지요. 문학과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거기에 있지요. 또한 문학과 예술에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지요.""아저씨나 잘 하세요. 시가 밥 먹여 주나? 공부하기도 바쁜 애한테 시집은 무슨…."'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차라리 쇠귀에 경을 읽지. 쯧쯧.'
문학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비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눈에 보이는 돈이 안 되겠기에 그리 생각을 하는 모양이지만 문학(예술)처럼 확대 재생산이 가능한 작업도 없을 줄 믿는다. 우리의 고단한 삶의 와중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여유가 없는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마음으로는 우리의 삶이 척박해질 수밖에 없다. 그 척박한 삶 속에서 여유를 찾아주고 부정 속에서 긍정을 찾아내며 치지(致知)는 재격물(在格物)이라 하는 <대학>(大學)의 한 구절처럼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고 올바른 판단을 하여 '앎' 즉 치지(致知)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문학인 것이다. 이보다 큰 생산적 일이 어디에 있는가.
물론 시(詩) 한 줄 남 보다 더 외우고 소설 몇 권 더 읽었다고 그 사람의 삶이 외면적으로 당장 풍요롭게 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돈이 많아 밍크 코트 걸치는 것처럼 그렇게 드러나지 않을 뿐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가슴은 온 우주를 품고 있음을 나는 종종 보았다. 문학가들을 보면 부정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꿀 줄도 알며 또한 그 에너지를 타인에게 전파시키려 무진 애를 쓰고자 한다. 이처럼 생산적인 일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