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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와 싸움끝에 가출을 하기는 했는데 갈 곳이 없네!

아내와 토닥거리고 집을 나왔다. 홧김에 나오기는 했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했더니 초저녁인데 벌써 술에 취해서 잔단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할 수 없이 8000원짜리 튀김 닭을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가려니 엄청나게 쑥스럽다. 순간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젊은 연인 두 쌍이 요트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 중 한 쌍이 티격태격 싸움 끝에 아가씨가 짐을 쌌다. 그리고 이제는 이별이라며 선실을 나와보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갈 곳 없는 망망대해라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연인들은 깔깔 배꼽을 쥐고 웃으며 갈 곳도 없으니 싫던 좋던 여행은 마쳐야하지 않겠냐며 화해를 하란다. 별 수 없이 화해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데 훗날 들려온 소식으로는 아들 딸 잘 낳고 백년해로 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바다라는 배수의 진 덕분에 갈 곳이 없다는 게 때로는 축복일 수도 있다. 이왕에 한 배를 탔으니 인생이라는 바다를 건너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함께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싶다. 어차피 산 넘으면 강이고 강 건너면 산인 것을.

한계령에서.
▲ . 한계령에서.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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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랬으면 참 좋겠다.

(엊저녁 아내에게 함부로 한 것에 대한 반성문)내 마음 나도 모를 적이 있지만 나는 이랬으면 참 좋겠다.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야 딱딱하면 어떻고 거칠면 어떠랴만 아내가 먹는 음식은 딸기처럼 보드랍고 바닐라처럼 향기도 좋으면 참 좋겠다. 내가 입는 옷은 깨끗이 빨아 입으면 되겠지만 아내가 입는 옷은 새털처럼 가볍고 양털처럼 포근해서 아내를 포근하게 감싸주면 참 좋겠다.

달콤한 솜사탕 속에 파묻힌 행복
▲ . 달콤한 솜사탕 속에 파묻힌 행복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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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은은하게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밤, 나는 돌베개라도 좋으니 아내는 내 팔 베개를 베고 누워 단잠을 청하고 꿈속에서나마 행복했으면 참 좋겠다. 남들이 요즘 어떻게 사느냐 물어올 적에 내가  "그냥 살지요"한다면 아내는 화려한 꿈을 꿨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향해 마음 상하는 일없이 차근차근 발자국을 떼어놓았으면 참 좋겠다.

낙산 모래사장에 새긴 아내의 이름
▲ . 낙산 모래사장에 새긴 아내의 이름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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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재주가 없어 아내에게 호강은 못시켜주더라도 나로 인해서 마음고생만큼은 안했으면 좋겠다. 내가 비록 남에게 존경까지는 못 받지만 나 조상연의 아내라는 것에 대한 자존심만큼은 끝까지 지켜주었으면 참 좋겠다.

홍매화
▲ . 홍매화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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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작기는 해도.

임자 없는
무덤가 지키는 목련은
매화가 작다고 비웃지 마라

무덤가 지키는 네 心性도 곱다마는
홍조 띤 아내의 얼굴을 닮은 홍매화
작기는 해도 내 가슴 흔들어 놓는다

2012. 03. 16. 사랑하는 아내의 잠든 얼굴을 보며

p.s : 새벽에 아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니 엊저녁 토닥거리던 일에 슬그머니 미안해집니다. 의외로 남자들이 쑥스러움이 많답니다. 그 쑥스러움 때문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지 세상 모든 남자들의 마음이 저와 같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엊저녁 아내에게 함부로 한 것에 대해 한없이 미안해지는 새벽입니다. 그 미안한 마음을 아내애게 직접 하기가 뭐해서 <오마이뉴스>의 지면을 통해 화해를 청하고자 합니다.


태그:#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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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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