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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올해 신규로 지정된 서울형 혁신학교입니다. 혁신학교의 모습은 학교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손꼽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시간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침에 학교에 오면 '아침 열기'를 하고 1-2교시를 묶어서 80분 수업을 진행하고 30분의 놀이시간을 준 다음, 3-4교시를 묶어서 80분 수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생이 된 지 열흘이 지난 1학년 새내기들입니다. 지난 주에는 입학 초 적응 기간으로 10시까지 학교에 와서 3시간 수업만 했기 운동장에서 놀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기 때문에 교실, 화장실, 밥상(급식이라 하면 너무 맛없는 느낌!), 학교 곳곳에 대해 배우느라 놀 시간도, 틈도 없었습니다.

입학하고 일주일이 되었을 때 학교 곳곳을 둘러보는 학교탐방을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 것은 처음이어서 그럴까요? 아이들의 눈이 반짝 빛납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아몬드와 다시마 젤리만큼 고소하고 새로운 날이었을 것입니다.
▲ 반짝반짝 빛나는 눈 입학하고 일주일이 되었을 때 학교 곳곳을 둘러보는 학교탐방을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 것은 처음이어서 그럴까요? 아이들의 눈이 반짝 빛납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아몬드와 다시마 젤리만큼 고소하고 새로운 날이었을 것입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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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적응기간을 무사히 마친 아이들이 이번 주부터는 9시까지 학교에 옵니다. 8시 20분에 오는 아이들도 있고, 9시 '땡' 하기 직전에 오는 아이들도 있지요. 들어올 때부터 긴장하던 아이들이, 그 사이 많이 익숙해졌다고 이제 우리 교실에 들어오면 낯빛이 환해집니다. 환해진 낯빛만큼 또 새롭게 도전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셈이니 이번 주부터는 놀이시간을 운영합니다.

월요일 아침, 오늘부터 바뀌는 수업 시간에 대해서 안내를 해주고 놀이시간에 지켜야 할 규칙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1묶음 시간이 끝나자마자 모두 신주머니를 챙겨들고 놀이터로 나갑니다. 여자 아이들은 시소에 매달리고, 남자 아이들은 미끄럼틀에 매달립니다. 첫 날이니만큼 놀이 구역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드넓은 운동장으로 내달려 나가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쿵덕쿵덕 시소 타기만 하던 녀석들이 이틀이 지나니 시소 가운데에 서서 균형추 역할을 합니다. 둘이 타고 셋이 타고 서서 타고, 왔다 갔다 걸어보고, 다 좋은데 스스로 몸을 다룰줄 아는 법을 어서 익혀서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처음엔 이렇게 얌전하게 놀았습니다. 쿵덕쿵덕 시소 타기만 하던 녀석들이 이틀이 지나니 시소 가운데에 서서 균형추 역할을 합니다. 둘이 타고 셋이 타고 서서 타고, 왔다 갔다 걸어보고, 다 좋은데 스스로 몸을 다룰줄 아는 법을 어서 익혀서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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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이제 한두 명이 평행봉으로, 운동장으로 달려봅니다. 여자 아이들도 좀 더 대담한 놀이에 도전을 하기도 합니다. 한 아이는 꺾인 회양목 가지를 들고 이걸 심어줄 것이라면서 열심히 모래를 퍼날라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회양목 가지를 꽂아줍니다.

셋째 날, 아침부터 아이들 엉덩이가 들썩들썩 합니다. 1묶음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선생님 놀이시간 언제예요?"를 수없이 묻다가 10시쯤 되자 한 녀석이 소리칩니다.

"이제 놀이시간 되려면 20분밖에 안 남았어!"

아이들이 "와~!" 함성을 지릅니다. 좀 지나니, "이제 10분 남았다~!" 외칩니다.

그물에 매달려 있던 아이들이, 한 아이가 멋지게 봉을 타고 내려오는 시범을 보이자 너도 나도 도전합니다. 물론 쉬울 줄 알고 올라 갔다가 겁이 나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냥 내려오는 아이들도 있지요. 이것이 이틀이 지나자 여자 아이들 놀이가 됩니다.
▲ 이것도 도전해보자. 그물에 매달려 있던 아이들이, 한 아이가 멋지게 봉을 타고 내려오는 시범을 보이자 너도 나도 도전합니다. 물론 쉬울 줄 알고 올라 갔다가 겁이 나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냥 내려오는 아이들도 있지요. 이것이 이틀이 지나자 여자 아이들 놀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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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움직이는 에너지로 충만한 아이들을 컴퓨터 앞으로 텔레비전 앞으로 묶어놓은 것은 누구일까요? 인터넷 중독이니 게임 중독이니 하는 말들을 갖다 붙이면서, 그것만이 세상인 줄 알고 배워왔던 아이들을 나무라는 것은 누구일까요?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될 것이니 가정에서는 제대로 가르치라고 훈계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아이들은 놀기 위해서 세상에 온다'고 한 놀이연구가가 말하기도 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놀면서 손을 쓰고 몸을 쓰고 마음을 쓰면서 자라납니다. 그렇게 손과 몸과 마음을 쓰면서 놀아본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고르게 발달할 뿐 아니라 주변을 살필 줄 알고, 나 혼자 잘난 척했을 때 놀이가 성사되지 않게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공동체적 경험을 익혀갑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교육이 아닌 비형식적인 교육입니다. 이런 비형식적인 교육이 많으면 많을수록 몸에 체득되는 것이 많아집니다. 일부러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힌 것을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기게 되고 이런 자연스런 행동이 올바른 됨됨이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득도의 경지일 것입니다.

평균대, 철봉, 더 넓은 운동장으로 아이들의 놀이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아이들의 교사의 시선도 긴장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잘 놀 줄 아는 아이는 다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 드넓은 운동장으로 내달려 볼까? 평균대, 철봉, 더 넓은 운동장으로 아이들의 놀이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아이들의 교사의 시선도 긴장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잘 놀 줄 아는 아이는 다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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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시간에 싸우지 말아라, 질서를 지켜라, 서로 양보해라 말로 일러주는 것은 형식적인 교육이지만 그것이 몸에 체득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싸우고, 울며, 화해하고, 풀어지고, 다시 생각하고 돌아보는 전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익혀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 반은 놀이시간 지도 계획을 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 꼭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교육적 접속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태그:#놀이시간, #서울형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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