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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산처럼 생각하라〉
책겉그림〈산처럼 생각하라〉 ⓒ 소동

가끔씩 남한산성에 올라갑니다. 마천동 버스 종점에서 시작하여 산 할아버지 흉상이 있는 다리를 지나, 서문을 통과해 전망대까지 오르지요. 그 위에 서면 서울 시내 전경은 물론이고 한강 너머 저 멀리 남산까지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망원경으로 보면 안전철봉에 가리는 게 많기에 제 눈으로 보는 게 더 많은 대자연을 담을 수 있습니다.

 

1624년 조선왕조 제 16대 임금인 인조 2년부터 축성하기 시작한 남한산성은 2년 뒤 완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을 맞은 그 해 12월 14일 임금은 도성을 빠져나와 송파 강나루를 건너 남문으로 피해 들어가지요. 그로부터 47일 만에 임금은 두 사람이 지나기도 어려운 비좁고 어두운 서문으로 그 산성을 걸어 나와야 했습니다.

 

그 역사의 뒤안길은 수어장대(守禦將臺) 옆 조그만 누각 안에 있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통해 엿볼 수 있지요. 다만 김훈의 <남한산성>은 그때의 치욕이 청나라로부터 겪은 일이지만 실은 조정 대신들 간의 다툼이 더 큰 화를 자초했다고 꼬집지요. 어떤 역사든지 뼈아픈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지만, 남한산성이 그 자체로서 좋은 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위에 성벽을 얹어 놓은 모습 때문입니다.

 

2018년에 치러질 평창 동계올림픽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관심거리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인근 주변의 땅값이 들썩인다고 하지요. 각종 개발에 따른 여러 이득들을 누리고자 함이겠지요. 하여 1994년도 동계 올림픽 개최지였던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Lillehammer)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들 하지요. 대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립식 건물들이 그것입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건물을 지었으니 땅 투기도 없었을 테고, 경기가 끝나 모든 시설물들을 철수하였으니 막대한 관리비용까지 막을 수 있었겠지요.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인 동계올림픽이었겠죠.

 

일상의 산행에서 역사까지, 그리고 머잖아 치를 세계적인 동계 올림픽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게 어설픈 조화 같습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한 가지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것 저것 끌어 온 것입니다. '대자연과 동일시하는 인간의 삶' 말이지요. 그건 아르네 네스와 존 시드 외 여럿이서 쓴 <산처럼 생각하라>를 읽어봐도 너무나도 타당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반짝이며 흐르는 냇물과 강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피입니다. 우리가 백인에게 우리 땅을 팔면 그들은 그것이 신성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그것이 신성한 것임을, 맑은 호수에 비치는 신령한 모든 것들이 우리 생의 사건과 기억을 말해준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흐르는 물소리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음성입니다."(48쪽)

 

"땅이 우리 친족들의 생명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바를, 땅이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땅에 일어나는 일은 땅의 자식에게도 일어납니다. 사람이 땅에 침을 뱉으면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53쪽)

 

대자연에 흐르는 냇물과 강물이 조상들의 피라니, 그 물소리가 아버지의 음성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식견입니까? 대자연의 땅이 어머니라니, 그 땅에 침을 뱉는 게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라니, 얼마나 깊이 있는 혜안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산과 동일시하며 사는 사람이라야 깨달을 수 있는 진리겠지요. 사실 성경에서도 사람이 대자연의 '흙'으로부터, 아니 티끌과 같은 '먼지'로부터 나왔다고 하니, 인간은 대자연에 속해 있는 존재일 뿐이지요. 인간중심주의라는 말은 결코 옳지 않는 말이겠지요. 그것은 죽어 흙가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히 숙연해지는 진리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있지요. 멀쩡한 강들도 이미 파헤칠 대로 파헤친 이 정부는 과연 철학과 역사의식이 있기나 한 걸까요? 태곳적으로부터 내려온 대자연의 흐름만 내다보았던들 결코 그런 난개발과 파괴행위는 벌이지 않았겠지요. 그 속에 빈 머리를 맞대며 일하는 참모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여 해군기지를 설치한다 한들 우리에게 군사주권이 없는 그 기지이니 미국에게 바치는 조공품과 뭐가 다를까요? 그 일에 정부 요원들이 머리를 맞댔으니 어찌 인조 시대의 조정대신들과 다르지 않다 할 수 있겠습니까?

 

늦게 가더라도, 더디 돌아간다 해도 물처럼 흐르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도 실은 수 천 년의 지혜와 철학과 역사 속에서 품어 나온 잠언이잖습니까? 그만큼 인간중심주의보다 대자연의 흐름에 인간이 내 맡기며 사는 게 가장 옳은 일이지요. 마지막 임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대통령과 이 정부를 이끌어가는 참모들은 부디 이 책 <산처럼 생각하라>를 탐독해야 할 듯 싶습니다. 그리하여 늦게나마 대자연의 산과 들과 강과 물에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마음이 동(動)한다면 역사 앞에 참회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요.


산처럼 생각하라 -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아르네 네스.존 시드 외 지음, 이한중 옮김, 데일런 퓨 삽화, 소동(2012)


#산처럼 생각하라#아르네 네스#존 시드#상선약수#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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