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국의 학교마다 학교폭력 근절을 외치는 현수막으로 뒤덮였고, 하루가 멀다 하고 똑같은 내용의 가정통신문이 뿌려지고 있다.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학교장과 교육감의 서한문을 비롯해 시장, 경찰청장, 심지어 학교별 담당 경찰관까지 나서서 학교폭력 근절을 부르짖고 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학교 내 일이란 게 한 가지 이슈에 묻히면 다른 사안은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에 십상이다. 아이들의 흡연 문제가 꼭 그렇다. 학교폭력과 같은 '급'이 아니라며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워낙 많아 이제는 더이상 학교가 손쓸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자책하듯 푸념한다.
아이들 흡연율 높아지는 것보다 나이 낮아지고 있는 게 더 큰 문제 이미 통계상으로도 수차례 거론된 적이 있지만, 양교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전문계고 학생들의 경우 열에 예닐곱 명은 담배를 피우고 있고, 인문계고의 경우도 20%는 족히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안학교가 아니더라도 학생 흡연실을 별도로 설치한 학교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이들의 흡연율이 높아지는 것도 그렇지만, 담배 피우는 아이들의 나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은 더욱 문제다. 현재 학교 내에서 금연 지도를 받고 있는 한 아이의 말을 빌자면,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해선 담배를 끊을 수 없을 정도로 니코틴에 중독된 중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도 얼마 전 기껏해야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앳된 아이가 스스럼없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학생부장으로서 지금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 솔직히 '뜸한' 학교폭력보다 '빈번한' 아이들의 흡연 문제다. 일부에서는 흡연을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로 여기기도 하는데, 크게 잘못된 인식이다. 말하자면 이른바 일진들 대부분은 담배를 피우지만,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모두 일진은 아니다.
공부도 곧잘 하고 교사나 친구들로부터 두루 인정받는 '범생이'들 중에도 담배 피우는 아이가 의외로 많다. 개중에는 외국의 사례를 들먹이며 담배 피우는 것이 뭐 그리 문제냐며 '진지하게' 되묻는 경우마저 있다. 담배가 잘 나가는 몇몇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미 많은 아이의 가방과 사물함에 공공연하게 숨겨진 기호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교마다 흡연에 관한 강력한 처벌규정이 마련돼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경우, 교내에서 적발 시 자술서를 작성하게 하고, 즉시 보호자에게 흡연 사실을 통지하게 돼 있다. 3회 이상 적발 시에는 강제로 금연 동영상을 시청하게 하고, 5회 이상의 상습적일 경우에는 학생선도위원회에 넘겨 보호자를 동반한 사회봉사를 의무화한다.
담배 규제, 처벌 위한 처벌일 뿐 교육적 효과 없어 과거 담배 피웠다고 벌로 교내 안팎을 종일 청소시키는 천편일률적인 방식에서 진일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처벌을 위한 처벌일 뿐,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이는 벌로 청소를 시키면 끝내고 나서 담배 한 대 더 피우게 된다며 이미 규정을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렇다고 자술서 쓰게 하고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해서 아이가 담배를 끊게 될 것까지 않기 때문이다.
보호자에게 알리는 것 또한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가 한 반에 한두 명일 정도로 드물었을 때야 그야말로 '막강'했다지만, 시나브로 그 위력을 잃었다. 전화를 걸어보면, 자녀의 흡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경우보다 이미 알고 있다는 부모가 더 많다. 외려 자녀 이기는 부모 없다면서 학교에서 담배를 끊게 만들어달라고 간청한다.
그 부모의 마음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황당한 나머지 수화기에 대고 가정에서 가르쳐야 할 몫을 왜 학교에 떠넘기느냐며 발끈했다. 고백하건대, 학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금연 교육을 할 능력이 없다. 고작 상급 관청에서 이따금 날라 오는 안내 자료를 인쇄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담임교사가 조회, 종례 시간 때 몇 마디 던지는 훈화가 고작이다.
담배 피운 사실을 적발해내는 니코틴 측정기는 비치돼 있지만, 학교에는 금연 치료를 위한 도구는커녕 변변한 매뉴얼도 없다. 그래서일까, 여태껏 학교의 처벌이 두려워 담배를 끊었다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거칠게 말해서 교사들이 솔선수범해 담배를 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학교가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금연 교육이다.
비록 아이들이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지만, 금연 교육만큼은 학교보다도 지역 사회와 유관기관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건 분명 그릇된 행위임이 틀림없지만, 그들에게 당장 그리고 근본적으로 필요한 건 처벌을 위한 청소나 매가 아니라 자발적 금연을 돕는 치료다.
학교와 보건소, 병원 등이 금연 치료 협약을 체결해야우선 개별 학교와 보건소, 병원 등이 아이들 금연 치료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잘못이든 질병이든 예방을 위한 교육은 학교의 몫일지언정,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협조를 구하기 위해 직접 찾아간 몇몇 기관에서는 업무량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마뜩잖게 여겼지만, 진정 아이들의 흡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마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별 학교가 처벌의 일환으로서 니코틴에 중독된 아이들을 모아 협약을 맺은 기관에 인계하면 일정 기간 치료를 목적으로 지도한 후 학교로 복귀시키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전문 기관의 실효적인 금연 지도는 아이들의 학습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종국에는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당부하건대, 서로 자기 업무 아니라고 폭탄 돌리기 하듯 떠넘길 사안이 아니다.
오늘도 퇴근길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교복을 입은 채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아이들을 차창 밖으로 마주한다. 그 아이들 곁에는 핸드백을 든 아주머니와 양복을 근사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도 있었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을 연신 만지작거리는 대학생과 반려동물을 이끌고 산책을 나온 듯한 어르신도 서 있었지만, 다들 하나같이 내 일 아니라는 듯 본체만체했다.
아이들의 비행을 눈감아버린 그들은 버스에 오른 후 창밖으로 담배 피우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말세'라고 혀를 끌끌 찰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자녀와 손자들은 그러지 않음을 안도하며 무능한 학교와 타락한 사회 현실을 나무랄 것이다. 자신들도 공범임을 애써 외면한 채.
거듭 강조하건대, 아이들의 건강과 정서를 해치는 흡연은 학교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이미 훌쩍 넘어버렸다. 사회적 관심과 협조 없이는 지금의 학교폭력을 능가하는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무력한 학교에 기댄 채 보호자도 손을 놓고, 지역 사회와 유관 기관마저 내 일 아니라는 듯 방치하면서 학교 안팎은 시나브로 '너구리굴'이 돼가고 있다.
한 학생부 소속 교사가 흡연 학생을 앉혀놓고 건네는 훈계를 듣자니 참 서글프다.
"제발 학교 안에서만큼은 피우지 마라.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