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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드 호텔의 옥상 부엌에서 맛있는 카레 요리를 만들던 파키스탄인들.
 마샤드 호텔의 옥상 부엌에서 맛있는 카레 요리를 만들던 파키스탄인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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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는 마샤드호텔에 묵었습니다. 거창하게 호텔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숙소 등급을 기준으로 하면 여관 정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이란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곳입니다. 가격이 저렴하고, 여행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이유고, 여행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매력은 옥상 부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란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여러 종류의 숙소에 묵었습니다. 이스파한에서는 어떤 부탁에도 '노 프라블럼'으로 대답해주는 친절한 주인이 운영하는 정말 깨끗한 숙소에서도 있었고, 야즈드에서는 최고급 호텔에 묵었고, 사막에서는 특별하게 대상 숙소에서 잤었는데, 기억에 가장 선명한 숙소는 테헤란의 마샤드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기억은 옥상 부엌과 관련 있습니다.

옥상 부엌으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을 오르면서 누가 있을까, 기대를 하게 됩니다. 소심한 난 옥상 부엌에서 만난 여행자 그 누구와도 친분을 쌓지 않았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특별한 잔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옥상 부엌을 특별한 공간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어느 때는 마샤드에서 화장실 청소나 차심부름을 하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우린 서로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가 닭 보듯 멀뚱하게 한 번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나란히 서서 불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 물이 끓기를 기다렸습니다. 커다란 주전자에 가득 담긴 물이 끓으면 그는 작은 주전자로 옮겨 담아 내려갈 것이고 난 그 주전자 물로 라면을 끓일 계획입니다.

이렇게 우린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물이 끓는 동안만은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무심하게 그 공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렇지만 나도 별로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끓겠지 하는 기분으로 그냥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상하게 평화로웠습니다. 낯가림이 심하지만 낯선 사람과 함께 있는데 조금도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평화로울 수 있는 관계는 가족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옥상 주방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난 편안한 기분을 가졌습니다.

바로 이런 게 마샤드의 옥상 부엌이 가진 매력이었습니다. 많은 여행자가 드나들면서 아마도 이런 문화가 형성된 듯싶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자고 같은 부엌을 이용하니까 오랜 동지에게서 느끼는 편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난 옥상 부엌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이란여행의 베이스캠프, 마샤드호텔

마샤드 호텔 객실. 저렴한 가격과 많은 배낭 여행자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샤드 호텔 객실. 저렴한 가격과 많은 배낭 여행자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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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란여행에서 마샤드호텔을 베이스 캠프로 이용했습니다.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던 첫날밤을 이 호텔에서 보냈고, 이란에서의 마지막 밤도 마샤드에서 보냈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때 경유지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카샨에서 돌아왔을 때는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달여의 이란 여행을 끝내면서 테헤란 구경을 위한 3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는데, 그 3일을 보내기 위해 우린 다시 마샤드호텔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마샤드로 돌아왔을 때 굉장히 피곤했습니다. 여행의 피로가 쌓이면서 이맘때는 내내 시체처럼 눕고만 싶은 기분으로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옥상에 있는 주방으로 올라갔더니 이란에서 일하면서 마샤드에서 장기투숙하고 있는 파키스탄 사람 둘이서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 향이 강한 나물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이전에도 마샤드에서 몇 번 봤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남편의 고향 친구를 닮았습니다. 친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남자가 가벼운 인사를 했습니다. 안면은 있지만 말을 나눈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만드는 요리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 요리는 요리랄 것도 없었습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음식이지 요리가 아니었는데 그들은 정말 요리를 했습니다.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가족과 헤어져 타향살이를 하고는 있지만 요리를 만드는 그 저녁만큼은 어떤 부자 못지않은 만족감과 포만감을 누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샤드 호텔에서  청소를 담당하던 청년. 부지런한 청년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언제나 화장실 청소를 열심히 해서 마샤드호텔은 화장실 만큼은 깨끗했던 것 같다.
 마샤드 호텔에서 청소를 담당하던 청년. 부지런한 청년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언제나 화장실 청소를 열심히 해서 마샤드호텔은 화장실 만큼은 깨끗했던 것 같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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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샤드호텔의 주방은 요리를 하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문만 열면 들 고양이가 들어올 정도로 지저분합니다. 싱크대는 오래 묵은 때가 끼었고, 냄비는 정말 처음에는 요리하고 도저히 연관 지을 수가 없을 만큼 지저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다 태워서 모든 냄비의 바닥은 시커멓게 탄 자국이 두껍게 쌓여 있습니다.

