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백부터 해야겠다. 책을 쓴 이주빈 기자는 오래된 내 동무다. 서른 즈음에 만나 지금까지 티격태격 웃다, 싸우다, 화해하다를 반복하면서 광주살이를 겪어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둘은 함께 기자였고, 지금은 이주빈만 홀로 기자다.
동무가 쓴 책을 엄정하게 읽을 객관의 힘이 내게는 없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동무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숨결이 들린다. 한숨과 분노, 짜증까지 읽힌다. 그래서 이 글은 책보다는 동무에 관한 진술일 수밖에 없다. 그 치우침이 이 기사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무의 취재 고생을 응원 한답시고 지난해 여름 강정에 갔었다. 동무는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책의 부제)을 만나 인터뷰했다.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몇 꼭지 기사를 읽어본 터였다. 기사 나오면 읽지, 뭐. 인터뷰할 때 나는 기자 이주빈을 내버려 두고 혼자서 강정을 돌아다녔다.
동무는, 현장의 사실, 그 이면에 똬리 틀고 있는 진실을 포착하는 데 탁월했다. 그 현장이 섬이라면 탁월함은 몇 배로 증가한다. 흑산도 '섬놈' 출신인 동무는 섬사람들만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결을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낚을 줄 안다. 그래서 이런 문장이 가능하다.
"죽음보다 지독한 삶의 고통을 테왁(해녀가 부력을 이용하여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도구) 밑에 깔고, 얼기설기 엮은 망사리(해녀가 딴 해산물을 담는 자루)엔 소라 담듯 한 가닥 삶의 희망을 채워가며 살아온 이들이다." ―'바다의 딸' 법환마을 해녀회장 강애심 중.하루 이틀 새에 나그네의 눈으로 강정을 속내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평화, 생태, 연안해군론과 대양해군론 등 강정을 이해하는 몇 가지 열쇠말을 나 또한 '공부'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공부로 알 수 있는 것들은 대개 표피에 불과한 법이다. 동무가 쓴 기사를 읽으면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 내 믿음이었다. 선체험 없이 기사를 읽기 위해서 동무가 인터뷰할 때 나는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이주빈 기자가 동무여서 나는 믿는 것인가. 아니다.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동무였다. 강정 해군기지 때문에 분노하는 그를 광주의 술집에서 여러 차례 달랬다. 동무는 분노했지만, 분노하지 않는 나를 동무는 질책하지 않았다. 내게는 무언의 질책으로 느껴져 많이 부끄러웠다.
이 사랑, 이 울음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기를 기자 이주빈은 5년이 넘도록 강정을 취재하면서 '이 사안'과 관련된 모든 말들을 인수분해 했다. 그러니까 '제주' '강정' '마을' '사람들' '해군' '기지' 와 같은 말들을 동무는 종횡 묶었다 풀고, 거기에 상하위 개념들을 능란하게 배치할 수 있는 속칭 전문가가 되었다. 기자 이주빈을 믿는 나의 근거들이 이 '전문성'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동무는 전문적인 그 말보다는 '사랑과 분노'를 먼저 이야기했다. 아니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몸으로 포효했다. 사랑으로 울었고,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 진술은 상징이 아니라 실재다. 취재를 마치고 광주로 돌아와 맥주병을 무한사열하던 어느 날 밤의 기억이다. 책의 머리말 "그 섬에 함께 있었다"는 동무의 글에 꾹꾹 눌러 삼킨 사랑과 분노가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더 이상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지 않는 수상한 바다. 아파트 한 채만한 케이슨(방파제용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해녀 대신 잠수를 준비하는 해괴한 바다. 자리돔 한 마리 낚아채지 못하는 '국익'과 '안보'라는 사나운 그물이 마구마구 던져지고 있는 포획의 바다. 그렇게 시퍼렇게 멍들어 가는 강정바다와 함께 울고 있었다." ―머리말 중.책은 강정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벗이 되겠노라고 프랑스에서 대만에서 서울에서 구례에서 대전에서 달려온 맘씨 고운 사람들" 16명이 기록되어 있다. '구럼비의 노래'가 에필로그에 담겨 있고, '제주 해군기지, 무엇이 쟁점인가'와 '강정마을 4년의 기록'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사람, 쟁점, 연혁이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강정마을 사람들을 한없이 사랑했던 동무 이주빈 기자는 그이들을 중심에 두고 책을 엮었다. 하지만 나는 에필로그 '구럼비의 노래'에 먼저 전율한다. 동무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고도로 응축되어서, 마치 구럼비 바위처럼 단 하나의 단위로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있는 문장이, 시(詩)가 '구럼비의 노래'이다.
노래는, 왜 해군기지가 들어서서는 안되는지, 들어설 필요가 없는지, 제주도는 어떤 섬인지, 바다란 무엇인지, 강정마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처절한지 등을 말 그대로 '노래'한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서늘하며, 찬란하다.
이 노래를 통해 나는, 슬픈,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는 강정을 알게 되었다. 불법과 폭력으로 유지되는 안보, 그 말 같지도 않은 말의 거짓을 확인했다. 오래된 내 동무 이주빈 기자가 세상을 향해 호소하는 사랑의 울음을 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안고 싶어요. 내 너른 등에 무등을 태우고, 강정바다 수평선 너머를 꿈꾸고 싶어요. 나를 가두고, 나를 죽이는 건 참을 수 있어요. 그러나 섬마을 아이들의 꿈을 죽이는 건 참을 수 없어요. 섬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지우는 건 참을 수 없어요.이봐요,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이 미친 짓 그만두라고 말해주세요. 이봐요,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제발 이 죽음의 망나니 짓 그만 멈추라고 말려주세요!" ―에필로그 '구럼비의 노래' 마지막.감히, 이 사랑, 이 울음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 이주빈(글) / 노순택(사진) / 오마이북 / 201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