그런 냄비에 요리를 한다는 건 그 시커먼 때를 모조리 삼키는 게 되므로 요리를 해먹을 엄두를 못 냈었습니다. 마샤드에서 만난 한국인 장기 여행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냄비에 스파게티를 만들어먹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꿔 밥을 한 번 해먹었습니다. 나중에는 냄비가 더럽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그 냄비에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마샤드의 부엌은 냄비가 더럽고 싱크대가 더러운 것 말고도 어떻게 보면 참 삭막한 공간입니다. 구멍 나고 내려앉은 소파가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들 고양이가 호시탐탐 기웃거리고 한쪽에는 쓰레기가 쌓여있는 모습만 보면 참 지저분하고 삭막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퀴벌레도 엄청 살 것입니다. 그야말로 지저분하고 누추한 곳입니다.

호텔의 초라한 부엌, 남자 둘이 행복을 만들다

그런데 오늘은 이 초라한 부엌에서 파키스탄 남자 둘이 행복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나물을 다듬는 두 남자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차분하게 나물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는 정말 많은 평화가 깃들어있었습니다.

그들의 오늘 메뉴는 고기 요리 같았습니다. 나물을 다듬고 나서 남편 고향 친구를 닮은 남자는 냄비에 고기를 잘라 넣고, 다른 남자는 도마 위에서 양파를 잘게 다졌습니다. 그들의 솜씨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일류 주부처럼 능숙했습니다. 

파키스탄 요리를 구경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난 열심히 요리를 만드는 두 남자를 바라봤습니다. 냄비에서 고기를 볶다가 남편 고향 친구를 닮은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는 담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도 자연스럽게 웃어보였습니다. 그 남자는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난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말하는 투도 정말 남편 고향 친구 같았습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의 태도를 봐서는 내가 거기 계속 있다면 자신의 음식을 나눠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파키스탄 남자는 고기가 어느 정도 볶아지자 거기에 다진 양파와 토마토 다진 것과 마늘을 넣고 볶았습니다. 양파와 고기가 익으면서 주방은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찼습니다. 그 냄새를 맡으면서 난 마샤드의 주방이 좋은 이유가, 이렇게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을 멀고 복잡하게 볼 게 아니라 지금이 전부라는 생각을 갖고 지금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사는 사람들의 아지트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장기 여행자들은 그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인생에서 미래보다는 현재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지 않을까요.

파키스탄 남자들은 고기와 야채가 어느 정도 익자 노란 빛의 가루를 넣었는데 카레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물을 조금 더 넣고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였습니다. 생각보다 요리는 복잡하고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식탁 위에 있던 향이 나는 나물은 잎만 따서 접시에 담아두었는데 그건 아마도 카레 요리가 다 된 후 고명처럼 위에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난 난 그들의 요리가 완성되기 전에 철제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내가 만들던 음식이 다 돼서 들고 내려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행 막바지에 많이 피곤했었는데 마샤드의 옥상 부엌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요리하는 파키스탄 남자들은 만나고  마음도 몸도 가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역시 마샤드의 옥상 주방은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행복한 사람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그래서 난 이란의 어떤 성소보다도 마샤드의 옥상 주방을 좋아했습니다.


태그:#마샤드호텔, #테헤란, #파키스탄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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